Who am I ?!/Book2021. 8. 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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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무라카미 하루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거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강한 인내심으로 거리를 쌓아가고 있는 시기인 까닭에, 지금 당장은 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거리를 뛰어간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만 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만약 시간 내 달리지 못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또 뭔가 큰 발견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똑같은 경우를 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소설가라는 직업에-적어도 나의 경우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이지만- 이기고 지고 하는 일이란 없다. 판매 부수나, 문학상이나, 비평을 잘 받거나 못받거나 하는 일은 뭔가를 이룩했는가의 하나의 기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쓴 작품이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도달했는가 못했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며, 그것은 변명으로 간단하게 통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적인 원칙을 말한다면, 창작자에게 있어 그 동기는 자신 안에 조용히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외부에서 어떤 형태나 기준을 찾아야 할 일은 아니다.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 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 새삼스럽게 이런 것을 쓴다는 것이 다소 어리석은 일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미리 말해두자면,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혼자 있는 것을 별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 성격이다. 매일 1시간이나 2시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어도, 4시간이나 5시간을 혼자 책상에 앉아 묵묵히 글을 쓰고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다거나 지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향을 젊었을 때부터 한결같이 내 안에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하기보다는 혼자서 말없이 책을 읽거나,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쪽을 좋아했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젊어서 결혼을 하고 나서는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일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갔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음식점을 경영했기 때문에, 타인과 어울리는 일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참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몸소 배웠다. 그 결과 다소 일그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기는 하나, 사회성 같은 것도 서서히 몸에 익혀갔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20대의 10년동안 나의 세계관은 적지 않게 변화했고, 인간적으로도 얼마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온갖 경쟁과 다툼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면서, 살아남기 위한 실전적인 요령 같은 것을 터득해왔던 것이다. 이 10년간의 그 나름대로 힘든 생활 체험이 없었다면, 소설 같은 걸 쓰는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고, 또 쓰려고 생각해도 틀림없이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은 그다지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일을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깊이 생각에 잠기곤 한다. 글쎄, 도대체 나는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제까지 달리면서 무엇을 생각해왔는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추운 날에는 어느 정도 추위에 대해 생각한다. 더운 날에는 어느정도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슬플 땐느 어느정도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즐거울 때는 어느정도 즐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앞에서도 썼듯이,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두서없이 떠올릴 때도 있다. 때때로(그런 것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소설의 괜찮은 아이디어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를 때도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것은 거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잇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가지 형태의 여러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갈 뿐이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누군가로부터 까닭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갖아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말없이 수긍할 수 있는 일은 몽땅 그대로 자신의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되도록이면 그 모습이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켜) 소설이라고 하는 그릇 속에 이야기의 일부로 쏟아붓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깍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재능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우, 그 양이나 질을 그 소유자가 잘 컨트롤할 수 없다는 데 있다. ... 슈베르트나 모차르트 같이, 또는 어느 시인이나 록 싱어처럼 풍부한 재능을 단기간에 기세 좋게 소진하고, 드라마틱하게 요절해서 아름다운 전설이 되는 삶도 확실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별로 참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정도 보완할 수 있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반년이나 1년이나 2년간 매일의 집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소설가에게는-적어도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에게는- 요구된다.

이와 같은 능력(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 ...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 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기록은 문제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리 노력을 해본들, 아마도 젊은 날과 똑같이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별로 유쾌한 일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일인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 역할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에도 역할이 있다. 그리고 시간은 나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충실하게, 훨씬 정직하게 그 직무를 다하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났을 때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전진해오지 않았는가. 그리고 요절을 면한 사람에게는 그 특전으로서 확실하게 늙어간다고 하는 고마운 권리가 주어진다. 육체의 감퇴라고 하는 영예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나는 즐기며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와는 약간 다른 성취의 긍지를 모색해가게 될 것이다.

나는 기록에 도전하는 무심한 젊은이도 아니고, 한낱 무기적인 기계도 아니다.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오래 자신의 능력과 활력을 유지해가려 하는, 한 사람의 직업적인 소설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 ~ 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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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1. 7. 12.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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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13.

덴고는 자신의 뇌에 대해 생각했다. 뇌에 대해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다.

인간의 뇌는 최근 이백오십만년 동안 그 크기가 약 네배로 증가했다.

무게만으로 보면 뇌는 인간의 몸무게의 약 2퍼센트를 차지할뿐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체의 총 에너지의약 40퍼센트를 소비한다.

뇌라는 기관의 그러한 비약적인 확대에 의해 인간이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과 공간과 가능성의 관념이다.

시간이 일그러진 모양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덴고는 알고 있다.

시간 그 자체는 균일한 성분을 가졌지만,   그것은 일단 소비되면 일그러진 것으로 변해버린다.

어떤 시간은 지독히 무겁고 길며 어떤 시간은 가볍고 짧다.

그리고 때때로 전후가 바뀌거나 심할 땐느 완전히 소멸하기도 한다.

있을 리 없는 것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인간은 아마도 시간을 그처럼 제멋대로 조정하면서 자신의 존재의의 또한 조정하는 것이리라.

다르게 말하면, 그 같은 작업이 더해지면서 가까스로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있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어렵사리 지나온 순간을 순서대로 고스란히 균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면

인간의 신경은 도저히 그것을 견뎌내지 못할 게 틀림없다.

그런 인생은 아마도 고문이나 다름없으리라. 덴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14.

세계라는 건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의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15.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와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 해.

빛나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자리 그대로야.

 

 

#16.

lunatic과 insane의 차이.

insane은 아마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게 바람직하다.

그에 비해 lunatic은 달에 의해, 즉 lune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긴 것.

19세기의 영국에서는 lunatic이라고 판정받은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를 한 등급 감해줬다.

그 사람의 책임이라기 보다 달빛에 홀렸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법률이 실제로 존재했다.

즉 달이 인간의 정신을 어긋나게 한다는 걸 법률적으로도 인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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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1. 7. 1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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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10.

그곳은 신비한 공간이었다.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의 중간쯤에 있는 임시거처처럼.

빛이 탁하게 고여 있었다.

맑은 날에도 흐린 날에도, 한낮에도 밤에도 똑같은 종류의 빛이 그곳에는 있었다.

 

 

#11.

너는 세어보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똑똑히 헤아리고 있단다.

왜 그런지 아니?

어떤 경우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대단히 소중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을 헤어려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뜻을 갖게 된단다.

 

 

#12.

덴고는 다른 여자에게 딱히 욕망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유롭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정기적인 섹스의 기회가 확보된다면 더이상 여자에게 원할 것이 없었다.

비슷한 나이의 여자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고 성적인 관계를 갖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책임을 떠안는 건 그가 그리 환영하는 바가 아니었다.

거쳐야할 몇몇 심리적인 단계, 가능성을 은근슬쩍 내비치기, 피하기 힘든 기대치의 충돌..

그런 일련의 번거로운 것들은 가능하면 떠맡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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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1. 7. 1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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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8.

그에게서는 지적인 호기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그래도 보편적인 수준에서 지식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갈망이

-그것은 많든 적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덴고는 생각한다-

이 사람에게는 너무도 희박했다.

살아가는 데 실제로 필요한 지혜는 나름대로 움직였지만,

노력해서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심화시켜 보다 넓고 큰 세계로 나아가려는 자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비좁은 세계에서 협량한 룰을 따라 꾸역꾸역 살아가면서도,

그 비좁고 탁한 공기를 딱히 고통으로도 느끼지 않는 기색이었다. 

 

 

#9.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눈에 들어오는 밤하늘이 평소에 보던 밤하늘과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가 여느때와는 다르다.

희미한, 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이질감이 그곳에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본 뒤에도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한 수고가 들었다.

자신의 시선이 포착해낸 것을 의식이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작은달과 큰달, 그것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큰 쪽이 평소에 늘 보던 달이다. 보름달에 가깝고 노랗다.

하지만 그 곁에 또 하나, 다른 달이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달이다.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선이 포착한 것이었다.

아오마메는 실눈을 뜨고 그 두 개의 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한참 시간을 둔 다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눈을 떠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와 하나의 달만 떠 있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똑같았다.

빛의 장난도 아니고 시력이 이상해진 것도 아니다.

하늘에는 틀림없이, 잘못 볼리도 없이, 또렷한 두 개의 달이 나란히 떠 있다.

노란색 달과 초록색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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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1. 7. 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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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7.

남자가 집에 없는건 미리 확인해 두었다.

드라이버와 해머를 사용해 자물쇠를 부수고 집 안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방망이에 타월을 몇 겹으로 감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텔레비젼부터 라이트스탠드, 시계, 레코드, 토스터, 꽃병, 아무튼 부술 수 있는 건 하나도 남김 없이 부쉈다.

전화선은 가위로 절단했다.

책은 등을 꺾어 한장한장 뜯어냈고, 치약과 쉐이빙 크림은 내용물을 모두 짜내 카펫 위에 흩뿌렸다.

침대에는 소스를 끼얹었다.

서랍 안의 노트도 찢었다.

펜과 연필은 부러뜨렸다.

전구는 죄다 깨부쉈다.

커튼과 쿠션에는 부엌칼로 칼집을 냈다.

서랍 속의 셔츠도 모조리 가위질을 했다.

속옷과 양말 서랍에는 토마토 케쳡을 듬뿍 뿌렸다.

냉장고 퓨즈를 뽑아 창밖으로 멀리 던졌다.

화장실 변기의 물탱크 스토퍼를 떼어내 고장냈다.

샤워기 헤드도 망가뜨렸다.

정성들여 구석구석까지 철저하게 파괴했다.

방 안은 한참 오래 전에 신문에서 사진으로 본, 포격 후의 베이루트 시가지 풍경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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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1. 7. 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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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4.

모든 일에는 반드시 두 개의 측면이 있다.

좋은 면과 그다지 나쁘지 않은 면.

 

 

#5.

괜찮아? 방금 버스에 깔린듯한 목소린데.

 

 

#6.

어디까지나 돌발적이고 단 한번 뿐인 일이었다.

두번 다시 그런 일은 반복되지 않았고,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일 때문에 두 사람은 보다 깊고 보다 내밀한 관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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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11. 7. 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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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Q84 1권 中..

 

#1.

후카에리는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의도를 가진 침묵이 아니었다.

단순히 덴고의 질문의 목적을, 또한 그런 발상자체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 질문은, 그녀의의식의 영역 어디에도 착지하지 못했다.

그것은 의미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허무 속으로 영원히 빨려들어간 것이리라.

명왕성 옆을 그대로 지나가 버린 고독한 행성탐사 로켓처럼.

 

 

#2.

아오마네는 무성한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그곳에서 기다렸다.

바람은 없고 버드나무 가지는 땅을 향해 고요히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두서없는 사색에 잠긴 사람처럼.

 

 

#3.

내가 이상해진건가.. 아니면 세계가 이상해진 건가.

그 둘 중 하나다.

어느쪽인지는 모른다.

병과 병뚜껑의 크기가 맞지 않는다.

병 때문인지도 모르고 병뚜껑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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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