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울 것 - 임경선 에세이
자유란 무엇일까.
내 마음과 영혼이 시키는 일을 내 몸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가장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른 성질을 지녔다. 특정 조건들을 갖추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의 문제이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흔히 듣는 겸손한 말은 맞지 않다.
솔직하다는 것.
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좋은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고 그로 인한 자신의 선한 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깊은 곳에서 연결해준다.
'아, 나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구나.'
상대로부터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드는 안도감과 충족감, 그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가진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신, 예의 바름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의 바름은 '방어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인간의 선의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솔직한 감정이란 비틀어진 질투와 욕망, 애증, 꼬인 자의식 등의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뒤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내면의 생각이 악의적이고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다고 여기는 만큼 남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하기보다는 심리적 가면을 쓰고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자 한다.
난 원래 이렇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는 솔직함은 궁극의 자기 합리화이자 정신승리 혹은 변명이 도리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머리가 굳어서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러한 솔직함은 생각이 유연하지 못한 자기 고집에 불과하다.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시작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엉성하고 밀도가 부족하더라도 일단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고 마침표를 찍어보는 일이 중요했다.
가만 보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도 안되고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도 안되고 운만으로도 안되는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 파이 이야기
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황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어쩌면 그 마음의 일부가 여전히 그 사람 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그 사람은 이제 더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몹시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추스리고 다시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세상에는 시간이 어느정도 경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에는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양자택일의 문제.
아무튼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결코 그 적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리를 해야 기회가 열린다. 추진동력을 가지려면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 이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 기회와 타이밍도 제한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야 겨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꿔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다.
비슷한 취향이나 취미를 가지면 말이 잘 통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같은 정치적 지향점을 가졌다면 신뢰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대상이 같다면 서로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미워하는 대상이 같다면 강한 동질 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간의 유대감에 비견할 만한 것은 없다.
"마지막엔 조금 괴롭다 싶을 정도로 운동을 해야 그때 체력이 딱 그만큼 느는 겁니다."
"제대로 운동이 되는 순간은요,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 숨차서 죽을 것 같을 때, 다섯 개만 더, 한 개만 더, 이렇게 쥐어짜낼 때, 그때 진짜 운동이 되는 거예요."
트레이너는 내가 막판에 힘들어할 때마다 늘 이렇게 알려주었다. 괴롭다고 신음하며 겨우 해내는 마지막 대여섯 번의 운동 동작이 실질적으로 내몸을 바꾼다고. 편하게 하던대로만 운동하면 체력이나 근력의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그 이상은 늘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면 인생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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