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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28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창순 지음
Who am I ?!/Book2019. 11. 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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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창순 지음

 

그들은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가 상처를 입곤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은 사실에 가깝다. 상대방이 내 마음 같을 거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상 우린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만 더 상처받는다고 여기는 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한몫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대방은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대치가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그런 기대치가 채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내 욕구와 기대치를 알아서 헤아리고 그것을 채워주는 일 같은 것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날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내 욕구를 헤아리고 내 기대치를 채워줄 사람은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러기엔 인간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상대방의 욕구보다는 내 욕구가 더 먼저고 더 중요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 인간의 뇌 속에 태생적으로 공감 신경세포가 있기에 이 정도라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심이었어"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가 "나는 진심이었어"라는 말을 쓸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대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다.
물론 자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내 진심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찌보면 "난 진심이었어"란 말을 덜 쓸수록 인간관계를 잘해나가는 거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창조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심은 그러한 관심이 때때로 다다르는 어느 한 지점인 것이다.

내가 설령 팩트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상대방의 상처를 염려해 말을 줄이고 감정을 여과한 후에 표현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섬세한 테크닉이 아니겠는가. 그것의 다른 이름을 우린 '배려'라고 한다.
요컨대, 인간관계에서 꼭 마음에 새겨둬야 할 원칙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꼭 진실이고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혹'이란 소솔을 쓴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란 작가는 '사람은 현재의 자기 이미지에 맞춰 기억을 재배열할 뿐 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그러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거짓을 어디까지 들추어내야 할까?
나의 진실과 상대방의 팩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상대방이 아예 거짓을 주장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흔한 이유는 회피의 정신기제다.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일어나는 일들이 두려워 일단 피하고 싶은 것이다. 또 죄책감과 그로 인한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방어기제가 '억압'이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게 땅 속에 묻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아예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리는 사람도 있다. '부인(denial)'의 정신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억이 안납니다"하고 시치미를 떼는데 놀랍게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또 다른 정신기제는 '합리화'다.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방이 그것을 감당 못하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태도가 여기에 속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실망해 떠날까 봐 두려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병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쟁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 마치 죽을 것 같은 다급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면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죄책감으로 인해 이미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생겼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들쑤시면 억지로 몸의 딱지를 뗄 때 느끼는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들이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기욤 뮈소

왜 우리는 남에게 하듯이 자신에게는 조언을 할 수 없는걸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는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다. 자신은 중요하다고도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나만큼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은 없다. 

'수십, 수천 세기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공기 중에, 땅에, 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다' -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힘든 감정일수록 우리는 더욱 깊숙이 무의식에 묻어둔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종의 보호기능일 수도 있다. 감저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누구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억압해도 문제다. 억압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낸다. 오히려 억압이 클수록 그 이상의 폭발력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통렬한 감정일지라도 어느 저옫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럼 다음에는 여과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든가, 일기처럼 노트에 적는다든가 해서 감정이 여과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압만 하는 것은 불씨를 묻어두는 것과 같다. 일종의 심리적 휴화산인 셈이다.

우리가 감정을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과일이 가장 맛있게 잘 익는 때는 짧은 한철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게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너무 익어서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시간은 너무 짧다.
행복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몫이 아닐 때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우린 어째서 사람들이 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실망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바라는 예외적인 면, 즉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근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웬만해선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있거나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다음이면 몰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 성격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진 성격 안에서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다음에는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직시하기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맞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나아갈 방향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이 묶여도 곤란하지만 과거는 미래의 자산이란 것도 잊지마"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中

내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많다.
우리의 인간관계 양상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적극적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우위에 서고자 하는 지배형, 인간관계에 불편함을 느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회피형, 인간관계에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밀형이 그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란 '시의적절'하게 이 세가지 유형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호적 지배 성향은 리더십에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애초에 리더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같은 결속을 통해 통제지배력을 행사하고 싶어하지 않는 리더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두가지는 리더십에서 숙명과도 같은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타입을 움직이는 동력은 경쟁심과 인정욕구이다. 
이 타입의 단점이라면 상ㄷ방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쳐 때로는 상대방이 간섭이라도 여길 정도로 깊이 관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통제력에 도전하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의견은 경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로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타입일수록 바낻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불필요하게 자신에게 간섭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경우 강하게 저항한다.
만약 자신이 우호적 지배성 타입이라고 여겨진다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속이나 인정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두 부류다. 솟구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담아두는 부류와 모든 걸 겉으로 팍팍 드러내는 부류" - 줄리언 반드의 소설 '내 말 좀 들어봐' 中
첫 번째 부류의 경우에도 물론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그편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느기지 못해서는 아니다.

"결정적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고 모두가 그 하나뿐인 행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이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 우리는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생명권과 전체 인류에게로 공감의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 리프킨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인류에 힘을 보태는 것은 결국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닐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폭넓고 충실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 나에겐 오직 세 가지 자산밖에 없다. 나는 뭔가에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도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내면에 강력한 열정과 자율성을 갖고 있다." - 엘리너 루스벨트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허영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거꾸로 상대가 멍청하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이것을 이용하면 훌륭한 기만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가 당신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어라. 심지어 약간 바보처럼 굴어라.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의심을 풀어버릴 것이다. ...... 사람들은 일단 당신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믿으면 당신의 다른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 中

나만 옳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끝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때때로 자신이 못나고 부정적인 만큼 한편으로는 올바르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은 적당히 타협할 때도 없진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이래 봬도 내가 근본은 바른 사람이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잘 삐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분명 본성을 착한 사람이다. 물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 때가 없진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만큼도 그런 짓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적어도 나 정도면 대단히 정직한 축에 든닫고 봐야 한다.'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나의 품위는 상대방이 판단한다.

힘을 빼고 공이 어떻게 날아가는지 보기 위해 머리를 들지 않는 것이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이다.

헤밍웨이는 "난 글을 쓰는 내내 어느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썼고 그건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나는 그 문장론이 분노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분노는 대개 당사자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외에 별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분노야말로 어느 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쓰는 편이 좋다. 또한 그것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어주다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비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어떤 것인가"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린 보네거트나 프로이트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린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왜?'라고 질문하는 일에 그들처럼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서 약간의 빈틈이라도 보게 되는 날에는, 그리하여 나는 누구인가, 내게 삶과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느닷없이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화들짝 놀라며 격심한 타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영국 작가 마크 해먼은 말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태도,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이 곧 정신적 방어기제다. 다른 마로 하면 온갖 정신적 갈등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심리적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치, 퇴행, 투사, 동일시..
그 중 '투사(projection)'는 의부증이나 의처증 환자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투사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이나 충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의처증이나 의부증 환자들은 자기의 욕구를 배우자에게 투사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자기가 바람피우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을 은폐하고자 자신의 심리를 상대방에게 투사해 "너 바람피우지?" 하면서 의심하는 것이다.
'동일시(identification)'는 부모나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절대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적대적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라고 한다. '병적 동일시(pathological identification)'도 있다. 예로 국회의원 비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마치 국회의원인 것처럼 걷르먹 거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신의학자 융은 심리적 요소에서도 '동량의 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와 '엔트로피의 원리(principle of entropy)'를 주장했다.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혹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로. 어쩌면 평범하게 살기도 어렵고 행복하게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우린 더욱 그런 소망을 갖는지도 모른다.

남의 탓, 환경 탓, 그러한 분노 때문에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나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성숙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포함한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와의 관계나 남과의 관계에서도 신뢰를 준다.

우주여행만큼 힘든 게 인간관계다.
발전하는 배우들은 항상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한다. 현장에서 자기가 연기한 분량의 모니터를 안 보고 그대로 가는 배우는 실력에 발전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인간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먼저 나 자신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반드시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고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까칠함과 무례함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린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까칠함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품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라는 책에서 '처세육연(處世六然)'이라는 말을 찾았다. 살면서 지켜야 할 여섯가지 처신이라는 뜻으로 명나라 최선(崔銑)이라는 사람이 시인 왕양명(王陽明)에게 주었다는 처세훈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 남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 일을 당하면 단호하게 결단성 있게 / 평소에는 맑고 잔잔하게 / 뜻을 이루면 들뜨지 말고 담담하게 / 뜻을 못 이루어도 좌절 없이 태연하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삶에서 지녀야 할 건강한 까칠함을 함축하고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저 옛날 왕양명이 아니어도 마음에 담아둘 만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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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