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Ⅰ. 사건의 개요
1. 사실관계
2. 사건의 경과와 판결의 요지
3. 문제의 소재
Ⅱ.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가벌성
1. 서설
2. 가벌성의 근거
(1) 학설의 대립
1) 논점
2) 구성요건모델
3) 예외모델
4) 검토
(2) 유형론
3. 형법 제10조 제3항의 해석
(1) 논점
(2)“자의”의 해석
(3)“예견”의 해석
(4) 검토
4. 소결
Ⅲ. 도주의 고의와 도주운전죄의 성립여부
1. 서설
2. 도주의 고의와 도주운전죄의 성립여부
Ⅳ. 결론
Ⅴ. 참고문헌
Ⅰ. 사건의 개요
1. 사실관계
「영화배우인 피고인은 영화촬영차 영화 제작진 및 출연진들과 함께 1991.8.2. 서울에서 정선에 도착하여 정선읍내 한 여관에 투숙한 후 그 다음날인 8.3. 저녁에는 일행 등과 회식하면서 술에 만취되어 여관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승용차 안에서 자다가 일행 등의 부축으로 겨우 여관에 들어갈 정도였고 그 다음날(사고당일)인 8.4.에는 위와 같은 숙취상태에서 아침에 소주1병, 12:00경에 맥주 3깡통, 14:00에서 15:00 사이에 소주 1병 이상, 저녁에 소주1병을 마셔 대튀한 상태에서 승용차를 운전해 가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구체적인 정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정거한 뒤 피해자를 약 12미터 떨어진 풀 속에다 버려두고 다시 차에 돌아와 운전을 계속하였으며, 피해자는 사망하였다. 피고인은 사고시로부터 약 7시간이 지난 시점의 음주측정에서 혈중알콜농도가 0.26%로 매우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2. 사건의 경과와 판결의 요지
사건에 대한 제1심은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도주운전죄, 업무상과실치사, 주취운전죄)을 인정하면서, 피고인이 행위 당시 책임능력이 미약하였다고 보아 형을 감경하였다. 이에 피고인 측은 심신상실이었으나 심신미약감경에 그쳤다는 이유로, 검사 측은 심신미약상태가 아님에도 원심이 심신미약감경을 한 것은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는 이유로 항소하였다.
이에 대한 제2심인 원심은 피고인이 행위당시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던 점은 인정되지만, “피고인이 음주할 때에 이미 음주운전할 의사가 있었던 경우에는 그러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것으로 보아 형법 제10조 제3항에 따라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짓고 피고인 측의 항소를 배척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였다.
이에 피고인이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형법 제10조 제3항 및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관한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대해서,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 규정은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도 그 적용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다”고 전제한 후 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할 의사를 가지고 음주만취한 후 운전을 결행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음주 시에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을 예견하였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법 제10조 제3항에 의하여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없다”고 하여 피고인의 상고이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 문제의 소재
이 사건의 논점은 피고인이 만취상태에서의 운전으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과실치사행위가 형법 제10조 제1항 심신상실상태하에서의 행위 또는 제10조 제2항 심신미약상태하의 행위로서 책임이 조각되거나 감경될 수 있는 가의 문제와, 피고인이 피해자를 자동차로 상해한 후 피해자를 12미터 떨어진 풀속에다 버려두고 간 행위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5조의 3 제2항 제1호 도주운전죄에 해당하는가와 이에 관하여 피고인에게 유기와 도주의 고의가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Ⅱ.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가벌성
1. 서설
형법상의 책임 원칙은 책임능력과 관련하여 행위자가 구성 요건 실현 행위시에 책임 또는 책임능력이 있어야 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는 원인 설정 행위 당시에는 책임 능력자이나 구성 요건 실현 행위 시에는 책임 무능력 상태에 있다. 여기서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을 고집하게 될 경우에는 범죄를 행할 의도로 스스로 책임 무능력 상태를 야기한 후 범행을 한 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처벌 상의 흠결이 생기게 된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이론은 형법 제10조 제1항 및 제2항이 전제로 하고 있는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의 원칙을 고집할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형사처벌의 흠결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형법 제10조 제3항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의 대법원 판례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보고, 그 근거로 형법 제10조 제3항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는 형법 제10조 제3항의 해석문제로 연결된다. 이에 따라 형법 제10조 제3항에 대한 이론적 근거에 대한 고찰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유형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2. 가벌성의 근거
(1) 학설의 대립
1) 논점
책임능력의 유무는 행위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행위자는 행위당시에 책임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의 원칙”이라 하며, 책임주의에 따른 확고한 결론이다. 이 원칙은 형법 제10조 제1항과 제2항에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불법 및 책임귀속에서 결과실현행위에 초점을 맞추면 온전한 책임능력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무죄가 되거나 최소한 형을 감경해야 함에도 형법 제10조 제3항은 그러하지 않다. 이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 즉 가벌성의 근거에 대하여 학설의 대립이 있다.
2) 구성요건모델
이 견해는 원인이 자유로운 행위의 가벌성의 근거를 법익침해의 전 단계, 특히 범죄 실현에 결정적인 사건과정으로서의 원인행위에서 찾는다. 따라서 이를 전진배치이론(Vorverlegungstheorie) 혹은 일치설이라고도 한다. 이에 따르면 원인이 자유로운 행위는 책임능력결함상태에 빠진 자신을 책임 없는 도구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는 간접정범과 유사하고, 따라서 원인행위가 실행행위이며 책임능력결함상태에서의 행위는 원인행위에 기인한 인과적 연장에 지나지 않으므로 직접 책임능력이 있었던 선행행위에 대하여 행위자를 비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접정범에서 이용자의 이용 행위 시를 실행의 착수로 파악하는 것처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실행의 착수시기를 고의 혹은 과실로 스스로에게 책임무능력상태를 야기하는 시점으로 파악하게 된다. 독일의 다수설이며, 국내의 과거 다수설-현재 소수설로 볼 수 있다.
3) 예외모델
이 견해는 행위를 실행행위로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책임무능력상태에서의 실행행위와 불가분적 연관을 가지므로 책임비난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실행행위는 결함상태 하에서의 범행으로 파악하지만, 책임비난의 근거는 원인행위에서 찾으므로 행위와 책임능력의 동시존재의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 점에 관하여 예외설은 실행행위는 비록 책임무능력상태에서 행하여졌지만 원인행위와 실행행위 간에 그러한 불가분적 관련이 인정되는 한 결함상태를 유책하게 초래한 행위자를 비난하는 것이 책임주의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책임능력결함 이전 상태의 유책화(Vorverschulden),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의 원칙의 예외] 이 설은 독일에서는 소수설, 국내에서는 유력설 내지 최근의 다수설로 볼 수 있다.
4) 검토
구성요건모델은 ① 구성요건모델이 의존하는 간접정범의 이론구성의 유추가 부당하다는 점,(간접정범의 도구는 반드시 책임능력의 결함에 관련될 필요는 없으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경우에는 반드시 자신의 책임능력의 결함과 관련되어야 한다는 비판) ② 실행의 착수개념을 앞당김으로 인해 구성요건의 정형성이 무시되며, 가벌성의 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된다는 점, ③ 한정책임능력상태를 이용하는 경우 형법 제10조 제3항이 한정책임능력의 경우도 포함하는 것에 반해, 구성요건모델은 이것의 이론 구성에 난점이 있으므로 형법 제10조 제3항의 정당화이론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예외모델은 책임무능력과 한정책임능력의 경우를 모두 동일한 논리로 포섭할 수 있다는 점, 실행행위 내지 실행의 착수시기개념을 엄격히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이론적 강점으로 꼽히나,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의 원칙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이며 따라서 형법의 법치주의적 한계를 불필요하게 넘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예외모델의 논리상 실행행위에 대한 고의책임귀속을 위해 원인행위의 고의를 문제 삼아야만 하고, 이것은 책임귀속의 준거가 되는 행위와 불법귀속의 준거가 되는 행위가 일치해야 한다는 책임주의의 근본적 요청에 반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관하여 책임주의의 예외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구성요건모델은 한정책임능력을 이론적으로 구성에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인정받기 어렵고, 우리 형법이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대한 명문의 규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모델이 그 이론상 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형법의 태도에 부합한다고 평가된다.
(2) 유형론
구 분 |
결함상태의 야기 |
결함상태에서의 범행 |
제 1 유형 |
고의(인식 및 용인) |
고의 |
제 2 유형 |
고의 |
과실 |
제 3 유형 |
과실 |
고의 |
제 4 유형 |
과실 |
과실 |
구성요건모델이건 예외모델이건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책임능력결함상태의 야기 및 결함상태 하에서의 구성요건 실현행위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의 결합관계에 따라 4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이에 관하여 구성요건실현행위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의 결합관계에 따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8유형으로 분류하는 견해도 있다.
다수설은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란 제1유형만을 의미한다고 보고, 나머지 유형은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본다. 본 사건의 경우 피고인의 사건행위에 대해서 “예견”이라는 표현에 주목하게 되면 사안에서 피고인은 범행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하였으므로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피고인이 실제로 예견하지 못했지만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피고인의 행위는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본 사건의 판례도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보았다.
그런데 본 사건의 판례는 형법 제10조 제3항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원인행위가 고의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과실에 의한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였는데, 이것은 형법 제10조 제3항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와 관련이 있다. 판례의 태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형법 제10조 3항의 해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3. 형법 제10조 제3항의 해석
(1) 논점
판례는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형법 제10조 제3항의 포섭범위로 해석하였다. 이것은 형법 제10조 제3항은 “위험발생의 예견”과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할 것을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자의”와 “예견”의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언에 대한 해석에는 학설의 대립이 있다.
(2)“자의”의 해석
“자의”를 강제 아닌 상태 내지 스스로의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지만 고의 ․ 과실의 개념과 무관하게 확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예외모델의 불가분의 연관의 표지가 모호해지므로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자의”의 개념에 대한 해석은 고의 ․ 과실의 검토문제로 환원 될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하여 심신장애상태의 야기에 대해 고의가 있는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견해와 심신장애상태의 야기에 대해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도 포함된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자의개념이 결국 고의 ․ 과실의 검토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면 “자의”라는 개념의 문리적 의미상 고의의 경우로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 사건 판례에서 형법 제10조 제3항의 “자의로”라는 문언에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포섭될 수 있다고 보는 데서 근거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에 관하여 명시적인 해석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본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과실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3)“예견”의 해석
“예견”을 위험발생을 인식 ․ 인용한 고의는 물론 위험발생의 가능성을 예견한 과실도 포함한다는 견해, 즉 현실적 예견이 있었던 경우뿐만 아니라 단지 예견가능성만 있었던 경우도 포함하는 견해와 “예견”은 인식 ․ 인용한 경우인 고의만을 가리킨다는 견해, 즉 현실적 예견의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는 견해, 그리고 고의와 인식 있는 과실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본 사건의 판례에서 대법원은 “위험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를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파악하고 형법 제10조 제3항을 적용시켰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라는 표현은 “예견”과 전혀 같은 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예견가능성을 의미하며, 양 개념은 분명히 구별하는 것이 문리해석에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형법 제10조 제3항에서는 위험발생을 “현실적으로 예견한 경우”만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견이라는 말 속에는 고의뿐만 아니라 인식있는 과실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인식있는 과실과 인식없는 과실은 법적으로 달리 평가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제 10조 제3항에서 말하는 예견은 위험발생에 대한 고의가 있는 경우로 한정해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4) 검토
형법 제10조 제3항에 대한 견해의 대립은 우리 형법 제10조 제3항이 위의 유형론에서 제시한 네 가지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중 어느 유형을 포함하고 있는 가의 문제에 대하여 답을 달리한다. “자의를”고의와 과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위험발생의 예견”에 예견가능성만 있었던 경우도 포함하여 해석한다면 위의 네 가지 유형은 모두 형법 제10조 제3항에 포섭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자의”를 고의의 의미로, “위험발생의 예견” 역시 고의의 경우로 한정해서 해석한다면 우리 형법 제110조 제3항은 오직 제1유형, 즉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만을 포함하게 된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네 가지 유형 모두가 형법 제10조 제3항의 해석과 상관없이 내지는,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법리에 따라 가벌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결론은 예외모델의 입장에서는 죄형법정주의위반의 문제가 야기된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행위와 책임의 동시존재의 원칙에 대한 예외라면, 그리고 그 예외가 가벌성의 범위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면 그것은 법률에 규정된 범위에서만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형법 제10조 제3항에 포함되지 않는 유형, 즉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까지도 관습법을 근거로 가벌성을 승인할 수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자의”의 개념과 “위험발생의 예견”이라는 개념을 문리해석에 반하여 넓게 해석함으로써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모든 유형을 포섭하려는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가벌성을 확장하는 효과를 지닌 예외규정은 최대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된 유형론의 경우 구성요건모델에서는 원인행위가 곧 실행행위이기 때문에 고의와 과실은 원인행위에 대하여, 그리고 원인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예외모델의 입장에서는 위의 유형론이 앞에서 언급된 이론적 부정합성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예외모델에서 행위결과의 불법귀속은 심신장애 상태에서 행하는 결과실현행위로 향해져 있다. 따라서 형법 제10조 제3항의 자의를 반드시 고의 ․ 과실개념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견해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게다가 우리 형법 제10조 제3항은 “자의”라는 개념표지를 요구 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모델에서 책임원칙에 대한 침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원인행위를 불법평가에서 제외하고 오로지 책임비난의 근거로만 삼으려 하는데, 책임비난의 근거가 되는 원인행위는 책임귀속의 종착지점이다. 예외모델에서는 원인행위와 결과실현의 불가분의 연관을 기초로 원인행위에로 책임귀속을 찾아간다. 이러한 책임비난을 위한 불가분의 연관을 형성하는 연결고리는 “이중의 고의”라고 볼 수 있다.
형법 제10조 제3항을 고의의 경우로 제한하더라도 본 사건의 경우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상의 과실범이론을 원용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즉 이미 통상의 과실범에서도 그 결과귀속은 행위자가 의무위반적이며 예견가능하게 법익에 대한 위험을 기초하거나 상승시키고, 결과를 통해 그 위험이 실현된 경우에 그 결과가 행위자에게 그의 작품으로서 귀속가능하다. 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실범의 미수는 인정되지 않으므로 과실범행을 예비, 미수, 기수 등으로 구분할 필요성도 없다. 따라서 과실범의 책임은 법익침해에서 현실화된 개별적인 의무위반적 위험창출행위에 직접 소급될 수 있다. 이 경우 규범이 요구하는 반대조종(즉 위험감소나 위험의 저지)의 시점은 원칙적으로 고유한 결과발생행위에서보다 광범위하게 앞으로 당겨져 있거나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불필요하며, 그 법형상은 통상의 과실범으로 처벌함으로 처벌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
4. 소결
본 사건 판례의 경우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하여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파악하고 형법 제10조 제3항을 적용하였다. 이 법조의 적용은 문언의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또한 학설의 첨예한 대립이 있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문언의 “예견”을 예견가능성으로 파악하고 형법 제10조 제3항의 포섭범위를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형법 제10조 제3항의 포섭범위는 제1유형, 즉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만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본 사건의 경우 형법 제10조 제3항을 적용하여 가벌성을 근거지울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Ⅲ. 도주의 고의와 도주운전죄의 성립여부
1. 서설
본 사건의 판결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할 의사를 가지고 음주만취한 후 운전을 결행하여 이 건 교통사고를 일으킨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음주 시에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을 예견하였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법 제10조 제3항에 의하여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도주운전죄의 성립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음주 시 예견의 대상을 사고발생의 가능성이 아닌 “교통사고의 위험성”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나아가 판례는 이처럼 음주 시 “교통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예견”이 존재하면 바로 특가법상의 도주차량운전죄에 해당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도주’ 나아가 ‘유기’의 점에 대하여 음주 시에 고의가 있었는가에 대한 검토 없이 도주운전죄의 성립을 긍정한 것은 의문이며, 학설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 도주의 고의와 도주운전죄의 성립여부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문제되지 않는 통상의 뺑소니사고의 경우, 우리 대법원은 특가법 제5조의3 제1항(도주차량운전자의 가중처벌)의 성립에 도주의 범의(적어도 미필적 고의)를 일관하여 요구하고 있다. 이 때 대법원은 도주의 개념에 관하여 사고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법 제50조 1항에 규정된 의무를 수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야기자로서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라고 판시하고 있다. 하지만 본 사건의 경우 원인행위 시에는 도주에 대한 예견조차 없었음은 명백하다. 본 사건처럼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원인행위 시에 도주행위에 대한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운전자가 음주할 때 뺑소니에 대해서까지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사건 판례에서 도주운전죄를 고의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처벌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힘들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볼 때 만약 피고인이 사건사고 당시 술에 취하여 있었으나 사물을 변별하고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는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도주부분에 대하여는 사고당시를 기준으로 별도로 파악하여 특가법 제5조의3 제1항 1호가 성립하는 경우로 구성하려면 최소한 형법 제10조 제2항의 필요적 감경은 인정되어야 하거나, 또는 사고당시에 완전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면 특가법 제5조의3 제1항 1호는 무죄(책임조각)로 인정한 후, 업무상과실치사죄(형법 제268조)와 사고후구호조치위반(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 그리고 주취중운전금지(도로교통법 제41조) 위반의 경합범으로 처벌하여야 할 것이다.
Ⅳ. 결론
본 사건의 판례의 태도는 피고인의 행위를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파악하고 형법 제10조 제3항에 포섭했다는 점과, 도주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움에도 도주운전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형법 제10조 제3항에는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포함된다고 해석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본 사건과 같은 경우들을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형태가 아니라 일반과실범으로 파악함으로써 처벌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고인의 행위를 현행법의 해석 하에서 특가법 제5조의3 제1항 1호가 성립하는 경우로 구성하려면, 심신미약상태를 인정한다면 형법 제10조 제2항의 필요적 감경을 해야 하며, 심신상실상태를 인정한다면 무죄를 인정한 후 업무상과실치사죄(형법 제268조)와 사고후구호조치불이행(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 그리고 주취중운전금지(도로교통법 제41조) 위반의 경합범으로 처벌해야 할 것이다.
Ⅴ. 참고문헌
- 단행본
김일수 ․ 서보학, 새로 쓴 형법총론, 박영사, 1999
박상기, 형법총론, 박영사, 2001
배종대, 형법총론, 홍문사, 2004
신동운, 판례백선 형법총론, 경세원, 1998
오영근, 형법총론, 박영사, 2002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 2005
임 웅, 형법총론, 법문사, 2002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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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권, 본 판례 판례평석, 판례월보, 1997/1
윤용규, “과실의 원인이 자유로운 행위”, 형사법연구 제11호, 한국형사법학회, 1999
이호중,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1)”, 고시계, 2000/10
조상제, “과실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형사판례연구 4, 박영사, 1996
조준현,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유형과 성립의 한계”, 고시연구, 2004/4
한상훈, “특가법 제5조의 3과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형사정책연구 제11권 제3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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