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中..
#11.
부모는 어쨌거나 자식을 계속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감히 자신의 꿈을 계속 밀고나가지 못하곤 한다.
기억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그 꿈은 우연한 일상 경험들 속에서,
가끔씩 되살아난다.
하지만 매번 그로 인해 엄청난 실망감만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곧 그 꿈을 다시 묻어버린다.
'나는 좀더 미친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12.
정신의 길을 나아가는데 가장 힘든 두가지 시험.
제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그 하나요,
찾은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그 둘이다.
#13.
어려움은 비단 카오스, 즉 질서의 붕괴가 아니라
질서의 과잉에 기인한다.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규칙들로,
그 규칙들을 반박하기 위한 법률들로,
또 그 법률들을 반박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들로 넘쳐났다.
그것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법규를
일탈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신이 현재의 세계에 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신이 항소, 상고, 수탁쟆한, 소환장, 예비 진술
등에 응하느라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수없이 많은 재판에 불려나가 자신이 왜 아담과 이브를 천국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햇는지, 그것은 단지 그들이 자의적이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한가지 법(선악과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법)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걸 해명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아직 천국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면,
신은 왜 그나무를 천국의 담 바깥이 아닌 정원 한가운데에 심어놓았을까?
만약 내가 아담과 이브의 변호를 맡았다면,
분명히 신을 '관리 소홀'로 고소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무를 적절치 못한 장소에 심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경고문을 세우거나 울타리를 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두 부부를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다.
또한 나무가 있는 바로 그 장소를 말해주어
아담과 이브의 주의를 끌었다는 이유를 들어,
신을 '범죄 교사'로 고소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금담의 열매에는
(똑같은 나무들 속에서 숲의 일부가 되어버린, 따라서 특별한 가치가 없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대대손손 천국의 땅에서 살았을 게다.
하지만 신은 다르게 행동했다.
신은 법을 정해놓고, 오로지 벌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법을 어기라고 누군가를 부추길 방법을 찾아냈다.
신은 아담과 이브가 낙원의 완벽함에 결국은 싫증을 낼 것이고,
조만간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전지전능한 그 역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상태에
진력이 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브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이 수백만년 동안 과연
어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법을 범하자, 전지전능한 심판자인 신은
마치 그 도망자들이 어디에 숨을 것인지 모르는 척,
그들을 찾아다녔다.
천사들이 장난같은 그 장면을 보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그는 큰 걸음으로 동산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천사들은 루시퍼가 하늘을 떠난 이래, 지극히 따분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서스펜스 영화로 찍는다면 훌륭한 시퀀스가 될거였다.
아무튼.. 신의 발소리, 겁에 질린 두 부부의 눈동자,
그들이 숨은 곳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서는 발검음.
"어디 있느나"
신이 물었다.
"동산을 돌아다니는 당신의 발소리에 겁이 났고,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워 숨어있어요."
이 말을 통해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버렸다는 것도 모르는 채 아담이 대답했다.
보라. 간단한 속임수 덕분에,
아담이 어디 있는지 그가 달아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척함으로써, 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을 유심히 관람하고 있는 객석의
천사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신은 그 놀이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벌거벗고 잇다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
신이 물었다. 이 질문에는
"그걸 알게 해주는 금단의 열매를 먹었으니까요"
라는 하나의 대답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 질문을 통해, 신은 자신의 천사들에게 자신이 공정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실재하는 모든 증거들을 근거로 그 부부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죄가 이브에게 있다느니, 부부가 손이 닳도록 용서를 빌었다느니
하는 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신은 지상이나 천상의 어떠한 존재도 앞으로는 감히
그의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줄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신은 부부를 추방했고, 그 죄로 인해 그 자식들도 제몫의 대가를 치렀다.
이렇게 해서 법,
법의 위반(논리적이든 부조리하든, 그건 중요치 않은),
법의 심판(재간 좋은 사람이 순진한 사람을 이기는)
그리고 벌이라는 사법체계가 창조되었다.
전 인류가 재심을 청구해보지도 못한 채 유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이 또다시 자의적인 권력을 휘두르려 할경우에 대비해
방어 메커니즘을 철저히 마련해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수천년 동안 그작업을 해오다보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재심 청구 매커니즘을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래서 정의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조항들,
판례들, 서로 모순되는 텍스트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밀림이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신은 생각을 바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보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아들은 신이 창조한 정의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법들이 얽히고설켜 뒤죽박죽이다 보니
그 아들이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만 것이다.
소송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사지 안나에게서 가야바에게로,
대사장에게서 로바법에는 그의 죄를 다룰만한 법이 없다는 핑계를 댄 빌라도에게로,
빌라도에게서 유대법에는 사형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운 헤롯에게로,
헤롯에게서 또다시 빌라도에게로 보내졌다.
빌라도는 백성드에게 결정을 떠넘겨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그는 결국 의심스러운 점을 피고보다는 판관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을 이용했다.
그는 손을 씻어버렸다.
그것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의미했다.
정의. 법. 그것들은 결백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언제나 바라던 대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모든 혼란으로부터 동떨어져 있고싶다.
유일한 존재 이유가 남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이면서도
자신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살고싶지 않다.
내 몫의 미친짓은 이미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