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Investigation)2025. 12. 1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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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증거 보전제도 도입의 의미

― 산업기술안보수사 현장에서 바라본 변화

 

산업기술 유출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전에 핵심 증거가 사라져버리는 경우를 종종 겪습니다.

클라우드에 있던 기술자료가 삭제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 기록은 보존기간이 지나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됩니다.

해외 서버에 있는 자료는 국제공조 절차를 밟는 사이 이미 소멸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최근 도입된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산업기술안보수사 현장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절차가 하나 생겼다기보다는, 수사 초기 대응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전자증거 보전제도가 바꿀 것

① “지금 묶어두고, 나중에 따진다”는 선택지의 등장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바로 이 지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장이 발부되기 전이라도 증거가 사라질 위험이 명확한 경우에는 우선 보전을 요청하고, 이후 절차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수사 실무에서는 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② 해외 플랫폼 상대 수사의 실효성 강화

해외 플랫폼(Google / Microsoft / AWS, 해외 메일 서버, 글로벌 협업툴)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그동안은 플랫폼 측의 임의 협조에 기대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국제공조 절차를 통해 자료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국내법에 근거한 보전 요청이라는 형태로 공식적인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랫폼 입장에서도 법적 근거가 분명한 요청이기 때문에 내부 검토 과정(내부 컴플라이언스 기준에 부합하는 공식 요청)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습니다.

 

 부다페스트 협약과의 연결

이번 제도 도입은 부다페스트 사이버범죄 협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해당 협약은 사이버범죄 수사에서 전자증거의 신속한 보전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 역시 단순한 기업 간 분쟁이 아니라, 국제적 성격을 가진 사이버범죄의 한 유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입니다.

 


 

2.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왜 산업기술안보수사에서 특히 중요한가?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수사기관이 전자증거가 삭제되거나 변경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해당 자료를 일정 기간 보존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전은 압수나 확보와는 다릅니다. 자료를 수사기관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삭제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조치에 가깝습니다. 이후 정식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확보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① 기술유출 범죄유형의 대부분은 ‘전자정보 활용’

산업기술안보수사에서 이 제도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기술유출 범죄의 양상이 이미 완전히 전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처럼 종이 문서나 외장 저장장치를 들고 나가는 형태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신 이메일, 클라우드, 협업툴, 메신저를 통해 기술자료가 이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 증거는 대부분 해외 서버에 남습니다.

 

② “압수수색 전에 증거가 사라지는” 구조적 한계

문제는 이 전자증거들이 매우 짧은 주기로 삭제되거나 덮어쓰기 된다는 점입니다.

수사기관이 혐의를 인지하고, 영장 신청을 준비해 법원에서 발부받아 집행하는 동안 이미 로그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서는 이 공백(로그 자동 삭제, 계정 폐쇄, 클라우드 자료 삭제, 내부자에 의한 원격 삭제)이 그대로 수사의 성패로 이어집니다.

 

③ 산업기술안보수사 관점에서의 실질적 변화

산업기술안보수사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수사 초기 단계에서 전자증거 보전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수사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기술자료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어느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지, 삭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빠르게 검토해야 합니다. 보전을 놓치면 이후 수사를 아무리 잘 진행해도 핵심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수사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변화한 범죄 환경에 뒤늦게 따라온 최소한의 장치에 가깝습니다.

기술은 디지털화되었고, 유출은 국경을 넘으며, 증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집니다.

이 환경에서 속도를 확보하지 못한 수사는 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산업기술안보수사에서는 얼마나 많은 자료를 압수했는가보다, 사라지기 전에 어떤 증거를 지켜냈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자증거 보전제도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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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