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자백
(글쓴이. 이즈미 다케오미, 오바 시로, 오하시 야스시, 오쿠다 유이치로 /
엮은이. 우치다 히로토미, 야히로 미쓰히데, 가모시다 유미 / 옮긴이. 김인회, 서주연)
I. 서론
이 책은 거짓자백으로 인해 억울하게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처벌받은 실제 일본에서의 네 사건 - 아시카가(足利) 사건, 도야마히미(富山氷見) 사건, 우쓰노미야(宇都宮) 사건, 우와지마(宇和島) 사건 – 을 심리학적, 형사법학적으로 분석하며 ‘사람은 왜 짓지도 않은 죄를 자백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원서는 일본 사례만을 적시하고 분석하고 있어 전락자백을 하게 되는 심리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가지만 한국의 법과 현실에 와닿지 않아 전체적인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옮긴이 김인회의 노력 덕분에 중간중간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라는 챕터가 삽입되어, 단순한 번역서를 넘어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네 사건을 구분하여 각각의 특징을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거짓자백을 알아차리지 못한 재판관 판단의 공통된 특징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필자는 이를 한국의 형사절차에 적용하여, 우리 형사재판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오판의 원인에 대해 각성하고, 특히 수사기관 입장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의해야할 부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II. 피의자·피고인이 거짓자백으로 전락하는 과정
자신에게 불이익한 발언을 하여 실제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못돼먹은 수사관에 의해 ‘거짓자백’을 하게 되는 경우, 실제 범인과의 일종의 거래를 통해 ‘거짓자백’을 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마다 스미오 교수의 오판 연구 리포트에서 밝힌 ‘피의자가 취조과정에서 거짓자백으로 전락하는 심적 상황의 8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나라면 절대 거짓자백 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자신감은 이내 사라졌다.
1. 일상생활로부터의 격리
신병을 체포·구속하면 일상에서는 당연했던 심리적인 안정을 잃게 된다. 이는 거짓자백의 가장 근본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은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구속할 수 있다.”고 하며,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를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제2항에서는 “법원은 제1항의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우려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라 하여 추가적인 구속사유를 규정한다.
위 규정에 대하여 구속은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처분임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유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며, 주관적·탄력적·심리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오늘날 수사기관에서 처음부터 거짓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체포·구속을 하는 일을 없다고 생각한다. 위 사유가 충족되는 피의자가 실제 범행을 하였다고 믿을만한 구체적인 정황,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신병을 구속하였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체포·구속되거나, 심지어 임의동행한 피의자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수사기관은 반드시 이러한 피의자의 심리상태를 인지하고 신문을 진행해야 하며, 피의자의 진술상 오류가 없는지, 피의자의 부인·항변을 입증할 증거를 배제하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겠다.
2.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체포되면 모든 생활이 타자의 통제 하에 놓인다. 식사, 배설, 수면 등 기본적 생활까지 타자에게 지배되고, 자신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제한된다. 그 결과 자기통제감을 잃는다.
일반인이 체험하지 않은 무게감, 수사기관의 통제 하에 있다는 심리를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실제 범행을 한 피의자로부터 자백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동시에 무고한 피의자의 거짓자백도 유도하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3.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피의자를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자백을 다그치는 수사관에 의한 정신적 굴욕은, 일상생활에서 거의 겪을 수 없는 체험이다. 부인하는 한 끝없이 계속하여 극악무도한 인간이라고 비난받고, 매도당하는 경험은 사람을 충분히 상처받고 힘들게 할 수 있다.
4.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부정
사건과 관계없는 사항에 관해 이것저것 조사받고, 추궁받고, 비난받아 죄책감이 심해지는 경우에도 거짓자백을 하게 될 수 있다. 안정적인 결혼관계나 충실한 직장생활 등의 부재가 있는 경우, 사건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일축하면 자신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실패자로 낙인찍힌 기분이 되어 저항력을 상실하게 된다.
피의자신문시, 전과, 직장, 월수입, 종교, 가족관계 등 다양한 질문을 하게 된다. 수사기관은 이와 같은 정보를 피의자원표로 관리하며, 공통질문사항에 해당한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많은 경우 피의자의 범행을 입증할 정황증거로 활용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성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의 스마트폰, PC에서, 해당 성범죄와는 관계없으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강간범죄 관련 영상 시청기록 등이 확인된다면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의 심증을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증을 통한 추궁이 실제 범행을 실행한 피의자의 자백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억울한 피의자의 거짓자백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5.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억울한 피의자가 열심히 변명하고 반복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피의자는 무력감에 짓눌리고 절망감에 내몰리게 된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부인과 항변에 대해 일방적인 선입견을 갖고 무시하기 보다는,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증인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선입견, 심증에 사로잡혀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지 않고, 피의자의 변명 속에서 숨겨져 있던 진실을 찾아 내야할 것이다.
6.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실제 신문시간과는 관계없이 무고한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자백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압력에 부인을 관철할 인내의 한도를 넘을 수 있다.
7. 부인의 불이익을 강조
부인을 계속하면 수사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거나,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며, 정상이 나빠지고 오히려 형이 무거워진다고 타이르며 부인하는 것의 불이익을 강조할 경우, 무고하지만 자백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8. 수사관과의 ‘자백적 관계’
무고한 사람으로서 수사관으로부터 유죄를 전제로 추궁받는 것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신문 그 자체는 불합리해도 수사관이 악의를 가지고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 아님은 알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그 인간미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중에 수사관에게 끝까지 적대적이기는 어렵다. 이를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인 ‘스톡홀름 증후군’의 수사기관 버전으로 볼 수 있을까.
III. 억울한 피의자·피고인을 줄이기 위한 노력
많은 사람들이 형사재판과 얽힐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형벌을 부과받는 입장에 있는 동시에 형벌을 부과하는 입장에 있다. 책에서는 거짓자백, 억울한 피의자·피고인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바람직한 형사재판의 모습을 제언한다. 그 중 한국의 형사소송절차, 특히 수사절차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보았다.
1. 법정에서는 수사의 모든 것이 드러나게
우리 형사재판에는 2007년 당사자 간의 증거의 편재를 해결할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제도인 ‘증거게시제도’를 도입했다. 검사가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대한 증거개시뿐만 아니라 일정한 경우 피고인 측이 보유하고 있는 증거에 대한 증거개시도 인정하고 있다. 증거개시제도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그 주안점이 있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에 의해 도입된 증거개시신청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 개시거부나 제한사유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져야 한다. 단순히 열람ㆍ등사로 인하여 폐해의 발생이 우려된다는 정도로 막연하게 그 거부 또는 제한의 사유를 밝혀서는 안 되고, 대상이 된 수사기록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검토하여 어느 부분이 어떠한 제한 사유에 해당되는지를 주장ㆍ입증하여야 할 것이다.
2. 자백을 강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또한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피의자의 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경찰은 1999년 수사기관 최초로 피의자 신문시 변호인 참여제도를 도입하였고 이후 내사단계를 포함하여 참고인까지 경찰조사 전 과 정에 변호인 참여권 보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그러나 변호인 참여권이 단순히 추상적 기회의 제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선변호인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경우, 수사단계부터 공판단계까지 형사소추 전 과정에 걸쳐 ‘국가의 비용으로’ 형사변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경찰은 ①조사일정 사전협의, ②송치 전 자료·의견 제출기회 보장, ③압수수색시 피압수자 등 의견·서면 제출 보장, ④조서작성시 경찰제시 자료에 대한 진정 성립 및 신빙성에 관한 의견 기재, ⑤조사과정에서 내용을 임의로 조작하거나 함부로 생략하거나 질문을 마치 답변처럼 바꾸는 등의 왜곡 경계, ⑥조서 완성 후 정보공개절차에 따라 조치, ⑦아동·청소년, 장애인 피의자의 수사시간·장소 배려, 신뢰관계인 동석, ⑧심야조사 원칙적금지 등을 통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와 같이 부당한 자백유도를 금지하며, 조사대상자의 가족, 지인, 동료, 거래처, 관련 회사 등에 대한 수사확대를 암시하거나 ‘먼지털이’식 수사로 조사대상자를 부당하게 압박하여 자백을 유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309조 강제등 자백의 증거능력, 범죄수사규칙 제56조 임의성의 확보에도 규정되어 있다.
3. 위험한 증거는 사용하지 않는다
피의자·피고인의 진술이나 증인의 증언, 물증, 정황 등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으며, 나아가 서로 상반되기도 한다. 그래서 법원은 이들 중에서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취사선택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취사 선택과정에서 재판부의 임의적 판단을 배제하기 위하여 일정한 규칙이 필요하게 된다.
형사소송법 중에서도 사실을 확정하는 수단과 방법에 관한 법인 ‘증거법’은 사실 발견을 위해 재판부가 고려하여야 하는 증거는 무엇이며, 이러한 증거가 어떻게 제시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증거를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 사실 발견에 이르러야 하는가를 규정한 규칙들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제출된 정보가 증거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사실을 밝히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증거능력이란 증거가 사실발견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법률상의 자격을 말한다. 따라서 사실 발견에 상당한 가치가 있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다면 사실인정의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2편 제3장 제2절의 제309조부터 제317조의 3까지 어떤 것이 증거라고 할 수 있는가, 즉 증거능력을 규정하고 있다.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자백의 증거능력, 전문증거의 증거능력 제한과 예외 규정, 진술의 임의성 요구, 증거능력에 대한 당사자들의 동의 등이다.
증명력이란 증거가 사실발견에 어느 정도 가치를 가지는가를 말한다. 따라서 서로 상이한 증거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어느 것이 사실발견에 더 가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증거의 증명력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제308조(자유심증주의)에서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 증거의 증명력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신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IV. 결론
이 책을 통해 구조적으로 오판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형사절차(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판사나 검사, 경찰 등 모든 관계자들은 겸손하고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일반 시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당연한 사실 이외에 내가 내리는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공권력에 대한 외부의 통제와 감시를 받아들임으로써, 오판의 원인을 가능한 줄이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 보론
책에서는 전락자백으로 인한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관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위주로 서술하고 있으나 수사기관도 같은 점을 주의하여 수사 및 공소제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주의점들은 거짓자백, 전락자백 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인들의 부인·항변에 있어서의 거짓진술을 발견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판관 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점들은 다음과 같다.
①범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심증을 형성할 때에는, 인간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그 오류를 더 적게 하기 위해 진실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부단한 노력을 할 것
②자백이 있는 사건에서도 특히 피의자·피고인과 범행을 연결지을 때, 정황증거의 정확성과 한계를 엄밀하게 분석한 후 자백을 검토할 것
③심증형성의 과정에서 스스로 세운 ‘가설’을 벗어나는 예외에 눈감지 않고 끊임없는 ‘검증’을 거듭할 것
④자백(진술)의 신용성 인정 판단시 주의할 점: 자백과 부인이 뒤섞인 경우 주의 要, 자백(진술) 내용의 변동과 객관적인 증거와의 부합정도, 자백(진술)의 체험진술성, 피의자·피고인의 변명, 정황증거의 확실성·범행과의 관련성·자백과의 관련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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