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행정론]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예산규모)
우리나라 경제규모 (예산 규모)
1. 서론
국가가 쓰는 돈은 모두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므로, 한나라의 재정규모가 적정한가의 문제는 국민부담이 적정한가의 문제와 사실상 같은 의미이다. 또한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시장규모 대비 정비규모가 적정한가를 따지는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된다. 따라서 입장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에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재정규모를 둘러싼 논쟁이 ‘큰 정부’ ‘작은 정부’ 수준의 정치적 언술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점에서, 2006년 4월에 중앙일보와 기획예산처 간에 벌어진 규모 논쟁은 재정규모를 둘러싼 논의의 수준을 진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가 GDP 대비 재정규모가 28.1%라고 발표하자 중앙일보가 “몇몇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다시 계산해보니 37.9%까지 된다”는 반론을 내놓으며 논쟁이 촉발되었다. 이는 아직 우리나라 재정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작으니 세금을 더 거두어 복지비를 지출해도 문제가 없다는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논리적 기반을 흔들 수 있는 반론이었고, 기획예산처는 발끈하였다. 이 논쟁은 예산에 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재정을 둘러싼 담론이 정치적 논전의 수준을 넘어서도록 하는 데 긍정적이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2. 본론
1) 재정규모의 기준
논쟁의 핵심은 재정규모를 따지는 ‘기준’을 둘러싼 것이었다. 한국은행은 2006년 6월 GDP 대비 일반정부(일반정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비영리 공공기관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총지출 비율을 28.1%로 발표하고, 이러한 재정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했으므로 이 통계는 국가의 공식통계였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여기에 공기업부문을 포함하여 37.9%라는 비율을 내놓았다. 결국 재정규모를 산출할 때 공기업 등 준정부기관의 영역을 어느 정도 포함할 것인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재정은 매우 복잡하다. 일반회계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회계, 기금 등 예외적으로 운영되는 항목이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정부 이외에 공기업, 산하기관, 투자기관, 출자기관 등으로 다양한 주체가 있다. 이들 모두를 공공기관이라 부르지만 기능을 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통칭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일반정부(general government)에 공기업(public corporation)을 포함한 개념은 ‘공공부문(public sector)’으로서 일반정부와는 범주가 다르며, 일반정부의 재정통계를 낼 때 국가기준에 따라 외국도 공기업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중앙일보에서 제기한 문제는, 외국과 비교하면서 그들은 포함하지 않는 공기업을 우리만 포함시켰기 때문에 당연히 재정규모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할 일을 공기업이나 타 공공기관에서 하고 있다면 그것도 정부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재정통계를 내는 목적은, 새로운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재정의 범위를 논하는 것은 정부의 기능을 논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책목적에 따라 통계자료를 다양하게 범주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규모를 하나의 잣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정부의 재정활동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범위까지 포함할 것인지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영역이며, 통계는 정책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산출되어야 한다. 하나의 지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원하는 다양한 기준을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범주에 따라 공공부문의 포괄 범위를 구분하고 정책적 필요에 따라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2) 재정규모를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
우리나라는 정부주도형 경제개발이 이루어졌던 80년대까지 다양한 재정수요를 억제했다. 대신 국방비와 경제개발비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이후 세출구조가 변화하고 복지비가 증가하면서 국민의 조세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분석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증가 속도가 OECD 30개 회원국 중 가장 빠르다.
재정규모의 논쟁의 배경에는 결국 이처럼 높아가는 국민의 부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재정을 둘러싼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그 기준에 의거하여 어떤 일은 늘리고 어떤 일은 줄여야 할 지로 논의의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런데 재정을 둘러싼 논의는 너무나 쉽게 정치적 공방, 혹은 선전의 소재가 되어버리고, 국민들은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하기를 바라면서도 재정규모는 줄이기를 바라는 모순된 기대를 한다.
3. 결론 - 규모의 논쟁을 넘어서
재정규모의 적정성은 재정수요, 국민들의 세부담능력, 그리고 재정의 건전성 같은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단순히 규모가 크냐 작냐라는 차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즉 국민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가 하는 규범성을 가지고 접근해야지 ‘크냐 작냐’로 단순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정규모를 둘러싼 이견이 그렇게 흐르는 것은 정치적 의도 때문이라고 본다.
37%가 적정한 것이나, 아니면 다른 선진국은 그것보다 더 큰데가 있으니까 그게 적정하냐, 이것은 국민적 선택의 문제이다. 재정규모의 적정성은 가치관의 개입이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이며, 우리나라의 재정 규모 논쟁에 있어서 회색지대가 많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정의를 내려야 진정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재정규묘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의가 좀더 성숙하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몇가지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비교는 경제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동일한 기준에 입각해야 한다. 문제는 회계·예산 구조가 복잡하면, 그것만으로도 재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재정규모가 크다고 느끼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8개의 각종 특별회계, 60개의 기금을 정비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복잡한 예산구조는 정책사업의 복잡성을 초래하여 정책의 효과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둘째, 경제규모 대비 재정규모가 적정한가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국민경제의 주체를 정부와 시장으로 나누어 볼 때, 정부의 영역이 커지면 시장의 규모가 줄어드는 상충관계(trade-off)가 발생할 수 있다. 시장경제에서 유통되어야할 자금을 조세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흡수하여 지출하기 때문이다. 복지재정을 늘리더라도 그것은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재정의 역할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셋째, 재정수요를 평가하여 그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상대적 평가에 의한 접근이라고 한다면, 이는 절대적 평가에 의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재정규모를 확대할지 축소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며 쟁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절대규묘 그 자체보다 향후 재정수요를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절차가 중요하고, 이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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