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Book2021. 7. 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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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자백

(글쓴이. 이즈미 다케오미, 오바 시로, 오하시 야스시, 오쿠다 유이치로 /

엮은이. 우치다 히로토미, 야히로 미쓰히데, 가모시다 유미 / 옮긴이. 김인회, 서주연)

 

I. 서론

이 책은 거짓자백으로 인해 억울하게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처벌받은 실제 일본에서의 네 사건 - 아시카가(足利) 사건, 도야마히미(富山氷見) 사건, 우쓰노미야(宇都宮) 사건, 우와지마(宇和島) 사건 을 심리학적, 형사법학적으로 분석하며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원서는 일본 사례만을 적시하고 분석하고 있어 전락자백을 하게 되는 심리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지만 한국의 법과 현실에 와닿지 않아 전체적인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옮긴이 김인회의 노력 덕분에 중간중간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라는 챕터가 삽입되어,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네 사건을 구분하여 각각의 특징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거짓자백을 알아차리지 못한 재판관 판단의 공통된 특징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필자는 이를 한국의 형사절차에 적용하여, 우리 형사재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오판의 원인에 대해 각성하고, 특히 수사기관 입장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의해야할 부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II. 피의자·피고인이 거짓자백으로 전락하는 과정

자신에게 불이익한 발언을 하여 실제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못돼먹은 수사관에 의해 거짓자백을 하게 되는 경우, 실제 범인과의 일종의 거래를 통해 거짓자백을 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마다 스미오 교수의 오판 연구 리포트에서 밝힌 피의자가 취조과정에서 거짓자백으로 전락하는 심적 상황의 8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나라면 절대 거짓자백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자신감은 이내 사라졌다.

 

1.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

신병을 체포·구속하면 일상에서는 당연했던 심리적인 안정을 잃게 된다. 이는 거짓자백의 가장 근본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은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하며,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를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2항에서는 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라 하여 추가적인 구속사유를 규정한다.

위 규정에 대하여 구속은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처분임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유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며, 주관적·탄력적·심리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오늘날 수사기관에서 처음부터 거짓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체포·구속을 하는 일을 없다고 생각한다. 위 사유가 충족되는 피의자가 실제 범행을 하였다고 믿을만한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신병을 구속하였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체포·구속되거나, 심지어 임의동행한 피의자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반드시 이러한 피의자의 심리상태를 인지하고 신문을 진행해야 하며, 피의자의 진술상 오류가 없는지, 피의자의 부인·항변을 입증할 증거를 배제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다.

 

2.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체포되면 모든 생활이 타자의 통제 하에 놓인다. 식사, 배설, 수면 등 기본적 생활까지 타자에게 지배되고, 자신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제한된다. 그 결과 자기통제감을 잃는다.

일반인이 체험하지 않은 무게감, 수사기관의 통제 하에 있다는 심리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실제 범행을 한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무고한 피의자의 거짓자백도 유도하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3.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피의자를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자백을 다그치는 수사관에 의한 정신적 굴욕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겪을 수 없는 체험이다. 부인하는 한 끝없이 계속하여 극악무도한 인간이라고 비난받고, 매도당하는 경험은 사람을 충분히 상처받고 힘들게 할 수 있다.

 

4.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사건과 관계없는 사항에 관해 이것저것 조사받고, 추궁받고, 비난받아 죄책감이 심해지는 경우에도 거짓자백을 하게 될 수 있다. 안정적인 결혼관계나 충실한 직장생활 등의 부재가 있는 경우, 사건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면 자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자로 낙인찍힌 기분이 되어 저항력을 상실하게 된다.

피의자신문시, 전과, 직장, 월수입, 종교, 가족관계 등 다양한 질문을 하게 된다. 수사기관은 이와 같은 정보를 피의자원표로 관리하며, 공통질문사항에 해당한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많은 경우 피의자의 범행을 입증할 정황증거로 활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성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스마트폰, PC에서, 해당 성범죄와는 관계없으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강간범죄 관련 영상 시청기록 등이 확인된다면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심증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증을 통한 추궁이 실제 범행을 실행한 피의자의 자백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억울한 피의자의 거짓자백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5.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억울한 피의자가 열심히 변명하고 반복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피의자는 무력감에 짓눌리고 절망감에 내몰리게 된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부인과 항변에 대해 일방적인 선입견을 갖고 무시하기 보다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증인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선입견, 심증에 사로잡혀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지 않고, 피의자의 변명 속에서 숨겨져 있던 진실을 찾아 내야할 것이다.

 

6.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실제 신문시간과는 관계없이 무고한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자백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압력에 부인을 관철할 인내의 한도를 넘을 수 있다.

 

7.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부인을 계속하면 수사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거나,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며, 정상이 나빠지고 오히려 형이 무거워진다고 타이르며 부인하는 것의 불이익을 강조할 경우, 무고하지만 자백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8. 수사관과의 자백적 관계

무고한 사람으로서 수사관으로부터 유죄를 전제로 추궁받는 것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신문 그 자체는 불합리해도 수사관이 악의를 가지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님은 알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그 인간미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중에 수사관에게 끝까지 적대적이기는 어렵다. 이를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의 수사기관 버전으로 볼 수 있을까.

 

III. 억울한 피의자·피고인을 줄이기 위한 노력

많은 사람들이 형사재판과 얽힐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형벌을 부과받는 입장에 있는 동시에 형벌을 부과하는 입장에 있다. 책에서는 거짓자백, 억울한 피의자·피고인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바람직한 형사재판의 모습을 제언한다. 그 중 한국의 형사소송절차, 특히 수사절차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았다.

1. 법정에서는 수사의 모든 것이 드러나게

우리 형사재판에는 2007년 당사자 간의 증거의 편재를 해결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제도인 증거게시제도를 도입했다. 검사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대한 증거개시뿐만 아니라 일정한 경우 피고인 측이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대한 증거개시도 인정하고 있다. 증거개시제도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그 주안점이 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에 의해 도입된 증거개시신청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개시거부나 제한사유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져야 한다. 단순히 열람등사로 인하여 폐해의 발생이 우려된다는 정도로 막연하게 그 거부 또는 제한의 사유를 밝혀서는 안 되고, 대상이 된 수사기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검토하여 어느 부분이 어떠한 제한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주장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2. 자백을 강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또한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피의자의 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1999년 수사기관 최초로 피의자 신문시 변호인 참여제도를 도입하였고 이후 내사단계를 포함하여 참고인까지 경찰조사 전 과 정에 변호인 참여권 보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러나 변호인 참여권이 단순히 추상적 기회의 제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선변호인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경우, 수사단계부터 공판단계까지 형사소추 전 과정에 걸쳐 국가의 비용으로형사변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경찰은 조사일정 사전협의, 송치 전 자료·의견 제출기회 보장, 압수수색시 피압수자 등 의견·서면 제출 보장, 조서작성시 경찰제시 자료에 대한 진정 성립 및 신빙성에 관한 의견 기재, 조사과정에서 내용을 임의로 조작하거나 함부로 생략하거나 질문을 마치 답변처럼 바꾸는 등의 왜곡 경계, 조서 완성 후 정보공개절차에 따라 조치, 아동·청소년, 장애인 피의자의 수사시간·장소 배려, 신뢰관계인 동석, 심야조사 원칙적금지 등을 통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와 같이 부당한 자백유도를 금지하며, 조사대상자의 가족, 지인, 동료, 거래처, 관련 회사 등에 대한 수사확대를 암시하거나 먼지털이식 수사로 조사대상자를 부당하게 압박하여 자백을 유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309조 강제등 자백의 증거능력, 범죄수사규칙 제56조 임의성의 확보에도 규정되어 있다.

 

3. 위험한 증거는 사용하지 않는다

피의자·피고인의 진술이나 증인의 증언, 물증, 정황 등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으며, 나아가 서로 상반되기도 한다. 그래서 법원은 이들 중에서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취사선택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취사 선택과정에서 재판부의 임의적 판단을 배제하기 위하여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게 된다.

형사소송법 중에서도 사실을 확정하는 수단과 방법에 관한 법인 증거법은 사실 발견을 위해 재판부가 고려하여야 하는 증거는 무엇이며, 이러한 증거가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증거를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사실 발견에 이르러야 하는가를 규정한 규칙들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제출된 정보가 증거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사실을 밝히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거능력이란 증거가 사실발견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의 자격을 말한다. 따라서 사실 발견에 상당한 가치가 있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다면 사실인정의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2편 제3장 제2절의 제309조부터 제317조의 3까지 어떤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는가, 즉 증거능력을 규정하고 있다.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자백의 증거능력, 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제한과 예외 규정, 진술의 임의성 요구, 증거능력에 대한 당사자들의 동의 등이다.

증명력이란 증거가 사실발견에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가를 말한다. 따라서 서로 상이한 증거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어느 것이 사실발견에 더 가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증거의 증명력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308(자유심증주의)에서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 증거의 증명력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IV. 결론

이 책을 통해 구조적으로 오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형사절차(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판사나 검사, 경찰 등 모든 관계자들은 겸손하고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일반 시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당연한 사실 이외에 내가 내리는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공권력에 대한 외부의 통제와 감시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판의 원인을 가능한 줄이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보론

책에서는 전락자백으로 인한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관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위주로 서술하고 있으나 수사기관도 같은 점을 주의하여 수사 및 공소제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주의점들은 거짓자백, 전락자백 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인들의 부인·항변에 있어서의 거짓진술을 발견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판관 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범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심증을 형성할 때에는,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그 오류를 더 적게 하기 위해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할 것

자백이 있는 사건에서도 특히 피의자·피고인과 범행을 연결지을 때, 정황증거의 정확성과 한계를 엄밀하게 분석한 후 자백을 검토할 것

심증형성의 과정에서 스스로 세운 가설을 벗어나는 예외에 눈감지 않고 끊임없는 검증을 거듭할 것

자백(진술)의 신용성 인정 판단시 주의할 점: 자백과 부인이 뒤섞인 경우 주의 , 자백(진술) 내용의 변동과 객관적인 증거와의 부합정도, 자백(진술)의 체험진술성, 피의자·피고인의 변명, 정황증거의 확실성·범행과의 관련성·자백과의 관련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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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12. 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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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도구들 by 팀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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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답을 하는지 보다는, 무슨 질문을 하는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라.

-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프랑스 정치가)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에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리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왜 6개월 안에 그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가?'

-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

 

누구나 나비가 되어 날 수 있다. 단, 먼저 번데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여기서 번데기란 당신이 서 있는 세계의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당신에게 강요되는 사회규범들이다.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는 번데기를 안전한 은신처로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벗어나게 해주지 못한다. 타이탄들은 말한다. "당신이 지금껏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담대한 목표를 가진 사람일수록 '디테일(detail)'에 강하다.

 

삶의 유일한 배움은 마이크로(micro)에서 매크로(macro)를 찾아내는 것이다. 뭔가 작은 것에 집중하면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것을 얻을 수 있다.

- 조시 웨이츠킨(체스 미국 챔피언 & 태극권 세계대회 우승자)

 

타이탄의 공통특징

- 매일 가벼운 명상을 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 때마다 반복해서 틀어놓는 노래 한 곳, 앨범 하나가 있다. 실패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자신의 분명한 약점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커다란 경쟁력 있는 기회로 바꾸어냈다.

 

인생의 비밀은 '클리셰'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다.

- 셰이 칼

 

오직 두가지를 기억하라

1. 성공은 올바른 경험으로 얻어진 믿음과 습관들을 쌓아가다보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2. 슈퍼 히어로들은 모두 결점투성이다. 그들은 단지 한두개의 강점을 극대화했을 뿐이다.

 

생각하고, 기다리고, 금식하라

- 싯다르타 by 헤르만헤세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침을 얼마나 일관적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

- B.J. 노박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우연히 생긴 일은 아니다.

- 크리스 사카

 

아무도 모르는 걸 나만 아는 것이 독창성이 아니다. 독창성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것을 아는 것이다.

- 마크 앤드리슨

 

승리하는 아침을 만드는 5가지 의식

- 잠자리를 정리하라(3분), 명상하라(10~20분), 팔굽혀펴기(1분), 차를 마셔라(2~3분), 아침일기를 써라(5~10분)

 

아이디어와 창의성의 진보는 백지 위에 처음 밑그림을 그리는 순간과, 그렸던 밑그림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리는 순간 사이에 존재한다.

- 에드 캣멀

 

우리는 안다.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실패는 오래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이유 때문에 실패를 겪는다. 실패하는 이유가 총 10가지라면, 그중 어느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해 실패하는 게 아니다. 1번부터 10번까지의 이유 '전부' 때문에 실패한다.

 

대체 불가능한 사명을 찾아라. 실패는 짧아야 하고 성공은 길어야 한다. 사명이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경쟁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마라. 그 대신 '더 큰 성공을 위해 경쟁심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자신에게 질문하라.

- 피터 틸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창업가이자 투자자이자 크리에이터이자 아티스트다. 한 우물을 판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경쟁심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합의한 것을 깨라. 성공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동의할 것 같은 진실을 손에 넣는 것이다.

- 피터 틸

 

열정을 가진 젊은 창업가들은 가장 먼저 다음 3가지 질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1. 독점문제: 소규모 시장에서 큰 폭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시작하는가?

2. 비밀문제: 다른 사람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독특한 기회를 발견했는가?

3. 유통문제: 제품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가?

 

돈을 벌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게 무척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곳에 있어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돈을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 크리스 사카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오랜 친구들이 여러분을 좋아한 이유를요. 아마도 그들은 여러분이 뭔가 독특한 부분이 있어서 좋아했을 겁니다. 유난히 개구쟁이였거나 뭔가를 유독 잘 만들었거나, 노래를 간드러지게 불렀거나 달리기를 잘했거나, 아니면 유난히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거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친구들이 좋아했던 당신만의 독특함과 유별남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살아가세요. 당신의 독특함과 유별남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당신을 돋보이게 해주고, 취업과 사업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커다란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는다는 이유로 당신의 독특함과 유별남을 꼭꼭 가면 뒤에 숨겨놓지 마십시오. 그러면 타인과 똑같은 얼굴로 살게 됩니다. 유별나게 살다보면, 독특하게 살다보면 최고의 행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크리스 사카, 미네소타 대학교 졸업식 연설 中

 

당신이 뭔가를 팔아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를 반드시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 사람들이 내 제품을 사지 않는 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내 것보다 더 좋은 걸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마크 앤드리슨

 

강력한 의견과 침착한 태도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 깨달으면 인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다. 그건 바로 일상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우리보다 별로 똑똑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바꾸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 타인이 좀 더 지혜롭고 편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시는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사라지지 마라. 그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려라. 퇴장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나를 기어이, 본다.

-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글을 쓰는 사람이 미래를 얻는다.

- 매트 뮬렌웨그

 

어떤 창조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게 좋을 지 잘 모를 때가 있는가? 그때는 자신의 분노를 따라가 보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소득이 있을 것이다.

- 케이시 네이스탯

 

가치있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바뀐다. 그러면 가치있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능한 일을 해야한다. 우리는 곧 자기가 주변에서 가장 잘생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장 똑똑한 사람도 될 수 없고, 가장 교양있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는 남들과 경쟁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경쟁이 가능한, 성공에 있어서 진정으로 평등한 측면이 하나 있다. 바로 '노력'이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 케이시 네이스탯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려고 노력한다. 싫어하는 일을 빨리 해치우는 건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는 가능한 것을 해야한다. 이것이 곧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접근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다.

 

죽어서 육신이 썩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든지, 글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 2가지

1. 전쟁론, 손자병법 같은 책을 반복적으로 읽어라.

2. 언어를 공부하라.

- 리드 호프만

 

뭔가 떠올랐을 때 짜릿한 전율을 느낀 적 있는가? 미소가 절로 난 적은? 급속한 아드레날린 분비를 느낀 적은? 엔돌핀이 퍼져나가는 느낌은? 이런 상태를 느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매우 좋은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 B.J. 노박

 

뭔가 다른 삶을 원한다면 선택 가능한 길은 두 가지다.

1. 특정한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2. 두 가지 이상의 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상위 25퍼센트)을 발휘하는 것.

 

성공한 CEO들 가운데 상위 25퍼센트에 속하는 기술을 3가지 이상 갖추지 못한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 마크 앤드리슨(넷스케이프 창업자)

 

평범한 가격을 치르면 평범한 것밖에 얻지 못합니다. 한 푼도 깎지 말고 내세요. 돈이 아까워서라도, 당신 또한 갖가지 독창적인 포즈와 아이디어를 떠올려 원하는 것 이상의 사진을 얻게 될 겁니다.

- 체이스 자비스

 

성공은 복잡할 필요가 없다. 그냥 1,000명의 사람을 지극히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

- 케빈 켈리(와이어드 창간)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유능하거나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

당신은 태도를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다.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 혹은 책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대부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잘못된 것들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원하는 성공을 먼저 거둔 사람이나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는 것이다. 설령 여기에 실패했다 할지라도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스승보다 우리가 모르는 훌륭한 스승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태도다. 항상 타인을 섬기겠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성공 못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언제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의 지휘 능력은 나중에 언제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마혼 경(Lord Mahon)

 

글쓰기는 '질'보다 '양'이 선결되어야 한다. 양적 팽창은 질적 전이를 가져온다. 빠른 시간 내에 초고를 확보한 작가는 더욱 빠른 속도로 자신감을 그 위에 보태나간다.

100장짜리 글은 10장으로 쉽게 압축할 수 있다. 반면에 10장짜리 글을 100장으로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10분 후 휴지통으로 직행하더라도 쓰고, 쓰고, 쓰고, 또 써야 한다.

- 닐 스트라우스

 

선택할 수 있을 때는 두 가지 모두 선택하라. 

프로젝트가 여러 개라야 성공도 여러 개가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할 때는 그 위에 요구를 더 추가하라.

이길 수 없으면 규칙을 바꿔라.

규칙을 바꿀 수 없으면 규칙을 무시하라.

'No'는 한 단계 더 높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뜻일 뿐이다.

의심될 때는 생각하라.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더 오래 살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인센티브는 베푸는 대로 거둔다.

놀라운 돌파구도 그 전날까지는 정신 나간 아이디어였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 피터 디아만디스의 법칙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없다. 행복이 길이다.

- 틱 낫 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모두를 사랑할 수는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먼저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먼저 바라보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 있는 연약함과 취약함을 상대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다. 상대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그토록 집요하게 남들의 모습을 파고들고 판단하는 데만 열중하다가 오히려 큰 상처를 입는다. 마음껏 부드러움과 연약함, 취약함을 드러내라.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마음을 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더 활짝 마음을 연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은 타인을 따뜻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 휘트니 커밍스

 

진정한 성공이란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평화로운 상태를 얻으려면 주체의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불안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의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두려움을 없애려면 그것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 요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中)

 

행동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동 없는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며칠동안 남루한 옷차림으로 싸구려 음식을 먹으며 생각해보라. '이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인가?'

- 세네카(철학자)

 

핵심은 '의지'다. 작가를 만드는건 문장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자' 하는 의지다.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순간 탁 풀려나가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 파울로 코엘료

 

상대가 내 게임을 연구하게 하라.

나는 3~4주 후에 있을 시합에서 경쟁자들에게 사용할 기술을 미리 보여준다. 그러면 상대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내 기술을 연구하게 된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상대가 무의식 중에 내 전략과 경기 운영방식에 점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상대가 내 기술을 제 아무리 연구하고 따라한다 한들, 나보다 잘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가진 기술을 나보다 더 잘 구사하는 사람은 없다.

- 마르셀로 가르시아(주짓수 세계 챔피언 5회)

 

나는 마르셀로의 전략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나도 3년 연속 높은 청취율을 기록한 내 팟캐스트 방송을 만든 과정이나 킥스타터를 통한 투자 과정 등을 온라인상에서 자세하게 공유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나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의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 내가 자세한 설명으로 사람들을 도와줄수록 나도 더 상세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둘째, 내가 성공적으로 진행한 방송과 투자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 중 절반은 너무도 자세한 디테일에 놀라 따라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 40퍼센트는 따라서 시도해보지만 그들의 결과물은 나보다 못했다. 약 10퍼센트만이 내 디테일들을 참조해 나보다 더 창조적인 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이 10퍼센트 사람들을 나는 적극 도와주었고, 그들로부터 내 일에 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작가 헤밍웨이는 가장 좋은 흐름의 중간, 가장 잘 써져 나간다고 느껴지는 문단의 중간 부분에서 하루의 작업을 끝냈다. 다음번에도 그 좋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다. 나도 헤밍웨이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 조시 웨이츠킨

 

영화판에는 '로드리게즈 리스트'라는 말이 있다. 이는 로버트가 <엘마리아치>를 만들 때 탄생했다.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산(asset)을 적어놓은 다음 그 리스트에 맞춰 영화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 남들은 다 잘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걱정하지 마라. 남들도 잘 모른다. 모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꼭 알지 않아도 된다. 그냥 앞으로 계속 가면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도, '몰라도 된다'는 믿음을 갖고 캔버스에 붓을 가져가라. 일단 붓을 가져가면 어디로 가야 할지는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실패는 오래 가지 않는다. 젊을 때는 해고 사유였던 일로, 늙어서는 평생 공로상을 받을 수도 있다.

- 프랜시스 코폴라(대부, 지옥의 묵시록 감독)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그냥 열심히 하라.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보상받고 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두려움에 휩싸일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우리는 매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매 순간 구두끈을 고쳐매고 배낭을 짊어진 채 삶에 집중해야 한다.

- BJ 밀러

 

비결은 가슴을 공략하는 데 있다. 일단 상대의 가슴에 들어가야 머리로 올라갈 수 있다. 가슴과 머리를 이으면 영혼으로 가는 길이 생겨난다. 뭔가 충격적이고 독특한 것을 주려고 애쓰지 마라. 그냥 따뜻하고 좋은 것을 주면 된다. '좋은 것'만이 언제나 영원히 남는다.

- 칼 퍼스먼(최고의 인터뷰어)

 

사람의 가슴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전략 하나를 소개해주겠다. 상대가 예상치 못한 주제를 꺼내는 것이 핵심이다. 길거리에서 오프라 윈프리를 만나면 절대로 '토크쇼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하지 마라. 대신 '키위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라. 상대가 예상치 못한 주제를 꺼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면 당신은 오프라 윈프리와 키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평생 기억에 남을 멋진 경험을 할 수도 있다.

- 마이크 버비글리아

 

인생을 어떻게 살지에 시간을 써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통상 한두시간이 걸린다. 그중 어느 식당을 갈지 결정하는데 5분쯤 걸린다. 어떤가? 나머지 95퍼센트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는 데 5퍼센트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를 평생 일하는 8만시간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데 4,000시간 정도 쓰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 이는 일하는 시간으로 따질 때 2년에 해당한다. 4,000시간 또는 2년의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데 쓰는 사람은 분명 뭔가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궁지에 몰려, 시간에 쫓겨 열정 따위를 마법처럼 외치며 괴롭게 살아가는 일은 최소한 없을 것이다.

- 윌 맥어스킬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보다 무엇을 거절할 것인지를 알 때 생겨난다. '간단하다. 원치않는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특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무능한 상대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죄책감을 갖는 게 더 낫다. 죄책감은 당신의 특권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를 거절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우리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지 않는다.

- 마리아 포포바

 

내 자리를 만들어라. 

생산성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성은 로봇에게나 필요하다. 인간의 모든 시간은 질문하기, 창의성 발휘하기, 경험하기로 채워져야 한다.

- 케빈 켈리

 

있지 않은데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있는데 필요로 하지 않는 편이 낫다.

- 프란츠 카프카

 

강해지고 싶다면 강해지면 된다.

'좋아!'라고 외치며 기꺼이 받아들여라. 그리고 '좋아!'라고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라. '좋아!'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아직 숨쉬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 숨쉬고 있다면 이겨야 할 싸움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일어나 먼지를 털고 몸을 추스리고 다시 뛰어들어라. 바로 그 순간부터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가 된다.

- 조코 윌링크

 

자신을 더 많이 알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시간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단순히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뚜렷하게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일에 영혼까지 쏟아붓는 위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시릉ㄹ.

- 마이크 버비글리아

 

가장 훌륭한 걸작은 늘 관객을 갈라놓는다. 예를 들어 어떤 가수가 앨범을 발표했을 때, 이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로 평가가 나뉘면, 그건 큰 성공이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계점까지 밀어 붙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릭 루빈

 

나에게 일어난 멋진 일들을 저장하라.

 

2,000명에게만 알려지면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할 수 있다. 딱 그 정도 규모의 사람이 내게 최대의 장점과 최소의 단점을 제공한다.

다수는 합의할 때만 아우성을 칠 뿐, 합의 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시들해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냥 방치되는 것들이 많다. 혁신은 여기서 탄생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흔한 해결책인데 다른 분야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걸 찾아내는 게 혁신이고 성공이다.

- 에릭 와인스타인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3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떠나거나'다. 바꾸고 싶은데 바꾸지 않는 것,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않고,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불행은 대부분 그런 몸부림과 혐오감 때문이다. 나발이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외치는 말은 '받아들여라!'다.

행복하고 싶은가? 그럼 행복하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녀라. 그러면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세상에 당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찾아 헤매지 마라.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러니 당신이 스스로 현명해지면 된다. 언제나 당신 스스로를 향해 걸어라. 스스로를 찾아가라.

- 나발 라비칸트(앤젤리스트 CEO)

 

나의 목표가 아니라 타인의 목표에 따르는 '반응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확보한 여유의 시간이 그 답을 찾아줄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하루에 한번씩 숨쉬기를 하라. 단 한번이면 충분하다. 마음을 다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만 하면 그날 해야 할일이 다 끝난다. 그 밖의 모든 활동은 보너스일 뿐이다.

한 차례의 제대로 된 호흡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추진력 때문이다. 쉽게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수련을 위한 추진력이 보존된다. 나중에 그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고 느껴지면 더 차원 높은 수련을 시작할 수 있다. 둘째, 명상을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명상이기 때문이다. 한번의 호흡을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매일 자신을 위해 사려깊고 유익한 뭔가를 하고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런 배려는 점점 소중한 정신적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다.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명상 수련 또한 한결 쉬워진다. 그러므로 호흡 한 번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마음의 건강과 행복을 발견하는 기술은 모두 한 번의 호흡에서 출발한다.

 

10초 수련법. 지난가는 사람들 중 무작위로 두 명을 골라 몰래 10초동안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자. 그러고나면 모두들 미소를 짓는다. 10초 전보다 훨씬 행복한 상태를 경험한다. 10초 수련법의 핵심은 사랑과 친절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친절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과학적으로도 규명된 바 있다. 다른 조건이 모두 똑같은 상태일 때, 자신의 행복감을 고조시키려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무작위로 빌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기본적으로 시간과 노력이 전혀 들지 않는 방법이다.

 

매사에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더 오래 뛸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상에서 솔선수범함으로써 다양한 성취감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성취감은 중독성이 강하다. 끊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 레어드 해밀턴, 가브리엘 리스

 

꿈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을 그냥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는 그걸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 마침내 이루는 것이다. 내게 성공의 본보기가 되어주는 사람들은 모두 조직적인 목표를 갖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탁월한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다.

 

아니, 왜 긴장을 해야 해? 내가 이기면 준비를 잘한 결과일 거고, 내가 지면 준비가 부족한 때문이겠지, 뭐. 지금 와서 걱정한다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어. 그렇잖아? 일어나게 될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야.

- 플로이드 메이웨더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 실력을 키울 생각이 없다면 처음부터 그 일을 하지 말아라. 최악의 인생은 '나를 늘 못하는 사람으로 상대방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인생엔 세 가지 길이 있다. 실력을 키우거나, 포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 폴 레베스크

 

우리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시릉 ㄹ가리기 위한 과장된 피로는 아닐까?

 

명심하세요, 드라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심플하지만 단단한 루틴과 습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의 자세와 걸음걸이를 살펴보며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발전과 성과가 없다고 자꾸만 자세를 바꾸고, 생각을 고치고, 이것저것 다 해보는 사람에겐 좋은 조언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너무 변화무쌍하니까요. 시간은 필요한만큼 걸릴 겁니다.

- 크리스토퍼 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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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4. 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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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by 한유석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지금, 하루의 끝에 와인을 마신다. 여름에는 소비뇽블랑, 혼자라도 행복할 때는 피노누아, 스트레스 가득할 때는 시라나 카베르네소비뇽, 좋은 치즈가 생긴 날에는 샤르도네를 마신다. 멋지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생활처럼 마신다.
하루의 끝, 한번에 와인 한 병을 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 세 번에 나누어 마시는데 좋아지든 나빠지든 마실 때마다 맛의 변화가 좋다. 보관의 문제도 있겠지만 같은 와인이 공기와 만나 다른 표정을 짓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사람이지만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다.


서른을 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지겨워지게 된다. 취미생활, 또는 일상의 일탈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약발이 안 먹히게 되는 순간이 종종 온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무거워, 무거워"를 온종일 되뇌게 되는 날이 생긴ㄷ.
그럴 때는 스스로를 가볍게 할 술로 임시처방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좀 길게 떠나자. 길게 떠난 자는 많은 것을 잊고 가벼워져 올 것이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비밀 몇 가지를 챙겨올 것이다. 일상이 지겨울 때, 몰래 펴볼 수 있는 마음의 기억을 많이 챙겨올 것이다.
술과 여행은 지평선을 닮아가는 일상에 지지 않는 힘이 되었고, 지치지 않고 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비밀이자 비법이다.


어느 식당에서 셰프가 음식을 만들며 와인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음식은 더 맛있을 거라고 턱없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셰프는 행복했을 것이고, 그 마음이 음식에 담겼을 것이다. 국숫집에서 몸은 고단해도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이 손님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의 국숫집이 늦어지는 것은 내가 아직은 행복을 말하기에, 행복을 전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국숫집의 문은 열린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중에서)


이 세상에 와서 한 번쯤 해야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한다. 결혼의 시작을 위해서는 여자는 설레야 한다. 남녀가 만나면 그런 순간이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은 원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자의 마음 한켠을 차지하는 것이다.
...
순간이 아닌 내내 설레게 하는 것은 같은 궤도를 도는 사람이다. 자라난 환경이나 일의 같음이 아니다. 삶의 방향과 희로애락의 같음, 지구와 달처럼 궤도를 공유하는 연결이다.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신경림, 낙타 중에서)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 사람 사이에도 숨을 고를 필요가 있기에. 더 오래 만나기 위해. 더 소중해지기 위해.
사람 때문에 헉헉 거릴 때, 어딘가에서 보고 메모해두었던 글이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것은 타이밍의 영역이라면, 사람과 사람이 이어가는 것은 스페이싱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타이밍은 어쩔 수 없지만, 스페이싱은 하기 나름인데 참으로 어려운 것이 그 간격, 그 거리의 조절이다.


더 소중해지기 위해 사람과 거리를 두어야할 때, 더 오래 만나기 위해 멈추어야 할 때 쓰는 단기 처방전은 나를 고단하게 하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든, 평소 즐기는 운동을 하러 연습장을 찾든, 읽기 시작하면 끝을 알아야 하는 추리소설을 밤새워 읽든, 몸을 나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수분이 빠진 몸에 에일맥주가 아니라 라거맥주를 부어준다. 깊고 풍부해서 책처럼 머리를 채우는 에일맥주가 아니라 청량하고 깔끔해서 운동처럼 몸을 비우게 하는 라거맥주를 마셔야 한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잠드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 거리를 두고, 숨을 고르는 것이다.
극약 처방전은 여행이다. 물리적으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 떠나온 곳의 두고 온 것들이 근경이 아니라 원경이 된다. ...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는 순한 마음이 된다.

술은 음식이므로 술 역시 그 쓰임새와 순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막걸리를 풀코스로 꾸리라면 금정산성 막걸리-배다리 막걸리-덕산 막걸리 순이다.


과부였지만 성공의 아이콘인 마담 클리코가 만든 와인이기에 '뵈브 클리코'는 성공한 여자의 와인으로 언급되고, 일의 성공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사랑과 일이 공존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 아쉬움, 속상함을 강렬함과 신선함이 조화를 이룬 완벽한 균형미의 샴페인을 만드는 데 쏟았던 것이다. 그래서 뵈브 클리코는 직장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신의 세계라는 끈을 놓지 않는 동료이기도 하고, 후배이기도 한 직장맘들에게 따라주고 싶다. 뵈브 클리코의 버블이 피어오르는 그 시간만이라도 쉬어가라고, 즐기라고, 행복하라고 말이다.


음식이란 식재료에 시간과 시즈닝과 데커레이션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이야기이다. 물론 신선한 재료를 이길 수 있는 요리법은 없겠지만, 음식은 만드는 이의 레시피를 악보 삼아 연주한다. 자주 하는 요리에 계량스푼 따위는 필요 없다. 눈대중과 한두 번의 간보기로 충분하다. 하지만 새로 시도하는 요리는 가급적 레시피의 재료와 순서와 양념의 양을 따라주는 것이 좋다. 


여행을 가면, 이른 아침 혼자 일어나 바다이든, 성곽이든, 숲길이든, 도심이든 산책을 한다.
...
새벽 산책은 여행을 더 길게 늘리고자 하는, 잊혀지고 바래질 수 밖에 없는 여행의 기억을 조금 더 붙잡고자 하는 나의 음미이다.
...
밤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두렵지만, 누구를 해칠 사람은 새벽길을 달리거나 걷지 않는다.


봄꽃은 하루 20km를 북상하고, 가을 단풍은 하루 25km로 남행한다고 한다. 자연도 사람처럼 만남보다 헤어짐이 속도가 빨라 단풍 소식 앞에서 때를 놓칠까 서두르게 된다.
...
나무에 단풍이 드는 것은 사실 떠나는 것이 아니다. 끝내는 것이 아니다. 다음 한 해를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비우는 겨울 채비이다. 가지의 수액을 뿌리로 내리면서 생기는 현상이 단풍이고, 비우는 길에서 나무는 노랑이 되고, 주황이 되고, 빨강이 되어 불타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비우는 것이 저리 고우니 눈을 떼기가 어렵다. 발길을 돌리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그냥의 시간으로는 되지 않는다.


갓 만들어진 음식은 그 음식이 원래 갖고 있는 것이 기분좋게 부풀려져 감성의 맛을 갖게 된다. 갓 지은 밥은 모락거리는 연기와 더불어 더 많은 수분과 찰기를 품고 있고, 갓 무친 나물에는 나물의 탱탱함과 침투하고자 하는 양념의 의지가 부딪히는 긴장감이 있다. 갓 구운 빵 속에는 볼을 최대한으로 부풀린 효모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담겨 있다. 갓 내린 커피는 뜨거운 소나기 뒤 무지개처럼 원두의 속내와 향이 쏟아지다 펼쳐진다.
갓 만들어진 것이 더 맛있는 것은 어쩌면 물성을 넘어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포개짐 때문일 것이다. 같은 시간에 머물고 있다는, 소중히 생각한다는 그 온기로 맛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마음이 된다.


꽃처럼 한 해 한 해를 살자! 문정희 시인은 꽃은 핏속에 주름과 장수의 유전자가 없기에 늙은 꽃은 없다고, 꽃의 생애는 순간이고, 순간에 전력을 다한다고 한다. 녹차의 깊이는 우전에만 있지 않다. 잎을 따는 시기가 다른 세작, 중작, 대작에는 또다른 깊이가 있다. 나이드는 것,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아름다운 외모에서 멀어지는 것보다 온전한 열정에서 멀어지는 것이 참혹한 일이다. 한 해 한 해가 새로운 백지이고, 마음을 다한다면 한 해 한 해가 전성기다.


연애가 아닌 사랑을 하자! 상대방밖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연애이고, 주변이 전부 보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이제는 그런 광고일의 끄트머리로 가고 있다. 부족함으로 시작해서, 아쉬움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광고 인생이 끝나기 전에 한 가지 바람만 남기라면 앞에 적어놓은 것 같은 술 광고를 만들고 싶다.


서운하다, 라고 써놓고 한참을 노려봅니다. 이내 눈빛은 약해지고 가슴도 주저앉습니다. 서운하다는 것은 그런 마음이지요. 뒷마음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그라드는 아쉬움과 달리 억울함과 억측이 꼬리를 무는 마음. 사랑과 미움이 뒤범벅되어 분별을 잃어버린 마음. 끝내 서러워 울음으로 터지는 마음이지요. 어쩌자고 이런 마음이 있는지요.


서운함에는 늘 물기가 함께이죠. 그것도 스며들고, 고이는 물기이죠. 그래서 서운은 얼룩이 남기 마련이죠. 서운했던 일과 사람은 잘 지워지지 않는 법이죠. 화에는 이해와 용서라는 어른의 알약이 필요하죠. 그러나 서운함이 가시려면 조심스럽게 순한 물약을 써야해요. 서운함은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아픈 것이 당연함을 그냥 받아들여야 해요. 천천히 나을 수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해요. 아이는 약이 아니라 울어서 낫듯이 그렇게 나를 위해, 서운함을 준 상대를 위해, 많이 울어서 나아야 해요. 눈물로 빨래를 하고 나면 언젠가 마르는 법이죠. 흘린 눈물이 많다면 얼룩도 사라지겠죠.


스스로를 넘어서는 술이 있다. 와인, 맥주, 청주는 뜨거운 불과 만나, 버리고 버티며 브랜디, 위스키, 증류식 소주가 된다. 와인, 맥주, 청주가 살아있는 술이라면 브랜디, 위스키, 소주는 살아가는 술이다. 살아있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같으면서도 참으로 다르다. 전자는 삶의 아름다움과 닿아있고 후자는 삶의 슬픔과 닿아있어 전자는 섞이려 마시고, 후자는 혼자이고자 마신다.


누군가 자신은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했다.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름다운 그늘이건, 어두운 그늘이건, 편안한 그늘이건, 서늘한 그늘이건, 슬픈 그늘이건 그늘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햇빛을 피하지 않고 오래 서 있거나,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침잠해간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늘은 만들어진다. 그늘이 있어야 머무를 수 있다. 그늘이 있어야 추억할 수 있다.


누군가는 상술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치부할 수 없는 자경씨의 미소, 말투, 배려가 있다. 고객의 취향을 알려 하고, 계속 체크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낮은 가격으로 사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자경씨는 와인숍이 와인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라 마시는 기쁨을 고객과 함께 고르는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같다. 나의 업도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자경씨처럼 클라이언트에 그러했는지 묻게 된다. 반성하게 된다.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어느 광고처럼 냉정하게 엎질러진 물처럼 다시 다시 담을 수 없다고 하지는 마. 사람, 사랑, 삶은 알 수 없으니까.


모르는 술을 만나면 행복해. 마시기 전까지 그 맛을 알 수 없으니까. 마시고 난 후의 나를 알 수 없으니까.


여름이다. 신맛, 쓴맛이 있어 입안에서 더 상쾌하게 기억되는 하귤청을 담근다. 하귤을 물에 담가두었다 솔로 깨끗이 문지르고, 데치고, 체반에서 물기가 말라가기를 기다린다. 물기가 사라지면 씨를 일일이 발라내며 자르고, 설탕이나 당에 켜켜이 재운다. 일주일 후면 탄산수를 넣어 상큼한 하귤에이드로 즐길 수도 있고, 여러 생각이 많은 밤, 데운 우유를 넣어 향긋하고 부드러운 하귤청라테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국문학의 거장은 쓰려면 그 10배를 읽어야 한다고, 그것이 글쓰기의 윤리라고 한다. 그렇듯 사랑받으려면 그 10배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윤리이다.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는 그 10배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의 윤리이다.
남이 해주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실 때는 모르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고 술을 담가보면 어마어마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준비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음식과 술은 깊어진다. 음식은 살이 되고, 술은 피가 되기에 더욱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다의 돌이 반짝이는 것은 돌이 스스로 반짝여서가 아니다. 바다의 물 때문이고, 햇빛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반짝이게 하는 곁이다. 곁이 있다는 것, 참 따스하다. 힘이 된다.


일년만에 옷이 해졌다. 여행지에서 산 스키니진인데 흔하지 않은 팥죽색에, 편해도 너무 편해 사계절 내내 사무실에서도, 여행에서도, 높지 않은 산에 오를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입었다.
...
그리고 알게 된다. 해지면 헤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소중한 것과 오래가기 위해서는 쉬어감이, 여백이 필요함을 말이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주 입게 되면 해지고, 좋아해서 자주 먹게 되면 물리고, 좋아해서 자주 만나게 되면 그리움이 사라진다.


나는 나다. 고독한 우주에서 유일한 별빛이다. 나로서 살라. 내가 태초이자 시작이고 빅뱅이다. 내가 인생을 시작하고 살다가 패배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가 가르친 대로 살지 마라. 내 실존의 지대한 존엄성에 대해 이 세계의 어떤 먼지도 모독할 수 없다. - 고은, 강연 중에서


술은 좋은 날에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시면 좋아지는 거라 했지. 씨클로도 행복한 날에 타는 것이 아니라, 씨클로를 타면 행복해져. 
...
술을 좋아한 진짜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뜻대로 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아 속상하고, 의기소침해지고, 연연해하는 것이 사는 일이다. 그래도 마음에 품고 기다리는 것이 있고, 기적처럼 어느 날 눈앞에 당도하는 일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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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4. 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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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숲으로 by 마스다 미리 (만화)

 

친구를 배려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자신에게 부담이 된다면,

그 배려와 '소중함'은 조금 거짓이다.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누가보지 않아도 꽃이 핀다는 것, 참 싱그러운 느낌이야.

 

헤드라이트는 2~3미터 앞을 비추는 거야.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해.

 

손 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

 

노를 젓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우주가 이런 느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주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건

이 숲속에서도 인간 뿐이야.

상상력이 없다면 인간다움이 없는 게 아닐까.

 

멋지지 않아?

하늘을 나는 모든 새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두부집 아저씨에게 그냥 '새'는 없어.

새에게도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이름이 있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인간'이라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거야.

그저 '인간'이라고만 여기니까 생명이 가벼워진다.

 

달 뒷면은 어떤 모양일까?

달은 언제나 같은 면이 지구를 향하고 있대.

그러니까 우리들은 달의 뒷면을 모르는거지.

그건 또 그대로 좋은 지도.

달은 달이니까.

 

엉겅퀴 꽃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피엇다가 점차 고개를 들어.

꽃이 피고나면 고개를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내가 이 세상에 피었다고 말이지.

 

쌍안경으로 새를 찾는 건 어려워.

먼저 자신의 눈으로 숲 전체를 보는거야.

새소리가 들리면,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보거나 나뭇잎 소리에 귀를 귀울여.

그리고 그것들을 잘 관찰해서 추측을 하는 거야.

쌍안경으로 보는 건 그 다음.

 

하눌타리 씨앗에는

하눌타리 나무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

 

거기에 비하면 발밑의 잡초들은 참 재미가 없네.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

이런 숲속의 잡초들은 커다란 나무에 가려 햇빛도 못보는데 살아있잖아.

조금의 빛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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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3. 3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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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by 채사장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면
너는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파괴한다.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건다면
짐승들도 너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러면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겨진 책을 읽으면 될까요? 한 번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별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어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사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진 세계,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책장의 감촉과 적당한 소음과 익숙한 냄새. 이 모든 것은 세계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왜곡되고 재구성된 모습일 뿐이다. 나는 세계의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기관과 뇌가 그려주는 세계의 '그림자'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자폐아다. 모든 의식적 존재는 자신의 마음 안에 갇혀 산다. 이러한 결론은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서구의 관념론 철학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인들의 중요한 결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세계가 자기 자신에 의해 재구성된 자아의 세계임을 지혜롭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관은 낯설다. 그것은 상식적이고 평균적인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한 현대인에게 이 문제가 한 번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일수록 사회는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당신의 자유, 당신의 내적 성장, 당신의 영혼, 당신의 깨우침, 당신의 깊은 이해. 그 어떤 것도 사회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세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놀랍도록 독특하고 유일한 자아라는 존재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신비로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소비자와 시장의 관계를 말하고, 정치는 시민과 정부의 관계를 말하며, 사회는 대중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과학은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말할 뿐이다. 그 어디에서도 자아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샤갈의 '산책'
https://www.asiae.co.kr/article/2011033109004650303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 이것이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다. 이제 그의 지평은 나의 지평으로 침투해 들어와서 결국 나의 세계와 겹쳐진다. 나는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기존의 세계에는 없던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의 향기, 그의 옷가지, 그의 가구들, 그의 취향, 그의 언어, 그의 습관들, 그의 세계관, 나는 그가 먹는 것을 먹고, 그가 하는 말을 따라 하며, 그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될 사람이 필요한 거야."
여인은 알고 있었다. 남자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것은 그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말이니까. 필요 때문에 붙잡고 있는 것과 사랑하기에 함께 하는 것은 다르다.

소녀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무수히 많은 꿈을 꾸었고, 꿈 가운데 순수한 열망과 환희와 아쉬움과 미련을 경험했다. 그러헥 충분히 감정적 소모를 끝낸 후에 햇살에 반짝이는 침구 위에서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녀는 한동안 그대로 누워 베게에 남아있는 그의 냄새에 안도하며 지난밤의 꿈들을 기분좋게 상기했다. 그녀가 오두막에 소년병이 없음을 알게 된 건 한참의 시간이 더 지나서였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자신이 목표로 삼은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통념과는 반대로 흔한 것은 이들이다. 한 가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한 가지 목표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다. 이들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이유는 이들이 강한 의지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들이 나약해서다. 현실에서의 경험이 부족하고 세계의 복잡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들은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 분명해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이것에 집중하겠다는 단순한 전략을 세운다.
그래서 이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한 가지 전략으로 대응하는 적처럼 우스워 보이는 것은 없다. 세상은 이들을 쉽게 쓰러뜨린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쓰러진 이유를 오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재도전을 다짐하며 또 다시 이렇게 말한다. 예전의 나는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에게 골라보라며 펼쳐주는 것들. 진로, 직업, 사업, 종교, 신념, 목표, 미래. 세상은 한 번도 당신에게 단 한가지만을 골라 그것에만 매진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반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전문직을 가져라', '평생 의지할 수 있는 하나의 종교를 가져라',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라', '언제나 노력하고 나태해지지 말라' 하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애햐 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그것밖에 없는 빈곤하고 겁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거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내야만 한다. 그것은 가르쳐준다고, 알려준다고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가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이해는 오래 산 존재들과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이 세상이 처음인 싱싱한 존재들이 장악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게 아니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치열하고 다채롭고 활력 넘치는 이유가. 그래서 세상은 여행할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무엇이 비극인가? 우리는 지금도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자기가 눈뜬 신체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해서, 그것을 아끼고 애지중지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은가? 도대체 뭐가 그리 문제란 말인가?
집착 때문이다. 나의 신체와 내가 가진 것에 마음이 쏠려 한시도 잊지 못하고 매달리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나에게 연결된 것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유일한 것이라서 그것이 어찌 될까 봐 조마조마해 하고, 움켜쥐려 하고, 끝내 감싸 안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이 된다.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버거운 이유, 내 삶이라는 게 남의 삶보다 더 고된 이유, 내가 손에 쥔 것이란 남이 가진 것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이유, 나의 삶은 이상하게 번잡하고 고통스러웠던 모든 이유는 그래서였던 것이다.


모든 자아는 살아가는 시간이 다를 뿐만이 아니라, 시간의 범위와 길이에서도 차이를 갖는다. 쉽게 말하면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가까운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살아가고, 다른 이는 아주 먼 미래를 현재로 당겨와 살아간다.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가까운 시일에 티벳에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언제나 보편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만약 인류의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보편의 삶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티벳인들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보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짜 이유인가. 왜냐하면 티벳에 가겠다는 생각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오래된 의무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처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너무도 많이 반복해왔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건,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으로부터 티벳 여행에 관한 책을 받았을 때였다. 그동안 그녀를 얼마나 불안하게 만들어왔던 것인가. 나는 미안해졌다.


만다라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미적인 색감과 모양과 승려들의 정성 때문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만다라가 완성과 함께 무너지기 때문이다. 승려들은 만다라를 남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히 쌓여진 바로 그 순간, 승려의 모진 손이 둘레의 가장자리부터 중앙까지를 훑는다. 망설임 없는 그 손짓에 모래는 뒤섞이고 선명한 색상은 혼합되어 빛을 잃는다.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끝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죽음은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수동적으로 닥쳐오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죽음이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하나의 사고이고 돌발이며 일탈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회피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다음으로 능동적인 선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알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죽음을 전체 과정의 마무리로, 수작업의 마감질로, 여행의 마지막 날로, 긴 문장의 마침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가진 이에게 죽음은 삶과 단절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길고 긴 인생을 마치고 결실을 수확하는 시간이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만 고마웠다. 연인의 불안을 나누어 지고 젊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해준 그녀에게 다만 고맙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무거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무엇이 그리 무겁다고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이야기는 나와 세계를 관계 맺는 도구다.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어떤 안경이 되었든 반드시 집어 들어야 하고, 그 안경의 색깔이 만들어지는 명도와 채도 안에서만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A에게 이들의 존재는 인정될 수 없다. A에게 B, C, D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다만 A의 여집합, 즉 'A가 아닌 것들'로 규정된다.
이제 A에게는 역할과 의무가 발생한다. A가 진리이고 보편이며 전체이기 위해 A가 아닌 것들에 대한 제거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폭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회유, 유인, 강제, 억압.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자본주의가 사라진 이상적인 세계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 세계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는 세계다.
"내가 오늘은 이것을, 내일은 다른 것을 할 수 있고, 아침에 사냥 가고 오후에 고기 잡으러 가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에 몰두할 수 있게 되어, 나는 사냥꾼이나 어부, 목자나 평론가와 같은 전문인이 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괜찮은 체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본주의가 나의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분야의 노동자라는 제한된 역할에 만족하라.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 나는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놀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지 대강이라도 느끼고 있어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사용한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노하우는 천차만별일 테지만, 이를 단순화해보면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의 양을 늘리는 방향과 언어의 양을 줄이는 방향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A라는 의미를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고자 할 때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하거나, 반대로 요약해서 핵심만을 전달한다. 이 두 방법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선택해서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보통은 습관적으로 하나의 방법만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장황하게 부연설명을 반복해서 나의 영혼까지 탈진시키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 반대로 충분히 설명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고 나중에 왜 말귀를 못알아듣느냐고 나에게 화를 내는 습관을 가진 사람.


<더덕 냄새>
비린 봄비 내음
코 속에 모았다가

지하철 화능로
더덕 파는 할머니 앞에
살살 흘리면

더덕 내음 한 줌
흙 내음 덤 해서
바꿔줍니다


책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글을 깨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체험이 필요하다.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힘들이지 않고도 읽히는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보자.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불안은 점차 가라앉고 머릿속의 안개는 조금씩 걷히게 될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당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체험들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며 언어로 정리되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항상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미디어는 항상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초조해졌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다만 먹고살기 위해 애쓰고, 해야 하는 일들을 겨우 수습해가는 작고 평범한 사람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안타까운 분노 속에서 그 시작을 떠올려보려고 애썼고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훌륭한 사람도, 가치있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웃을 줄 알고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


죽음이 안타까운 건 그것이 개체의 소멸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관계의 끊어짐 때문이리라. 인생이라는 시간 동안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짜낸 관계의 직물은 죽음과 동시에 올올이 풀리고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타자와 맺었던 이어짐도, 세계와 맺었던 이엉짐도, 그들 사이를 오고갔던 말과 글도, 침묵과 허망함 속으로 가라앉고, 남은 자들의 가슴에는 뜯겨나간 상흔만이 깊게 남는다.


날이 저무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지 모른다. 노을지 지는 것도, 움켜쥐엇던 강물이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도, 정성과 집착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 바람에 야위어가는 것도, 약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과정일지 모른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이해하게 될, 그 어떤 약속에 대해서 나는 기대해보기로 했다.


팔라우의 해파리 호수. 나는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지 않다.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호수와 황금색 해파리들의 물결을 보고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그들의 내면세계는 거기 도착한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면세계를 경험할 기회는 이번 삶을 충분히 아름답게 살아낸 이후에야 비로소 선물처럼 주어질는지, 알 수 없다.


질문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보통 답변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수많은 질문과 답변 중에는 답변이 아니라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無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둥근 삼각형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언어로는 표현 가능하고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하지만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질문에 제시된 개념이 이미 질문 안에서 한계 지어지거나 모순되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소설이자 영화로 제작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우리는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질문하거나, 질문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질문한다. 나는 특히 인류가 오랜 시간 고민해왔던 중요한 질문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의심이 오래될수록 의심이 실제처럼 느껴지듯, 질문이 오래될수록 질문은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그 자체로 답변의 범위를 강력히 제한하는데, 그것은 술어부인 '누구인가' 때문이다. '누구'는 인칭 대명사로 막연히 사람을 지시한다. 이것이 문제다. 이 질문은 모든 답변의 가능성에서 나의 의미를 사람에 한정한다.
물론 제한된 상황에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찾는 해답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질문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대답이 자아의 본질에 대한 것이라면 이 질문은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답부터 말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위의 사실을 두 가지 시점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외부의 타자의 시점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당신은 잠깐의 발현 후 만년 동안 소멸하고 다시 잠깐의 발현 후 소멸하고를 반복한다. 여기에는 죽음이 있고, 단절이 있으며, 긴 침묵이 있다. 두 번째는 실제로 경험하는 나의 시점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이다. 나는 발현된 후에 삶을 경험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 죽음에 수렴한 직후 곧 바로 다시 눈뜨게 된다. 당신은 곧바로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서 눈 뜨고 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죽음은 문이 되고 통로가 된다.
기억해야 한다. 당신의 의식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세계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의 의식 안에서 시간과 공간은 매끄럽게 이어진다. 물론 어떤 기억도 이어지지 않을 것이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일 것이며, 당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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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2. 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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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부두로 가는 길 (The Road to Wigan Pier) by 조지 오웰 / 르포르타주

이런 점을 사람들은 늘 간과하기 쉽다. 우리는 탄광을 생각할 때 깊이와 더위를, 암흑을, 그리고 채벽을 파내는 시커메진 사람을 생각하되, 기어서 몇 키로미터를 왔다갔다 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는다.

중산층 중에는 '하층민'은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기차를 타고 가다 어쩌다 캐러밴 거주지를 보면 다짜고짜 저런 데 사는 사람들은 원해서 저러는 거라고 여기는 이들이 아직 있는 게 분명하다. 요즘 나는 그런 유의 사람들과는 절대 언쟁을 하지 않는다. 한편 캐러밴 거주자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돈을 아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일반 주택 못지 않은 집세를 내고 있다. ... 그렇다면 확실히 누군가는 캐러밴 때문에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 아닌가! 아무튼 그들이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주택 부족 때문이지 빈곤이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배에 기름 찬 부르주아들은 슬럼 거주민들이 스스로 좋아서 불결함과 혼잡함을 원하다고 믿고 싶어하는데, 그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번듯한 집을 줘보라.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번듯하게 가꾸는 법을 금세 배울 것이다. 나아가 근사한 집을 주면, 그들은 그 수준에 맞춰 보다 자존적이고 청결한 생활을 해나갈 것이고, 아이들은 더 나은 삶을 시작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실업자 수가 200만이라는 수치 인용을 보면, 200만 명이 실직했으며 그 나머지 인구는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쉽다. 나만 해도 최근까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왔다고 인정해야겠다. 
... 하지만 이는 엄청난 과소 추정이었다. 우선 실업 통계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실업수당을 타는 이들 뿐이며, 그들은 대개 한 가계의 가장이기 때문이다. 실업 가장의 피부양인들은 그들 역시 별도의 수당을 타지 않는 한 수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자산조사'가 끼치는 가장 큰 해악은 이산가족을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 제도 때문에 노인들이, 그 중에도 때로는 병석에 누워있던 노인들이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무기력감은 아무리 지성이 뛰어나다 해도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러다 처음으로 가까운 주거지에서 실업자들을 보았을 때, 몹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중 많은 사람들이 실직한 것을 '수치스러워' 한다는 사실이었다. ... 그 당시에는 누구도 실업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실업이 계속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모두 같은 처지가 되면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말하자면 여생을 실업수당에 의존하기로 작정한 듯한 사람들이 잔뜩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감탄스럽고 심지어 희망적이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정신적인 파탄을 겪지 않으면서 그럭저럭 그렇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노동 계급은 중산층처럼 빈곤의 부담 때문에 망가지지 않는다. ... 즉, 그들은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어떤 면에서는 생각만큼 사정이 나쁜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은 그럭저럭 정상이라 할 수 있으며 생각 이상으로 그렇다. 수많은 가족이 빈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 제도가 깨진 건 아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보시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동 계급이 겉으로나마 보이고 있는 적응은 그들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혁명적으로 변한 것도 자존심을 잃은 것도 아니다. 단지 노여움을 참고, '피시 앤드 칩스' 수준에서 그럭저럭 견뎌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나는 열네 살 소년들이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반강제로 가망없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는 상상을 하며 한탄을 하곤 했다. 열네 살 나이에 운명적인 일자리를 부여받는다는 사시은 내가 보기엔 끔찍한 일이었다. 물론 이제는 나도 학교 떠날 날을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 노동 계급 소년이 천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역사니 지리니 하는 웃기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진짜 일을 배우기를 바란다. 노동계급이 보기에 어른이 다 되도록 학교에 남아있다는 것은 한심하고 사내답지 못한 일이다. 집에 매주 1파운드는 갖다줘야 할 열여덟 살 다 큰 사나이가 우스꽝스러운 제복을 입고 학교에 나갈뿐더러 숙제를 안했다고 지팡이로 얻어맞기까지 하다니! 열여덟 살 노동 계급 청년이 지팡이로 얻어맞는 걸 자신에게 허락한다는 상상을 해보라! 학교에 있는 또래는 아직 어린애지만 그는 어른이다. 새뮤얼 버틀러의 '모든 목숨의 길'에서 어니스트 폰티펙스는 진짜 인생을 몇 번 슬쩍 들여다본 뒤 자기가 받은 사립학교와 대학에서의 교육을 돌이켜보고는 그게 얼마나 "병적이고 무기력하고 방탕한" 것인지 알게 된다. 노동 계급의 시각으로 보면 중산층의 삶은 병적이고 무기력한 데가 많은 것이다.

연 소득이 400파운드 수준이면서 이 계급에 속한다는 건 참으로 피곤한 노릇이었다. 그럴 때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은 순전히 이론적인 사실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론상으로는 하인들에 대해 전부 알고 그들에게 팁 주는 요령까지 다 알았지만, 실제로는 집에 함께 거주하는 하인이 기껏해야 한둘이었다. 이론상으로는 정장 입는 법과 정찬 주문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번듯한 양복점이나 번듯한 음식점에 갈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는 사냥하고 승마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말도 없고 사냥할 땅 한 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아야 하급 상류 중산층이 인도에(더 최근엔 케냐나 나이지리아 등에) 매력을 느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군인이나 공직자로 그곳에 간 사람들은 돈벌이를 하러 간게 아니었다. 돈은 군인이나 공직자가 버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거기까지 간 것은 예컨대 인도에 가면 말도 싸고 사냥도 공짜로 하고 얼굴 까만 하인들도 얼마든지 둘 수 있어 특권층 노릇을 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문제들을 따져보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급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산층은 '속물'이라는 말에서 그쳐버리낟면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속물근성이란 것이 일종의 이상주의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런 근성은 중산층의 자제가 목 씻기와 나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배우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하층민'을 멸시하는 법을 배우는 초등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계급간 반목이 줄어드는 듯 보이는 이유는 요즘엔 그런 감정이 인쇄물로 잘 표출되지 않아서인데, 그것은 우리 시대가 표현에 인색한 습성을 갖게 된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신문뿐 아니라 책까지도 노동 계급인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이기도 하다.

중산층인 사람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공산당에까지 가입했다고 하자. 그래서 달지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자본주의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살아야 하는 만큼 그는 계속해서 돈벌이를 해야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그가 부르주아로서의 경제적 지위에 매달리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취향이나 습관, 거동, 상상력의 배경은, 공산주의 용어로 말해 그의 '이데올로기'는 변할까? 이제는 선거에서 노동당에, 아니면 가능한 경우 공산당에 표를 던진다는 것 말고 그에게 무슨 변화가 가능할까? 그가 여전히 습관적으로 자기 계급 사람들과 어울리느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그와 뜻이 같을 노동 계급 사람보다는 그를 위험한 '과격분자'라 여기는 같은 계급 사람과 있는 게 훨씬 더 편하다. 음식, 와인, 의상, 독서, 그림, 음악, 발레에 대한 취향은 여전히 현저하게 부르주아적이다. 무엇보다 그는 반드시 같은 계급 사람과 결혼한다. 어느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를 봐도 그렇다. 이를테면 영국 공산당의 아무개 동지나 '유아를 위한 맑시즘'의 저자를 보라. 공교롭게도 아무개 동지는 이튼 출신이다(오웰 역시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 출신이다). 그는 이론상으로는 바리케이드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만, 아직도 양복 조끼 맨 아래 단추는 채우지 않는다. 그는 프롤레타리아를 이상시하지만, 그의 습성이 그들과는 너무 무관한 게 놀랍다. 어쩌다 한번 순전히 허세로 상표를 떼지 않고 시가를 피운 적은 있어도, 치즈를 칼끝으로 찍어 입에 넣는다거나 모자를 쓰고 실내에 앉아 있다거나 접시에 고인 차를 마신다거나 하는 일은 그로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식탁에서의 예절은 그의 진정성을 검증하는 기준으로 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한 시간이 넘도록 자기 계급을 비판하는 장광설을 들어본 적은 여러 번 있어도, 프롤레타리아의 식탁 예절을 익힌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 모든 미덕은 프롤레타리아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아직도 수프를 소리 내지 않고 마시려고 용을 쓰는 것일까? 이유는 속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몸가짐을 역겨워한다는 것밖에 없다. 노동 계급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무시하도록 배운 어린 시절의 교육에 아직도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열네댓 살 때의 나는 혐오스러운 어린 속물이었지만 같은 계급의 또래 소년들에 비하면 약과였다. 속물근성이 사라질 줄을 모르며 너무나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지다시피 하는 곳 치고 영국의 사립학교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립학교에선 영국의 '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야 졸업한 지 몇 달도 못 돼 다 까먹는다 해도 속물근성은 계속해서 뿌리를 뽑아주지 않는 한 무덤에 갈 때까지 메꽃처럼 들러붙는다.
학교에서 나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나보다 집이 부유했다. 내가 비싼 사립학교에 간 것은 순전히 어쩌다 받게 된 장학금 덕분이었다. 하급 상류층이나 성직자, 인도 거주 영국인 관리 등의 자제들이면 대부분 나같은 처지였으니, 그것이 나에게 끼친 영향은 일반적인 것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는 내 신분에 더 열심히 매달리려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보다 부유한 부모를 두고 그런 사실을 내게 명심시켜주던 아이들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특권 계급'으로 분류되지 않는 아이는 무조건 멸시했으며, 탐욕스러운 부자들, 특히 최근에 부자가 된 졸부들도 미워했다. 그래서 나는 특권 계급 출신이되 돈은 없는 게 가장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하급 상류층의 '신조'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큰 위안이 되었고, 제임스 2세의 추종자가 된 듯한 낭만적인 기분도 들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런 유리벽을 그냥 통과할 수 있는 것인 양 대하는 게 유행이다. 물론 계급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동시에 누구나 '자신'은 무슨 신기한 수가 있는지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속물근성이란 다른 모든 사람에게서는 확인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예외인 악덕이다. '믿음과 실천'을 겸비한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은 적어도 '자신'만큼은 계급적 불의를 당연히 벗어나 있는 줄 안다. 자기 이웃들과는 달리 부나 서열이나 작위 같은 부조리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나는 속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보편적인 '신조'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누구나 그게 엉터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 모두 계급 차별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것이 정말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대안은 제국을 뒤집어엎고 영국을 축소시켜, 우리 모두 아주 열심히 일해야 하고 청와 감자를 주로 먹어야 하는 춥고 시시하고 작은 섬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좌파 사람도 원치 않는 바다. 그러면서 그는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아무 도덕적 책임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는 제국의 단물은 다 빨아들일 태세이면서, 제국을 지키는 사람들을 조롱함으로써 자기 영혼을 구제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번거롭게 자신의 습성과 '이데올로기'를 바꾸지 않고도 계급 차별을 철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방에서 계급 타파를 위한 활동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어딜가나 자신이 계급 차별을 타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정말로 믿는 선의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나는 계급 타파를 위한 그런 모든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아주 심각한 잘못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것들은 때로는 부질없는 짓에 그치고 마는 수도 있지만, 분명한 성과가 나타날 때는 대개 계급적 편견을 '강화'하는 노릇을 한다. 그것은 조금만 생가해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고 계급간에 불편하고 자연스러운 평등을 강권했으니, 거기서 비롯되는 마찰 때문에 그냥 뒀으면 영영 묻혀버렸을 수도 있는 온갖 감정이 표출되고 마는 것이다.
...
현명한 수순은 속도를 늦추며 다그치지 않는 것 뿐이다. 스스로를 특권 계급이며 그 자체로 청과상의 심부름꾼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면, 거짓말을 하는 ㄳ보다는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훨씬 낫다. 궁극적으로는 속물근성을 떨쳐버려야겠지만, 제대로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떨쳐버린 척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다.
그렇기 때문에 어딜 가나 스물다섯 살 때는 열렬한 사회주의자이던 중산층 사람이 서른다섯 살 때는 거만한 보수주의자가 되는 한심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의 보수 회귀는 충분히 자연스러운, 아무튼 생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는 변화다.

물론 노동 계급 '출신'이면서 이론적이고 딱딱한 문어를 구사하는 유형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로 '남은' 사람이 절대 아니다. 달리 말해 그들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문단의 인텔리가 되어 중산층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유형이거나, 노동당 하원의원 또는 고위 노조 간부가 되는 유형인 것이다. 이 마지막 유형은 세상에 비할 데가 없는 꼴불견이다. 그는 정작 자기 동료들을 위해 싸우라고 선출됐지만, 그 자리는 그에게 오로지 편안한 일자리와 신분 '향상'의 기회일 뿐이다. 그는 다름 아니라 부르주아와 싸움으로써 부르주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 남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먼저, 사회주의의 적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적이란 자본주의가 사악하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메스꺼워지며 부르르 떠는 사람들을 말한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별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모자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배에 기름기 차고 불경스러운 '진보'라는 관념을 떠올리기 너무 쉬우며, 전통이나 기본적인 미감을 중시하는 정서를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관념에 반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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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1. 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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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임경선, 요조)

 

(임경선) 사람들은 보통 '나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구하는가'의 답을 찾기 위해 머리 싸매고 자아 찾기를 하고, 이것저것 건드려보곤 해. 막상 해보니 '어라? 이게 아니었나?' 싶으면 또다른 것을 찾아보고...
... '나다운 삶'을 찾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 반대방법이 낫다고 봐.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하기 실흔 걸 하지 않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왜냐, '좋음'보다 '싫음'의 감정이 더 직감적이고 본능적이고 정직해서야. '하기 싫은 것 /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 이런 것들을 하나둘 멀리 하다보면 내가 뭘 원하는지가 절로 선명해져. 글쓰기로 치면 일단 손 가는대로 편하게 막 써놓은 후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직감적으로 가지치기하는 거지. 그러면 글이 명료해지면서 내가 애초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가 분명해지지. 더 나아가, 직감적으로 '아, 싫다'라고 느끼면 나를 그들로부터 격리해주는 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이라고 생각해.


(요조)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아. 솔직함을 포기하면 당장의 불편함이나 위기는 모면해도 가면 갈수록 근본적인 만족을 못 느끼고 '얕은 위안'으로 겨우 연명'하거든.
...
어떤 솔직함은 못됐다는 거 언니도 아시죠. 타인이 민망을 당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이 상처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솔직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요. 반면 누군가는 반대로 타인의 상처를 희석시켜주려고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실패를 일부러 드러내면서 솔직을 사용하죠.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이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끝끝내 솔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요.

(임경선) 나에게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일'은 그저... 원래 멋졌던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게 바로 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일인데.

(요조) 아무튼 사랑으로 엮인 관계 안에 계란처럼 비밀이 있다면 다들 조심조심했으면 좋겠어요. 뭐가 들었는지 일일이 바닥에 깨뜨리면서 이게 사랑이야! 라고 외치는 바보짓은 제발 좀 멈추고요.

(요조) 꽃은 인간의 애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애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봐도 봐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멀리서 보면 화사하고 아름답고 청초한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정말 야하고, 음흉하고.

(임경선) 혹시 영화 <컨택트>를 본 적 있니? 원작소설의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지. 한 과학자가 자신의 미래에 닥칠 어떤 불행에 대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는데, 그 불행은 박완서 작가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아주 미량의 감미로움조차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슬픈 일이야.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나중에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면서도, 정해진 수순대로 담담하게 걸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행복을 한껏 끌어안아. 마치 훗날의 불행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모른다는 듯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는 고통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자아낼 수 있는 어떤 고요함을 보여주었지. 그래서 보는 사람에겐 오히려 더 예리한 통증과 울렁거림이 여운으로 남더라.
...
난 '어차피'와 '다 똑같아'라는 말 그 자체에도 반대하는 입장잉. 그것은 애초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차단하고, '안 좋아짐'을 기정사실로 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단수낳게 하향평준화시키는 단어라고 생각해.

(임경선) 나는 '비겁한' 사람이 싫어.
...
비검함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어. 나는 비겁한 사람이란 우선 자기 자신과의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사람 같아.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그것을 해소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고, 과거의 상처가 있어도 그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드하거나 아물게 하려고 애쓰는 대신, 남을 탓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만 하는 느낌이야. 일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정직'하지도 못해. 자기 자신한테 정직하지 못하니까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뒤틀리고 꼬인 모습을 보여.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 가령 자기나 주위 사람이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 리트머스지 테스트처럼 그 사람의 본질이 나타나는 것 같아.

(임경선) '대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야. 서로에게 '언제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특히나 같이 살고 있다면 참지 말고, 자신이 솔직하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갈등을 겪는 게 힘겹고 두려우니까 그냥 적당히 맞추면서 넘기거나, 핵심을 피하거나, 익숙함으로 산다고 체념하거나, 남편하게 다 맞춰주는 '너그러운 엄마 역할'은 하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격한 싸움이나 피눈물과 절망감이 동반된다고 해도, 이 사람에게만은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해야겠다고 늘 다짐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임경선) 상대가 원하는대로 하기 위해 내가 무리해서는 안돼.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되는 진리지. 내가 나를 억누르고 상대가 원하는 바대로 하게 두면, 그리고 아무리 봐도 그 요구가 부당해 보인다면, 내 안에 분노가 쌓이게 돼. 의무감에서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그 상대를 좋아할 수가 없어.

(요조) 여태 해왔던 자신의 일을 돌연 그만두고 다른 것에 도전하는 것만 용기가 아니라, 여태 해오던 일을 앞으로도, 가능한 오래, 변함없이 지속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재조정하는 것도 정말 큰 결단의 태도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자신의 현실적인 한계를 직시하는 용기인 것이죠.

(임경선) 오랜 상처를 그냥 나의 일부로서 가지고 살자고 결기있게, 밝게, 체념할 줄 알아야 해. 놓아줄 건 놓아주고, 보내줄 건 보내주고, 훌훌 털 거 다 털어버려야 하는 시기야.
...
몇 살이 되어도 고민하는 것은 좋은 거야. 고민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고민을 하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찾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거야.

(요조) 하나의 통일된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좇아가며 우리는 타인과 약속을 하고, 비행기나 영화 예매를 하고, 잘 시간을 정하고, 일어날 시간을 정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정작 자기 인생에서는 제각각의 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장강명 작가님이나 박산호 번역가님처럼 자신에게 남아 있는 전 생애를 추정해서 계산하는 시계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니나 저처럼 1년 정도의 시간만 계산이 가능한 시계를 차고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임경선)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 당신은 그게 진짜 질문이 아니라고 지적할지도-정확한 지적이다-모르겠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질문이 성립하겠지.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질문이 되지도 않는다. 얼마나 사랑할지, 제어가 가능한 사람이 어디있는가? 제어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대신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사랑만은 아니다. (줄리언 반스, 연애의 기억)

(요조) 제가 인류에 느끼고 있는 가장 서글픈 귀여움 중에 하나는 대체로 인간은 울다가도, 절망가다가도 배고픔을 느낀다는 거예요. 얼른 빵을 굽고 달콤한 잼을 준비하고 차가운 두유를 아끼는 잔에 따라야지.

(요조) 똑같이 비슷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아도 매 순간 공들여 임하는 사람의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윤이 나는가봐요.

(임경선) 노력하는 사람이 왜 멋진 줄 아니? 다른 멋진 사람을 보고 '멋지다'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인정할 수 있어서 그래. 너의 노력하는 모습과 노력하지만 그거을 겉으로 굳이 티내지 않는 모습이 꽤 멋있다고 생각해.

(요조) 나 정도면 제법 삶을 유연하게 살고 있다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면 지금의 나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내심 생각했거든요. 사실 누구나 저처럼 생각할 거예요. 세상은 자고로 이런거다, 라는 지론이 다들 자기가 살아온 삶을 통해 두툼해진 채로 우리는 어른이 되잖아요.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는 타인들을 그다지 설득하고자 하지도 않죠. 보통은 근야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길 뿐이에요. 저 사람은 나랑 생각하는 게 다르네, 하고 거기서 그냥 끝.
...
'나는 태어날 때부터 행복이라는 대전제 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 기억하고 싶다. 더이상 자잘하게 행복을 구체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다보면 나는 불행까지도 하나하나 느껴야 할 텐데 그게 싫다. 나는 아픈 게 싫다.'
...
이제는 행복이라는 걸 끼니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아무리 꽉꽉 배부르게 먹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또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처럼 최대한 맛있는 거 먹고 배부름을 잠깐 만끽하고 다시 배가 고프면 또 맛있는 걸 찾아헤매는 식으로 행복을 다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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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20. 1. 2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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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그는 한없이 자책하다가 결국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며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도무지 비교할 길이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버녿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토마시는 독일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에서 동정(compassion)이라는 단어는 타인의 고통을 차마 차가운 심장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고통스러워하는 이와 공감한다는 뜻이다. 거의 같은 뜻을 지닌 연민(pity)이라는 단어는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관용을 암시한다. 한 여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그녀보다 넉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몸을 낮춰 그녀의 높이까지 내려간다는 것을 뜻한다. 
... 누군가를 동정 삼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co-sentiment)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소련군 사진을 찍으며 그녀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다. 그동안만은 연속극처럼 계속되었던 그녀의 꿈이 중단되어 그녀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탱크로 무장한 소련군이 그녀에게 평온을 가져다 준 셈이었다. 축제가 끝난 지금, 그녀는 다시 그녀의 밤이 두려워졌고 밤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와 유사한 상황을 다시 찾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외국으로 떠나고 싶은 것이었다.
...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고자 하는 자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음식 값을 치르고 레스토랑을 나와서 더욱더 감미로워지는 우울에 빠져 거리를 산책했다. 테레자와 함께 산 칠 년이라는 세월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미 추억이 된 그 시절이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와 테레자의 사랑은 분명 아름다웠지만 피곤하기도 했다. 항상 뭔가 숨기고, 감추고, 위장하고, 보완하고, 그녀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하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질투심과 고통과 꿈에서 비롯된 비난을 감수하고, 죄의식을 느끼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이제 피곤은 사라지고 아름다움만 남았다.

인간은 신체의 모든 부분에 이름을 붙이고 난 후부터 육체에 덜 불안해했다. 또한 이제는 영혼이란 뇌의 피질부 활동에 불과하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은 과학 전문용어에 가렸고 오늘날에는 그저 싱거운 웃음을 자아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군가를 미친 듯 사랑한느 사람이 자신의 창자가 내는 꾸르륵 소리를 한번 듣기만 한다면,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과학 시대의 서정적 환상은 단번에 깨지고 말 것이다.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그런 모든 행동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내팽개치려는 유일하고 격렬한 몸짓이었다. 아홉 구혼자가 그녀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던 시절에 어머니는 맨살이 드러날까 조바심을 내던 여자였다. 그녀는 수줍음을 자기 육체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삼았다. 그녀는 한때 그녀가 과대평가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지나간 삶과 엄숙하게 결별하고자 철저하게 뻔뻔해졌다.
내가 보기에 테레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삶을 멀리 내팽개쳤던 어머니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항상 베일에 가린 법이다. 결혼을 원하는 처녀는 자기도 전혀 모르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명예를 추구하는 청년은 명예가 무엇인지 결코 모른다. 우리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철저한 미지의 그 무엇이다. 사비나 역시 배신의 욕망 뒤에 숨어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목표일까? 제네바를 떠나온 이래 그녀는 이 목표에 부쩍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따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그래서 토마스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오이디푸스는 어머니와 동침하는 줄 몰랐지만 사태의 진상을 알자 자신이 결백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무지가 저지른 불행의 참상을 견딜 수 없어 그는 자기 눈을 뽑고, 장님이 되어 테베를 떠났던 것이다.

외과 수술은 의사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근본 수준을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이 맞닿는 한계까지 고양했다. 누군가 사람의 두개골을 강력하게 내리친다면, 그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 숨쉬기를 영원히 멈출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간에 숨쉬기를 멈출 것이다. 이 살인은 조금 나중에 신이 손수 해결할 일을 앞당겼을 따름이다. 신이 살인은 예측했을 테지만 아마도 외과 수술은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신은 자신이 발명해서 조심스레 피부로 감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하고 봉합한 체제 내부에 인간이 감히 손을 집어넣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토마시는 처음으로 마취 상태에서 축 늘어진 환자의 피부에 메스를 대고 확고한 힘을 가해 그 피부를 찢고 다시 정확한 솜씨로 봉합하면서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신성모독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의학에 이끌린 것은 필경 이런 점 때문이었다!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 행복 없는 쾌락은 쾌락이 아니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비극을 어깨에 걸머졌던 그가(그는 신의 아들이자 추락한 천사였다) 왜 이제는 고상한 것(신과 천사들)이 아니라 똥 때문에 심판받아야만 했을까? 가장 고상한 비극과 갖아 일상적 사건이 이토록 현기증 날 정도로 근접한 것일까?
현기증 날 정도로 근접하다? 근접성이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말일까?
그렇고 말고. 북극이 남극에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한다면 지구는 사라질 것이고, 인간은 현기증 나는 진공 속에 놓여 추락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던진 것은 의미가 사라진 세계의 무한한 가벼움 때문에 한심하게 치솟은 천칭 접시 위에 자기 몸을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스탈린의 아들은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그러나 똥을 위해 죽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제국 영토를 보다 동쪽으로 넓히기 위해 생명을 바친 독일인들이나 조국 세력을 보다 먼 서쪽까지 뻗어 나가게 하기 위해 죽은 러시아인들. 그렇다, 이들은 멍청한 짓을 위해 죽었고, 그들의 죽음은 의미도 없고 보편적 결과도 낳지 못했다. 반면 스탈린 아들의 죽음은 전쟁의 광범위한 바보짓 중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이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생각 중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생각이 테레자의 영혼 속에서 싹텄다. 카레닌과 자신을 잇는 사랑은 자기와 토마시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보다 낫다. 더 크다는 것이 아니라 낫다는 것이다. 테레자는 자기 자신이나 토마시 그 누구도 비난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이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적어도 여러 형태 중에서 최상의 경우라도) 본질적으로 개와 인간 사이의 사랑보다 열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 역사의 이러한 기형태는 아마도 조물주가 계획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다. 테레자는 카레닌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랑조차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 한 쌍을 꾀롭히는 질문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할까? 나보다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더 사랑할까? 사랑을 의심하고 저울질하고 탐색하고 검토하는 이런 모든 의문은 사랑을 그 싹부터 파괴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도 있다. 테레자는 카레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를 자시느이 모습에 따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가 지닌 개의 우주를 수락했고 그것을 압수하고 싶지 않았으며 그의 은밀한 성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녀가 개를 키운 것은 그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남편이 부인을,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바꾸고 싶어하는 것처럼) 단지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그에게 기본적인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런 점도 있다. 개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발적 사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떤 인간 존재도 다른 사람에게 전원시를 선물할 수 없다. 오로지 동물만이 할 수 있는데, 동물만이 천국에서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과 개 사이의 사랑은 전원적이다. 갈등이나 가슴이 메이는 장면, 진화 같은 것이 없는 사랑이다. 카레닌은 토마시와 테레자 주위로 반복에 근거한 삶의 원을 그었고 두 사람도 그에게 같은 일을 해 주길 기대했다.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물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업서.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테레자는 생각한다.
... 테레자는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조합장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일 분 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농담은 반복된다 해도 그 재미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전원시의 맥락에서는 유머조차도 반복의 달콤한 법칙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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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19. 11. 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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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창순 지음

 

그들은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가 상처를 입곤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은 사실에 가깝다. 상대방이 내 마음 같을 거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상 우린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만 더 상처받는다고 여기는 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한몫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대방은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대치가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그런 기대치가 채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내 욕구와 기대치를 알아서 헤아리고 그것을 채워주는 일 같은 것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날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내 욕구를 헤아리고 내 기대치를 채워줄 사람은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러기엔 인간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상대방의 욕구보다는 내 욕구가 더 먼저고 더 중요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 인간의 뇌 속에 태생적으로 공감 신경세포가 있기에 이 정도라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심이었어"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가 "나는 진심이었어"라는 말을 쓸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대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다.
물론 자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내 진심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찌보면 "난 진심이었어"란 말을 덜 쓸수록 인간관계를 잘해나가는 거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창조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심은 그러한 관심이 때때로 다다르는 어느 한 지점인 것이다.

내가 설령 팩트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상대방의 상처를 염려해 말을 줄이고 감정을 여과한 후에 표현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섬세한 테크닉이 아니겠는가. 그것의 다른 이름을 우린 '배려'라고 한다.
요컨대, 인간관계에서 꼭 마음에 새겨둬야 할 원칙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꼭 진실이고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혹'이란 소솔을 쓴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란 작가는 '사람은 현재의 자기 이미지에 맞춰 기억을 재배열할 뿐 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그러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거짓을 어디까지 들추어내야 할까?
나의 진실과 상대방의 팩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상대방이 아예 거짓을 주장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흔한 이유는 회피의 정신기제다.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일어나는 일들이 두려워 일단 피하고 싶은 것이다. 또 죄책감과 그로 인한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방어기제가 '억압'이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게 땅 속에 묻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아예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리는 사람도 있다. '부인(denial)'의 정신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억이 안납니다"하고 시치미를 떼는데 놀랍게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또 다른 정신기제는 '합리화'다.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방이 그것을 감당 못하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태도가 여기에 속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실망해 떠날까 봐 두려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병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쟁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 마치 죽을 것 같은 다급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면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죄책감으로 인해 이미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생겼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들쑤시면 억지로 몸의 딱지를 뗄 때 느끼는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들이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기욤 뮈소

왜 우리는 남에게 하듯이 자신에게는 조언을 할 수 없는걸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는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다. 자신은 중요하다고도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나만큼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은 없다. 

'수십, 수천 세기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공기 중에, 땅에, 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다' -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힘든 감정일수록 우리는 더욱 깊숙이 무의식에 묻어둔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종의 보호기능일 수도 있다. 감저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누구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억압해도 문제다. 억압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낸다. 오히려 억압이 클수록 그 이상의 폭발력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통렬한 감정일지라도 어느 저옫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럼 다음에는 여과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든가, 일기처럼 노트에 적는다든가 해서 감정이 여과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압만 하는 것은 불씨를 묻어두는 것과 같다. 일종의 심리적 휴화산인 셈이다.

우리가 감정을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과일이 가장 맛있게 잘 익는 때는 짧은 한철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게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너무 익어서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시간은 너무 짧다.
행복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몫이 아닐 때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우린 어째서 사람들이 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실망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바라는 예외적인 면, 즉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근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웬만해선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있거나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다음이면 몰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 성격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진 성격 안에서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다음에는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직시하기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맞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나아갈 방향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이 묶여도 곤란하지만 과거는 미래의 자산이란 것도 잊지마"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中

내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많다.
우리의 인간관계 양상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적극적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우위에 서고자 하는 지배형, 인간관계에 불편함을 느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회피형, 인간관계에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밀형이 그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란 '시의적절'하게 이 세가지 유형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호적 지배 성향은 리더십에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애초에 리더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같은 결속을 통해 통제지배력을 행사하고 싶어하지 않는 리더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두가지는 리더십에서 숙명과도 같은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타입을 움직이는 동력은 경쟁심과 인정욕구이다. 
이 타입의 단점이라면 상ㄷ방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쳐 때로는 상대방이 간섭이라도 여길 정도로 깊이 관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통제력에 도전하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의견은 경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로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타입일수록 바낻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불필요하게 자신에게 간섭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경우 강하게 저항한다.
만약 자신이 우호적 지배성 타입이라고 여겨진다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속이나 인정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두 부류다. 솟구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담아두는 부류와 모든 걸 겉으로 팍팍 드러내는 부류" - 줄리언 반드의 소설 '내 말 좀 들어봐' 中
첫 번째 부류의 경우에도 물론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그편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느기지 못해서는 아니다.

"결정적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고 모두가 그 하나뿐인 행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이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 우리는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생명권과 전체 인류에게로 공감의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 리프킨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인류에 힘을 보태는 것은 결국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닐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폭넓고 충실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 나에겐 오직 세 가지 자산밖에 없다. 나는 뭔가에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도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내면에 강력한 열정과 자율성을 갖고 있다." - 엘리너 루스벨트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허영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거꾸로 상대가 멍청하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이것을 이용하면 훌륭한 기만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가 당신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어라. 심지어 약간 바보처럼 굴어라.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의심을 풀어버릴 것이다. ...... 사람들은 일단 당신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믿으면 당신의 다른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 中

나만 옳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끝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때때로 자신이 못나고 부정적인 만큼 한편으로는 올바르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은 적당히 타협할 때도 없진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이래 봬도 내가 근본은 바른 사람이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잘 삐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분명 본성을 착한 사람이다. 물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 때가 없진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만큼도 그런 짓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적어도 나 정도면 대단히 정직한 축에 든닫고 봐야 한다.'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나의 품위는 상대방이 판단한다.

힘을 빼고 공이 어떻게 날아가는지 보기 위해 머리를 들지 않는 것이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이다.

헤밍웨이는 "난 글을 쓰는 내내 어느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썼고 그건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나는 그 문장론이 분노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분노는 대개 당사자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외에 별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분노야말로 어느 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쓰는 편이 좋다. 또한 그것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어주다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비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어떤 것인가"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린 보네거트나 프로이트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린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왜?'라고 질문하는 일에 그들처럼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서 약간의 빈틈이라도 보게 되는 날에는, 그리하여 나는 누구인가, 내게 삶과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느닷없이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화들짝 놀라며 격심한 타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영국 작가 마크 해먼은 말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태도,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이 곧 정신적 방어기제다. 다른 마로 하면 온갖 정신적 갈등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심리적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치, 퇴행, 투사, 동일시..
그 중 '투사(projection)'는 의부증이나 의처증 환자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투사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이나 충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의처증이나 의부증 환자들은 자기의 욕구를 배우자에게 투사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자기가 바람피우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을 은폐하고자 자신의 심리를 상대방에게 투사해 "너 바람피우지?" 하면서 의심하는 것이다.
'동일시(identification)'는 부모나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절대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적대적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라고 한다. '병적 동일시(pathological identification)'도 있다. 예로 국회의원 비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마치 국회의원인 것처럼 걷르먹 거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신의학자 융은 심리적 요소에서도 '동량의 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와 '엔트로피의 원리(principle of entropy)'를 주장했다.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혹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로. 어쩌면 평범하게 살기도 어렵고 행복하게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우린 더욱 그런 소망을 갖는지도 모른다.

남의 탓, 환경 탓, 그러한 분노 때문에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나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성숙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포함한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와의 관계나 남과의 관계에서도 신뢰를 준다.

우주여행만큼 힘든 게 인간관계다.
발전하는 배우들은 항상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한다. 현장에서 자기가 연기한 분량의 모니터를 안 보고 그대로 가는 배우는 실력에 발전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인간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먼저 나 자신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반드시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고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까칠함과 무례함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린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까칠함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품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라는 책에서 '처세육연(處世六然)'이라는 말을 찾았다. 살면서 지켜야 할 여섯가지 처신이라는 뜻으로 명나라 최선(崔銑)이라는 사람이 시인 왕양명(王陽明)에게 주었다는 처세훈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 남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 일을 당하면 단호하게 결단성 있게 / 평소에는 맑고 잔잔하게 / 뜻을 이루면 들뜨지 말고 담담하게 / 뜻을 못 이루어도 좌절 없이 태연하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삶에서 지녀야 할 건강한 까칠함을 함축하고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저 옛날 왕양명이 아니어도 마음에 담아둘 만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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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10. 1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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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by 임이랑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다

오늘은 빗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평소의 나는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오늘은 무려 아홉시에 일어났다.

올해초에 매트리스를 몸에 꼭 맞는 제품으로 바꾸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 꾸물거리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이것은 행복한 변화이기도 하고 한심한 변화이기도 하다.

조금 한심해도 행복하다면 괜찮다.

 

처음 이 집을 구경하러 왔을 때는 작은 테라스에 홀랑 넘어가서

이 이상한 각도들이 내 삶을 얼마나 귀찮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저 테라스에서라면 담배를 마음껏 태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가끔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햇살 아래서 낮잠을 자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야외활동을 즐겨하지 않는 성향인 사람으로서

집 안에서 바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게 좋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외부가 존재하다니!

이 집에서 살게 된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밖에 나갈 수가 있다!'

 

보통의 아침에는 식물들과 노는 편이다.

아침이면 집 안팎의 식물에 물을 주거나 시든 이파리들을 정리한다.

여러 가지 흙을 배합해서 분가링를 하고 각 흙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성장세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밤에 어떤 일이 있었건 아침이 오면 늘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소소한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기를 남몰래 빌기도 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시기의 나에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아니라고, 더 힘들어지면 가겠다고 거절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싫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치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기가 괴로웠고,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도 싫어서 그랬을 뿐이다.

괴로운 정신세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싫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치고 싶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힘껏 도망쳐야만 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나면 밤이 오니까,

밤이 오고 나면 또 잠으로 도망치곤 했다.

이상한 굴레를 거듭 반복한 시절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 시기에 식물에 깊이 매료되었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를 소 개할 필요도 없었고, 스스로를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식물들은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났다.

그 건강한 방식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뜻밖의 변화들

게절은 단순한 것이었다.

나는 봄이 싫었다. 이유 없는 짜증이 밀려오면 봄이었다.

더워서 자꾸 차가운 음식을 찾게 되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싫으면 여름이었고,

찬 바람에 정신없이 휩쓸리며 불안과 괴로움이 몰아쳐오면 가을이었다.

겨울엔 이불 속에서 발바닥을 비비며 누워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계절의 의미가 달라졌다.

싹이 터져 오르는 봄의 마법에 취하고,

여름의 더위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을의 냄새와 겨울의 질감이 무엇이고 어찌 그리 신비로운지 온전히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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