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경막외출혈상을 입고 X병원으로 후송되어 혈종제거수술을 마친 후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치료를 받게 되었다. A의 처 甲은 A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수술 및 치료를 담당한 의사 乙과 丙을 찾아가 경제적 부담을 빌미로 A의 퇴원을 계속 요구했다. 乙과 丙은 수차례에 걸쳐,A의 상태에 비추어 지금 퇴원하면 A가 죽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퇴원을 극구 만류했지만, 甲이 퇴원을 고집하자 퇴원시의 사망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귀가서약서에 서명하게 한 뒤 A의 퇴원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 丙의 지시에 따라 A를 그 주거지까지 호송한 의사 丁이 A에게 부착된 인공호흡보조장치 등을 제거한 후 5분이 지나 A는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甲, 乙, 丙, 丁의 죄책은? |
Ⅰ. 쟁점의 정리
- 살인죄(형법250①)의 구성요건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다.
- 사안의 경우, 甲이 A를 퇴원시켜 치료를 계속토록 하지 않은 행위는 평가적 관찰방법에 따라 법적 비난의 중심인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부작위로 보아야 하며, 이러한 부작위를 살인죄(형법250①)의 실행행위, 즉 “살해”행위로 볼 수 있는지 문제된다.
- 또한 의학적 권고에 반하는 퇴원의 요구에 응한 의사 乙과 丙에게 부작위(치료중단)에 의한 살인의 죄책을 물을 수 있는지, 丁에게 작위로서의 인공호흡보조장치 등의 제거 혹은 부작위로서의 의료행위의 중지를 살인죄의 실행행위, 즉 “살해”행위로 볼 수 있는지 문제된다.
Ⅱ. 甲의 죄책: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제250조 제1항, 제18조)의 성부
1. 문제점
- 부진정 부작위범이란 작위범을 부작위의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 사안에서 甲의 A에 대한 부작위가 작위로서의 ‘살해’ 행위(형법250)와 형법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그 실행행위성이 인정될 수 있는데, 이를 ‘부작위의 (작위)동가치성’이라 한다.
- 부작위의 작위동가치성이 평가되기 위해서는 ①법적 작위의무의 위반(부작위 행위자가 살인죄의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인 사망을 방지할 법적 작위의무를 지는 자이어야 한다), ②법적 작위의무의 이행가능성(그 부작위행위가 그러한 법적 작위의무에 따른 물리적인 조치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요건이 인정되어야 한다.
- 또한 甲이 A의 치료를 계속하지 않은 부작위에 작위동가치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살인죄(형법250①)의 구성요건적 행위로서의 살해행위가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구성요건해당성이 인정되기 위한 그 밖의 객관적 구성요건요소, 즉 ‘구성요건적 결과’로서의 사망의 사실, 살해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나아가 주관적 구성요건요소인 ‘고의’도 인정되어야 한다.
2. 부작위의 작위동가치성 인정여부
(1) 법적 작위의무의 위반
- 형법 제18조에 따르면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하는 것 또는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 부진정 부작위범에 있어서 법적 작위의무에 대하여 학설은 ①형식설(법령,법률행위,조리 등에 의해 법적작위의무 인정), ②실질설(법의 존재형식보다는 피해자 내지 피해법익에 대한 사회생활상의 특별한 관계에 착안하여, 의존관계 내지 신뢰관계에 근거하여 법적 작위의무 인정), ③배타적 지배 또는 보호의 인수설(기본적으로는 형식설을 취하면서도 실질적인 측면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제한)이 대립한다.
- 판례는 “법령·법률행위(계약),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이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법적인 작위의무는 있다”고 하여 형식설의 입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사안에서 甲과 A는 부부관계에 있으므로 형식설에 따르면 민법 제826조 제1항에 의한 ‘부부간의 부양의무’에 따라 법적인 작위의무가 인정된다. 실질설을 따르더라도 甲은 A의 처로서 의존·신뢰관계로 인해 법적인 작위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 즉, 어느 학설을 따르더라도 보증인 지위가 발생한다.
(2) 법적 작위의무의 이행가능성
- 법적 작위의무의 위반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법적 작위의무를 이행할 수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판례는 법적 작위의무에 따라 기대되는 작위가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경우에만, 그 위반으로서의 부작위에 관해 부진정 부작위범으로서의 죄책을 물을 수 있다고 판시한다.
- 사안에서 甲은 A의 법익침해를 일으키는 사태를 지배하고 있어 작위의무의 이행으로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다고 인정된다.
(3) 소결
- 사안에서 甲은 계속적인 치료로 A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중단하도록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甲의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지닌다.
3.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여부
- A는 사망하였으므로 살인죄의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하였다.
4. 인과관계의 인정여부
- 부진정 부작위범은 결과범에 해당하므로 구성요건적 부작위와 결과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요구된다.
- 판례는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면 그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될 경우에는 그 작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고 판시하였다.
- 사안에서 甲이 작위의무인 부양의무를 이행하였다면 A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되므로, 작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5. 살인의 미필적 고의의 인정여부
- 판례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하려면 결과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결과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음을 요하며 피해자의 사망을 희망하거나 목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보아 용인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사안에서 甲은 A의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 위법성 조각사유 인정여부
- 사안에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A의 치료를 중단한 것은 위법성 조각되지 않는다.
7. 소결
- 甲의 치료중단 요구로 인한 A의 사망에 대하여 甲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모든 구성요건을 충족하였는 바, 살인죄의 죄책을 부담한다. (사안에서 위법성조각사유 및 책임조각·감경 사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Ⅲ. 乙과 丙의 죄책: 살인죄의 공동정범 성부
1. A를 퇴원시킨 행위에 대한 평가
- 어떤 범죄가 적극적 작위는 물론 소극적 부작위에 의하여도 실현될 수 있는 경우, 작위에 의한 범죄로 봄이 원칙이고 이를 부작위범으로 볼 것은 아니다.
- 판례는 이른바 ‘보라매 병원 사건’에서 자가호흡이 곤란한 환자의 퇴원을 지시함으로써 그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게 한 경우의 실행행위성을 치료중단이라는 부작위의 측면이 아니라 퇴원조치라는 작위의 측면에서 인정했다.
- 사안의 경우, A를 퇴원시킨 의사 乙과 丙의 행위는 ‘작위’로 보아야한다.
2. 살인죄의 공동정범 성부
- 학설은 공동정범의 개념에 대해 1)행위의 객관적 의미에서 찾는 객관설, 2)행위자의 주관적 의사에서 찾는 주관설, 3)기능적 행위지배 여부에서 찾는 행위지배설이 대립한다.
- 판례는 공동정범의 본질은 분업적 역할분담에 따른 기능적 행위지배에 있으므로 이를 결한 종범과는 구별된다.”라고 하여 기능적 행위지배설의 입장이다.
- 사안의 경우, 퇴원결정과 치료중단은 한 개의 사실관계의 양면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인 바, 의사 乙과 丙에게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에 대한 정범의 고의는 인정되나 환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나 그에 이르는 사태의 핵심적 경과를 계획적으로 조종하거나 저지·촉진하는 등으로 지배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워 공동정범의 객관적 요건인 이른바 기능적 행위지배가 흠결되었으므로, 작위에 의한 살인방조죄만 성립한다.
Ⅳ. 丁의 죄책: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부
- 사안에서 丁은 乙과 丙의 지시에 따라 그들의 의료행위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어서 A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지위에 있거나, 이를 방지하여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므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인공호흡보조장치의 제거는 퇴원조치에 수반되는 행위의 일환으로 살인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작위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작위에 의한 살인죄도 인정되지 않는다.
Ⅴ. 사안의 해결
- 甲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乙과 丙은 작위에 의한 살인방조죄의 죄책을 진다. 丁은 아무런 죄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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