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은 B를 살해할 마음을 먹고 권총을 구입한 다음 술을 마시고 심신미약의 상태에 이르러 그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서 B의 집 담장에 숨어서 B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B가 나타나지 않자 범행을 포기하고 그곳을 떠났다. 甲의 죄책은? |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에 관해 기본적으로는 두 가지의 사고방식이 제시되었다. 그 하나는, ⓐ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는 행위자에게는 책임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심신장애의 상태에서의 행위에 관해서는 완전한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원인행위에 관해서는 완전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경우에는 원인행위가 그 가벌성의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것으로서, 원인행위를 이미 범죄의 실행행위(: (범죄)구성요건적 행위)로 보는 것이다(: 이른바 ‘구성요건모델’). 다른 하나의 사고방식
은, ⓑ 형법상 가벌성의 근거가 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범죄)구성요건적 정형을 갖추고 있는 것이어야 하는 점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경우에도 그러한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고방식은,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경우에도 (범죄)구성요건적 정형定型을 갖추고 있는 행위 그 가벌성의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것으로서(: 책임주의의 예외), 그 행위 – 따라서 심신장애의 상태에서의 행위 – 를 실행행위로 보는 것이다(: 이른바 ‘예외모델’).
ⓑ의 사고방식(: 이른바 ‘예외모델’) 또는 ⓒ의 사고방식(: ‘실질적·종합적 관점’)에 따르면, 살인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는 보기는 어려운 점에서 살인예비죄(형법255)가 문제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의 사고방식(: 이른바 ‘구성요건모델’)에 따르면, 이미 실행의 착수를 인정할 수 있는 점에서 살인미수죄(형법254)가 문제된다.
Ⅰ. 논점
- 갑이 B를 살해할 마음을 먹고 권총을 구입한 행위가 살인예비·음모의 구성요건에 해당함은 명백하고, 위법성을 조각할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안은 책임능력 있는 행위자가 자의로 자기를 심신장애의 상태에 빠뜨린 후 이러한 상태에서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로써, 실행의 착수시기를 원인행위로 볼지, 실행행위로 볼지에 따라 갑의 살인죄 성부와 관련 중지미수의 자의성을 검토하여야 하는지, 예비의 중지미수를 검토하여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Ⅱ. 학설
1. 구성요건모델(원인행위시설)
- 심신장애를 야기한 원인행위시에 책임능력을 인정하고 원인행위를 실행착수로 본다. 이에 따르면 ‘행위와 책임 동시존재원칙’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구성요건의 정형성에 반해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
2. 예외모델(실행행위시설)
- 원인행위 당시에 책임능력을 인정하고 실행행위를 실행착수로 본다. 구성요건의 정형성은 유지되나 ‘행위와 책임 동시존재원칙’이 유지되지 않아 책임주의에 위배된다.
3. 절충설(실질적·종합적 관점)
- 예외모델(실행행위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견해로, 원인행위와 실행행위의 불가분적 관련성을 가벌의 근거로 내세우는 견해다.
Ⅲ. 실행의 착수시기를 원인행위로 볼 경우(구성요건모델에 따를 때)
1. 문제점
- 갑은 살해의 의사로 자신을 심신장애에 빠뜨리는 행위, 즉 술을 마신 순간 실행행위가 인정되나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B가 나타나지 않자 범행을 포기하였으므로 형법 26조 소정 중지미수가 문제가 된다. 따라서 갑의 자의성 인정 여부가 문제가 된다.
2. 학설
(1) 객관설: 범인의 의사와 관계 없는 외부적 장애에 의해 중지된 경우 자의성을 부정하나, 외부적 사정이 내부적 동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2) 주관설: 도덕적 규범의식의 각성에 의해 중지·방지한 경우에만 자의성을 인정하는 견해로 그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 있다.
(3) 프랑크 공식: ‘할 수는 있지만 완수하고 싶지 않았던’ 경우 자의성이 인정되고, ‘하려고 해도 완수할 수 없었던 경우’ 자의성이 부정되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심리적·물리적 가능성인지 윤리적 가능성인지 불분명하다는 단점이 있다.
(4) 절충설: 사회통념상 범죄 완수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자율적 동기인 경우 자의성 인정, 타율적 동기인 경우 자의성 부정한다.
(5) 규범설: 합법에로의 회귀로 평가될 경우 자의성을 인정하는 견해로, 이 역시 ‘합법에로의 회귀’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자의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3. 판례
- “사회통념상 범죄 완수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의한 것일 때”에는 자의성을 부정한다
4. 검토
- 각 학설 및 판례 어느 견해에 따르더라도 대체로 갑의 자의성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평가된다.
5. 사안의 해결
- B가 나타나지 않아 범행에 이르지 못한 사정으로 인해 범행을 완수하지 못한 갑에게는 자의성이 인정되지 않아 살인죄의 장애미수(형법254)의 죄책을 진다.
Ⅳ. 실행의 착수시기를 실행행위로 볼 경우(예외모델, 실질적·종합적 관점에 따를 때)
1. 문제의 소재
- 갑의 실행 착수시기를 살인의 실행행위 시점으로 보는 예외모델과 절충설에 따르면, 총으로 사람을 살해하려는 경우 적어도 사람에게 권총을 겨누었을 때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고 할 것이므로 B를 기다리기만 하다 돌아온 갑에게는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기 어렵고, 살인의 예비 또는 음모의 죄책만을 진다. 이와 관련, 갑이 범행의 완수를 자의로 중지한 경우 예비의 중지에 형법상 중지미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2. 학설
ⓐ 예비에 관해서는 「형법」 제2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는, 예비는 실행의 착수에 이르기 전의 단계이므로 실행의 착수를 전제로 하는 중지미수범(형법26)이 그 단계에서는 인정될 여지가 없는 점, 예비의 중지에 관해서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점 및 예비죄는 성질상 거동범이기 때문에 사실상 그 중지가 있더라도 여전히 예비로 평가되는 점을 그 근거로서 제시하고 있다.
ⓑ 예비에도 「형법」 제26조가 준용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입장은, 예비에는 「형법」 제2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게 되면, 가령 살인죄(형법250①)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한 자는 자의로 그 행위를 그만두고 실행에 착수하지 않은 경우라도 살인예비죄(형법255)로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데, 살인죄(형법250①)의 실행에 착수한 후에 자의로 중지한 경우에는 ‘형刑의 면제’까지도 가능한 것에 비추어보면, 예비에 「형법」 제26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형의 불균형이라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입장은, 예비의 중지에 관해 형의 감면을 인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 기준이 되는 형을
ⓑ-1 예비(음모)죄의 법정형으로 보는 입장과
ⓑ-2 그 기본이 되는 범죄유형, 즉 기수범의 법정형으로 보는 입장으로 구분된다.
3. 판례
- “중지범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한 후 자의로 그 행위를 중지한 때를 말하는 것이고, 실행의 착수가 있기 전인 예비음모의 행위를 처벌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중지범의 관념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
4. 사안의 해결
ⓑ-1의 입장에 따르면, 살인예비죄(형법255)의 법정형인 10년 이하의 징역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므로, 甲에 대한 처단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형의 면제’가 된다.
ⓑ-2의 입장에 따르면, 살인죄(형법250①)의 법정형인 사형死刑,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필요적으로 감면하므로, 甲에 대한 처단형은 ‘무기징역 또는 2년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형의 면제’가 된다. 그런데 ⓑ-2의 입장에서는, 예비(음모)죄의 형이 그것보다 중한 것인 한에서 준용을 인정하므로 결국 형의 면제만을 준용하게 된다.
판례에 따르면(: ⓐ의 입장에 따르면), 예비(음모)에 관해서는 「형법」 제26조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甲은 살인예비죄(형법255)의 형, 즉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된다.
그러나 위 ‘Ⅲ’에서 살핀 것처럼 어느 견해에 따르더라도 갑에게는 자의성을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갑에 대해 예비의 중지미수 규정은 적용할 여지가 없고 따라서 갑은 살인예비죄(형법255)의 죄책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