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대위권
Ⅰ. 서설
채권은 채무자에 대하여 일정한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지 채무자에 대한 지배권은 아니므로, 비록 채권자라 할지라도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 즉, 채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채무자가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든 말든 그것은 전적으로 채무자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겨져야 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물권과는 달리 채권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에 의하여 그 최종적인 효력이 담보되는 것이므로, 채권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는 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민법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권자가 채무자의 제3채무자에 대한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는 채권자대위권과 채무자의 사해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채권자취소권 두 가지 제도를 두어 채권자를 보호하고 있다.
Ⅱ. 채권자대위권의 법적 성질
채권자대위권은 소송법상의 권리가 아니라, 실체법상의 권리이다. 대위권은 채권 자체와는 별개의 권리이며, 채권의 일종의 효력이다. 바꾸어 말해서, 그것은 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채권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어서, 채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채권에 종된 특별한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위권은 채권자의 고유의 권리이나, 채무자가 자기재산을 관리하는 자유에 대하여 참견할 수 있는 권한이고 또한 채권자가 자기의 명의로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권리이므로, 이른바 대리권은 아니며 일종의 관리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일종의 법정재산관리권이다.
Ⅲ. 채권자대위권의 행사요건
1. 피보전채권
(1) 채권자의 피보전채권이 존재할 것
채권자대위권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권의 효력에 기하여 인정되는 권리이므로, 채권자에게 채권이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피보전채권이 대위행사의 객체인 채무자의 권리보다 먼저 성립되었을 필요는 없으며, 채권자대위권의 행사가 채권보전을 위한 유일한 수단일 필요도 없다.
(2) 재산상의 청구권
피보전채권은 재산상의 청구권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라야 한다. 따라서 대표이사의 업무집행권이라든지 주주권과 같이 개인적인 재산상의 권리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이를 위하여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
(3) 채권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을 것
채권자대위권은 변제기가 도래한 채권의 보전을 위하여서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법원의 허가가 있는 경우와 보존행위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제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채권의 보전을 위해서도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
(4) 피보전채권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의 법원의 조치
피보전채권이 존재하지 않거나 채권의 존재가 입증되지 아니한 경우에, 법원은 소송요건인 당사자적격의 흠결을 이유로 대위소송을 각하하여야 한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의 입증이다. 그러나 학설은 판례의 입장에 찬성하는 견해와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2. 대위행사의 객체인 채무자의 권리(피대위권리)
(1) 기존의 권리일 것
채무자의 피대위권리는 채권자가 대위권을 행사하는 당시에 이미 발생되어 있어야 하며, 채권자의 대위권행사에 의하여 비로소 취득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2) 채무자의 권리가 대위에 적합할 것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자가 채무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므로, 채무자의 피대위권리는 채권자에 의하여 대신 행사될 수 있는 성질의 권리이어야 한다. 따라서 채무자의 일신에 전속하는 권리라든지, 행정행위나 소송행위와 같이, 채권자에 의하여 대신 행사되기에 적합하지 아니한 채무자의 권리는 채권자대위권 행사의 객체가 될 수 없다.
1) 청구권
제3채무자에 대한 채무자의 청구권은 가장 전형적인 대위행사의 객체인 바, 대위행사의 객체가 될 수 있는 채무자의 권리는 채권적 청구권에 한하지 않으며, 물권적 청구권은 물론, 공법상의 청구권도 가능하다.
2) 채권자대위권과 채권자취소권
채권자대위권, 채권자취소권 등 채권의 보장을 위한 파생적 권리도 대위행사의 객체가 될 수 있다.
3) 형성권
법률행위의 취소 및 추인권, 선택채권에 있어서의 선택권, 채무의 상계권, 계약의 해지•해제권 등의 형성권도 대위행사의 객체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통설•판례이다.
4) 소송행위
채무자의 소송법상의 권리는 대위행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일정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5) 행정행위
행정행위의 대위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6) 채무자의 일신전속권
채권자대위권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기 위하여 원래 채무자가 하여야 할 권리행사를 채권자가 대신 행사하는 것이므로, 채무자의 일신에 전속한 행위는 대위행사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다만, 귀속상의 일신전속권과 행사상의 일신전속권으로 분류할 때 후자에 한정된다고 해석하여야 한다.
일신전속권이기는 하지만 채권자대위권의 객체가 될 수 있는 귀속상의 일신전속권에 해당하는 경우는
- 양도•상속의 대상이 되는 상속분•상속재산분할 청구권 등의 재산적 신분권
- 양도•상속이 제산되는 종신정기금채권 기타 당사자의 사망을 종기 또는 해제조건으로 하는 채권 및 사용대차•고용•위임•조합 등 당사자 간의 특별한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일신전속권을 들 수 있다.
- 그러나 피후견인 또는 친족회가 그 후견인의 행위를 취소할 수 있는 권리는 행사상의 일신전속권으로서, 채권자대위권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이다.
3. 채권보전의 필요성
민법은 제 404조 1항에서 “채권자는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채무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채권자의 채권보전의 필요성을 채권자대위권의 행사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채권보전의 필요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되는데, 채권자대위권의 법적 성질을 채권자로 하여금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채무자의 재산관리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보는 통설과 판례는 채권보전의 필요성을 채무자의 무자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데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채권자대위권을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라고 파악하는 경우에는, 채권자의 피보전채권은 금전채권에 한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논리적이며, 이 경우에 채권보전의 필요성이란 채무자의 무자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술한 것처럼 판례는 채권자대위권은 채무자의 책임재산인 일반재산을 보전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등기청구권이나 침해배제청구권과 같은 특정채권의 보전을 위하여서도 행사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반드시 채무자의 무자력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4. 채무자가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
채무자가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이유는 묻지 않으며, 권리행사의 최고를 할 필요도 없다. 또한 대위권의 행사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스스로 그의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에는 그 결과가 아무리 채권자에게 불리할지라도 채권자대위권의 행사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Ⅳ. 채권자대위권의 행사
1. 대위권 행사의 방법
채권자대위권은 채권자가 자기의 명의로 즉 자기의 권리로서 행사하는 것이지만 그 행사의 객체인 권리는 어디까지나 채무자의 권리이므로, 채권자와 채무자간에 법정위임관계가 성립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이를 행사하여야 한다.
2. 대위권 행사의 범위
대위권의 행사는 채권의 보전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관리행위만이 허용되며 권리의 처분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즉, 채권자는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권의 추심•등기의 신청•담보권의 실행•소의 제기•강제집행 등을 할 수 있다. 다만 법률행위의 취소권(예컨대,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무능력자인 채무자가 체결한 계약의 취소권을 대위행사하는 경우)이나 계약해제권 등 채무자의 형성권을 대위행사하는 경우와 같이, 채무자의 재산관리행위와 동일시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처분행위도 허용될 수 있다.
대위채권자는 공동담보의 보전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자기의 채권액 이상으로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채무자의 무자력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위권의 행사가 허용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채무자에 대한 대위행사의 통지
채권자는 자기의 명의로, 즉 자기의 명의로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대위권의 행사에 대하여 채무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으나, 채무자에 대하여 대위행사의 통지를 할 의무가 있다. 다만 시효의 중단과 같은 보존행위를 대휘 행사하는 경우에는 통지 없이도 할 수 있다.
채무자는 위 대위행사의 통지가 있은 후에는 그 권리의 처분을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405 2항) 즉, 통지를 받은 후의 채무자의 처분행위는 효력이 없다. 또한 채권자로부터 통지가 없었다 할지라도 채무자가 대위권의 행사를 안 경우에는, 통지가 있었던 때와 같은 효과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이 판례이다.
Ⅴ. 대위권행사의 효력
1. 효과의 귀속
채권자대위권의 행사에 의하여 얻은 결과는 채무자의 권리를 대위행사한 채권자에게 귀속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의 일반재산에 귀속되어 모든 채권자를 위한 공동담보가 된다. 따라서 채권자가 자기채권의 만족을 얻기 위하여서는 다시 강제집행절차를 밟지 않으면 안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채권자가 대신 수령한 급부의 목적물이 그의 채권과 동종 또는 동일한 물건인 경우에는 채무자에 대한 인도채무의무와 상계함으로써 우선변제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2. 대위권자의 비용상환청구권
채권자가 대위권행사를 위하여 비용을 지출한 경우에는, 법정위임관계에 의거하여 그 비용의 상환청구권을 취득하며(688 1항) 대신 수령한 목적물의 보관을 위한 비용을 지출한 경우에는 그 목적물 위에 비용상환을 위한 유치권을 취득한다(320 1항)
3. 채권자대위소송에 있어서의 판결의 기판력
채권자가 대위권의 행사로서 소를 제기한 경우에, 채무자가 스스로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가하거나(민소 79) 소송고지를 받은 때에는 그 판결의 효력이 채무자에게도 미치게 되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러나 소송고지 등에 의하여 참가적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권자만이 대위소송의 당사자이므로 판결의 효력은 당사자가 아닌 채무자에게 미치지 않게 된다(민소 218 1항)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관철하는 경우, 채무자는 다시 당사자로서 동일한 내용의 소를 제기할 수 있어서 결과적으로 전후의 판결에 모순이 발생할 우려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채권자가 대위권의 행사로서 제기한 소에 있어서는 그 판결의 효력이 무조건 채무자에게도 미친다고 해석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나 당사자로서 소송을 수행하였거나 소송에 참가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무자에게 기판력이 미친다고 해석하는 것은 채무자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판례는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절충적인 해결책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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