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문
甲은 丙의 집 앞을 지나다가 풀려 있는 丙의 맹견에 돌을 던졌다. 개가 덤벼들자 당황한 甲은 乙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당에 있던 乙은 甲의 멱살을 잡고 문밖으로 끌어낸 후에 문을 닫아버렸다. 甲은 덤벼든 개에 물려 상처를 입었다. 甲과 乙의 형사책임은?
Ⅰ. 설문의 검토
먼저 갑의 죄책으로는 갑은 병의 맹견에 돌을 던졌으므로 손괴죄가 성립할 수 있고, 을의 집에 을의 허락 없이 들어갔으므로 주거침입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을의 주거침입이 긴급피난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한편 을의 죄책으로는 을은 갑의 멱살을 잡아 유형력을 행사했으므로 폭행죄 혹은 그로 인해 갑이 상처를 입었으므로 폭행치상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때 만약 갑이 긴급피난에 해당한다면 갑의 행위는 정당한 행위인데 이에 대한 정당방위의 책임이 어떻게 되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Ⅱ. 관련 조문
형법 제13조 범의, 제16조 법률의 착오, 제21조 정당방위, 제22조 긴급피난, 제260조 폭행죄, 제319조 주거침입, 제366조 재물손괴 등
Ⅲ. 갑의 죄책
1. 손괴죄의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갑이 병의 맹견에 대해 돌을 던진 행위는 형법 제42장에서 규율하는 손괴의 죄 중 제366조 재물손괴죄에 해당가능성이 있다.
먼저 객관적 구성요건을 검토해보면, 재물손괴죄의 객체는 “타인의 재물, 문서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인데 병의 맹견이 타인의 재물에 해당하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또한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란 “손괴 은닉 기타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하는 것”인데, 갑의 돌을 던진 행위가 개의 효용을 해하였는지 여부는 검토할 수 없으므로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갑은 재물손괴 혹은 재물손괴의 미수로 의율될 수 있다.
한편 주관적 구성요건으로는 고의 이외에 불법영득의 의사와 같은 특별한 주관적 구성요건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맹견의 효용을 해하려는 주관적 인식만 있으면 충분하다. 갑의 고의 충족 여부에 대해 견해 차이가 보이는 부분이 있어 문단을 달리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2) 고의에 대한 검토
형법상 고의란 형법 제13조에서도 알 수 있듯, 행위자의 인식과 의사로 대별된다. 또한 이러한 인식과 의사를 완벽히 충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필적이나마 의사가 있다면 고의가 있다고 본다.
본 사안에 있어서 ‘갑이 장난으로 돌을 던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손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이는 손괴의 의사가 없다고 본 것인데, 고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인식한 내용을 실현하려는 의사가 있으면 충분하다. 즉 구체적인 범의의 내용까지 인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신이 의욕한 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 만약 행위자가 하는 행동이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형법 제16조의 법률의 착오(금지착오)에 해당하므로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아니하지만, 본 사안에서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판례도 손괴의 고의의 내용에 있어서 ‘재물손괴의 범의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계획적인 손괴의 의도가 있거나 물건의 손괴를 적극적으로 희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재물의 효용을 상실케 하는데 대한 인식이 있으면 되고, ……’라고 판시함으로써 장난으로 돌을 던진 것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손괴죄로 처벌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소결
갑이 맹견에 돌을 던진 행위는 손괴죄의 객관적 구성요건과 주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으므로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다. 한편 사안에서 위법성 조각사유 혹은 책임 조각사유를 추정할 수 없으므로 갑은 손괴죄 혹은 손괴미수죄로 의율될 수 있다.
2. 주거침입죄의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주거침입죄는 사람의 주거에 침입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타인의 주거에 침입하였으므로 객체 및 행위를 갖추었음에 의문의 여지는 없고,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고의, 즉 타인의 주거에 주거자의 의사에 반하여 들어가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었으므로 고의도 충족된다. 따라서 갑이 을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간 행위는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2) 위법성 조각사유의 검토
➀ 정당방위의 성립 여부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에 대해서 위법성이 조각됨을 규정하고 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침해란 법익에 대한 실해 또는 위험을 야기하는 인간의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자연인만이 침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맹견의 침해에 대해서는 정당방위가 성립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정당방위에서 방위행위는 침해자 및 그 도구에 대해서만 할 수 있고, 제3자에 대한 반격은 긴급피난만이 가능할 뿐이므로 정당방위는 성립할 여지가 없다.
➁ 긴급피난의 성립 여부
갑은 자신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을의 주거에 침입하였으므로 긴급피난이 성립가능한 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긴급피난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1.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이 있어야 하고 2. 피난행위가 있어야 하며 3.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먼저 갑은 맹견으로부터 위험에 처해 있으므로 현재의 위난이 있고 이에 대한 피난의 행위로 제3자 을의 집에 침입하였다. 한편 이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의 검토를 위해서는 갑이 피난하지 않았을 때 침해되는 이익과 피난으로 인해서 침해되는 이익을 비교형량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인격적 법익은 재산적 법익보다 우선하고 주거침입으로 인한 법익 침해보다 갑의 상해에 대한 신체적 법익이 더 중하므로 긴급피난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➂ 자초위난의 문제
갑이 스스로 맹견에게 돌을 던졌으므로 자기가 스스로 초래한 위난에 대해서도 긴급피난이 성립 가능한지 문제가 된다. 앞서 긴급피난의 요건을 검토하였듯이, 원칙적으로 긴급피난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을 것이 긴급피난의 요건은 아니므로 갑의 귀책사유로 위난이 초래된 경우에도 상당성이 인정되는 한 긴급피난이 가능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피난행위를 할 목적으로 위난을 자초하거나 고의로 위난을 자초한 경우에는 권리남용 방지를 위해 긴급피난이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고의로 위난을 야기한 경우에도 권리남용이 아니거나 기대불가능한 경우 또는 예상 외의 위난이 초래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긴급피난을 할 수 있는바, 설문에서 갑은 처음부터 피난행위를 할 목적으로 위난을 야기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긴급피난의 성립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3) 소결
갑이 을의 주거에 허락없이 침입한 행위에 대해서는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한다. 하지만 갑의 행동은 맹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는바, 갑의 행동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검토해 보아야한다. 갑의 행동은 긴급피난에서 자초위난이 문제되는바, 위난에 대한 귀책여부는 원칙적으로 긴급피난의 요건이 아니고, 고의로 위난을 초래한 경우에도 예상 외의 위난이 초래한 경우에는 긴급피난이 성립하는데 갑은 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갑의 주거침입죄는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되지 아니한다.
Ⅳ. 을의 죄책
1. 폭행치상죄의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을이 갑의 멱살을 잡고 집 밖으로 끌어내어 개에 물려 상처를 입게 한 행위가 폭행치상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해보아야 한다. 폭행치상죄는 결과적 가중범이므로 폭행치상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범죄에 대한 고의가 있어야 하고 중한 결과가 발생해야 한다. 을이 갑의 멱살을 잡고 끌어낸 것은 사람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한 것으로 폭행에 해당한다. 또한 폭행치상죄가 성립되어 결과로 인하여 형이 중한 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형법 제15조 2항에 따라 중한 결과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이는 문단을 달리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2) 예견가능성의 문제
을이 자신의 행위로 인해 갑에게 중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견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형법 제15조 2항) 예견가능성의 존부는 기본범죄를 실행한 때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본 사안에서는 을의 폭행으로 인해 갑이 개에 물리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통상적으로 일반인이 예견하기 어려우므로 예견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서 중한 결과로 처벌할 수 없다.
(3) 소결
을에게 폭행치상죄의 죄책을 묻기 위해서는 형법 제15조 2항에 의해 행위자에게 상해라는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을의 행위 당시에는 일반인의 기준으로 그러한 정을 예견하기 어려우므로 을은 폭행치상죄로 의율되기 어렵고 단순 폭행죄의 성립가능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2. 폭행죄의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및 위법성 조각사유의 검토
앞에서 검토했듯이, 폭행치상죄의 성립은 부정되지만 폭행의 고의로 유형력을 행사했으므로 폭행죄는 성립한다. 이에 을에게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사안에서 을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려고 했으므로 일견 정당방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갑의 주거침입은 긴급피난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정당한 침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을은 갑의 정당한 침해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을은 정당방위의 객관적 전제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 상황이 존재하는 것으로 오인하였다. 이에 소위 오상방위가 문제가 된다.
(2) 오상방위의 해결
➀ 오상방위에 관한 여러 학설
오상방위의 해결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나뉘어져 있다.
(i) 고의설 - 고의설은 위법성인식을 고의의 내용으로 이해하여,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착오로 인하여 위법성의 현실적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범의 책임을 지지 않고 과실이 있으면 과실범의 책임을 지게 된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을은 고의가 조각되므로 폭행죄의 과실범으로 처벌되나, 과실폭행은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가 된다.
(ii) 소극적 구성요건표지이론 - 이 이론은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의 경우에 위법성조각사유의 부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구성요건적 착오로서 불법고의가 조각된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을은 불법고의가 조각되므로 폭행죄의 과실범으로 처벌되나, 과실폭행은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가 된다.
(iii) 엄격책임설 - 이 학설은 행위자는 구성요건적 사실 자체는 인식했으므로 구성요건적 고의는 조각될 수 없고, 다만 착오로 인하여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므로 금지착오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을은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할 수 없다.
(iv) 유추적용설 - 이 학설은 위법성조각사유의 객관적 전제사실과 구성요건의 사실적 요소가 유사하다고 보아, 행위자에게는 구성요건적 착오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불법고의가 조각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을은 불법 고의가 조각되어 과실 폭행으로 처벌되나, 규정이 없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
(v) 법효과제한적 책임설(多) - 이는 행위자에게 객체를 침해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인용은 있으므로 구성요건적 고의는 조각되지 않지만, 착오로 인하여 행위자의 법적대적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책임고의가 조각되는 것으로 보아 과실범의 문제로 취급하자는 견해이다. 이에 의하면 을은 책임고의가 조각되어 과실 폭행으로 처벌되나, 과실 폭행 처벌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가 된다.
➁ 사견
오상방위의 이론 구성에 관해 여러 학설이 나뉘어져 있지만, 실정법 조문에 근거한 것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13조에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충실한다면, 본 사안의 을은 폭행죄가 성립되기 위한 사실인 ‘갑의 정당한 긴급피난’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으므로 고의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 다만 정상의 주의를 태만하여 과실이 인정되면 과실범으로 처벌되나 폭행죄는 과실범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을은 무죄이다.
(3) 소결
오상방위에 있어서 을은 위법성조각사유와 관련하여 준법적으로 행동하였으므로, 비난받아야 할 점은 을의 부주의성에 있는 것이지 법배반적 심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형법 제13조에 따라 죄의 성립요소가 되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을은 과실범으로 되어 처벌할 수 없다. 한편 학설의 다수설인 법효과제한적 책임설에 따라도 을은 책임고의가 조각되어 과실범으로 처벌되므로 결론은 같다.
Ⅴ. 결론
갑이 맹견에 돌을 던진 행위에 대해서 갑은 손괴죄 혹은 손괴미수죄의 죄책을 진다. 한편 을의 주거에 허락 없이 침입한 행위에 대해서는 주거침입죄가 긴급피난으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이다.
을이 갑에게 유형력을 행사한 행위에 대해서는 상해라는 결과가 발생하였지만 예견가능성이 없어 폭행치상죄로 의율하기 어렵다. 한편 폭행죄에 대해서는 을은 오상방위에 해당하고 형법 제13조의 명문규정에 따라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을은 과실범으로 처벌된다. 하지만 과실폭행죄는 처벌하지 않으므로 을은 무죄이다.
<관련사례>
◇ 설 문
학생 甲과 乙이 심야에 번화가를 걷고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 깡패같은 A가 생트집을 잡고 甲의 멱살을 잡아 부근 골목길로 끌고 들어가 칼을 甲에게 들이댔다. 甲과 乙은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번갈아 A의 안면을 때려 노상에 쓰러뜨리고 칼을 빼앗아 멀리 던져 버렸다. 甲은 그 장소에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乙은 A가 쓰러진 채 ‘너 이놈 기다려’라고 소리지르며 오른손으로 상의의 주머니를 뒤지고 있는 것을 보고 A가 또 칼을 꺼내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A의 복부를 여러 차례 힘껏 걷어찼다. 그 사이 甲은 乙을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A는 乙의 폭행에 의해 췌장파열의 상해를 입고 사망하였다. 甲과 乙의 죄책은?
Ⅰ. 설문의 검토
먼저 을의 행위로는 A의 안면을 때려 노상에 쓰러뜨린 행위와, 쓰러진 A의 복부를 여러 차례 힘껏 걷어차서 A를 사망하게 한 행위가 있다. 이를 하나의 구성요건적 행위로 볼 것인지, 다른 행위로 볼 것인지 검토하여야 한다. 이를 달리 본다면 선행행위에 대해서 상해죄의 성립여부와 후행행위에 대해서 상해치사죄의 성립여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한편 갑의 행위로는 A의 안면을 때려 노상에 쓰러뜨린 행위와 을이 쓰러진 A의 복부를 수차례 걷어차는 행위를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이 있다. 선행행위에 대하여는 상해죄의 성립여부를 검토해야 하고, 을의 행위를 가만히 보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을의 행위에 대한 공범 성립의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Ⅱ. 관련 조문
형법 제13조 범의, 제15조 2항 사실의 착오, 제21조 정당방위, 제30조 공동정범, 제32조 종범, 제257조 상해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제2조 2항 등.
Ⅲ. 乙의 죄책
1. 선행행위와 후행행위의 관계
(1) 문제제기
을의 죄책을 논하기에 앞서 을이 처음으로 A의 안면을 때린 행위(선행행위)와 쓰러진 A의 복부를 때린 행위(후행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문제가 된다. 만약 두 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본다면 을에게 일죄만 성립할 것이고, 이 행위를 구분해서 본다면 을에게 두 행위에 대한 각각 범죄의 성립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2) 죄수 결정의 기준
수 개의 행위가 일죄인가 수죄인가 판단하는 죄수결정의 기준에 대해서는 학설이 나뉘어져 있다. 행위표준설은 자연적 의미의 행위의 수에 의하여 죄수를 결정하는 견해이다. 법익표준설은 침해되는 보호법익 또는 결과의 수를 기준으로 죄수를 결정하는 견해이며, 의사표준설은 범죄의사의 수를 기준으로 죄수를 결정하는 견해이다. 구성요건표준설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회수를 기준으로 죄수를 결정하는 견해인데, 판례는 원칙적으로 법익표준설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관된 것은 아니다.
생각건대, 구성요건의 충족회수를 결정하는 데에는 행위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행위의 수는 범죄의사와 법익을 떠나서는 판단할 수 없다. 따라서 죄수는 범죄의 모든 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인 경우에 합목적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판례도 ‘실질적으로 1죄인가 또는 수죄인가는 구성요건적 평가와 보호법익의 측면에서 고찰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죄수결정에 있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3) 소결
을의 선행행위와 후행행위는 A의 구분적 행위에 대한 별개의 대응으로 행위로 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구분적 상황에 대한 별개의 고의가 별개의 구성요건을 구성하고 보호법익도 다르므로 본 사안에서는 두 행위를 별개의 죄책으로 검토해야 한다.
2. 선행행위의 상해죄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을이 갑의 멱살을 잡아 골목길로 끌고 들어가고 칼을 들이댄 A에 대해 안면을 때리고 노상을 쓰러뜨린 행위는 상해죄의 객관적 구성요건인 사람의 신체라는 객체와 상해라는 행위를 충족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고의가 있으므로 상해죄에 해당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이하 폭처법) 제2조 2항은 ‘2인 이상이 공동하여 본 죄를 범한 때에 각 형법 본조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 사안에서는 갑과 을이 번갈아 A를 때려 상해를 가했으므로 각각 상해에 대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고, 이에 특별법인 폭처법 제2조 2항의 공동상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2) 위법성 조각사유 검토
을이 폭처법 제2조 2항의 공동상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는바, 을은 A의 갑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정당방위의 성립여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 본 사안에서는 A의 행위가 갑의 법익을 침해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방위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을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가 성립한다.
(3) 소결
을의 행위는 폭처법 제2조 2항에서 규율하는 공동상해에 대한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으나, 정당방위에 해당하므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다.
3. 후행행위의 상해치사죄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을이 쓰러진 A의 복부를 여러 차례 걷어차고 이에 A가 췌장파열의 상해를 입고 사망한 것은 상해치사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인다. 상해치사죄는 결과적 가중범이므로 기본 범죄에 대한 고의로 인해 중한 결과가 발생해야 하며, 형법 제15조 2항에 의해 이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된다. 사안에서는 을은 A의 복부를 걷어찬 행위에 대한 고의가 인정되고 그로 인해 A의 사망이라는 중한 결과가 발생하였다. 또한 쓰러져서 항거불능상태에 있는 을의 복부를 수차례 힘껏 걷어찬 을에게 A의 사망에 대한 예견가능성은 인정된다. 따라서 을의 행위는 상해치사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2) 위법성 조각사유의 검토
➀ 오상과잉방위의 문제
을이 쓰러진 A에게 상해를 가한 행위는 A가 다시 칼을 꺼내어 위협할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A에게 현실적인 법익의 침해가 없었고, 설문에서 칼을 꺼내려는 것으로 ‘착각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없었음에도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정당방위의 객관적 전제사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위자는 그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오신하고 방위행위로 나아갔으므로 오상방위가 문제된다.
이에 더불어 정당방위는 不正 대 正의 관계이므로 보호하려는 법익보다 침해되는 법익이 어느 정도 우월하여도 성립하지만, 그 방위행위가 사회윤리적 제한을 넘어서서 상당성을 초과했다면 과잉방위의 문제가 된다. 쓰러진 채 위협을 가하는 A에게 정당방위를 위해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는 정당방위의 사회윤리적 제한을 넘어서서 과도한 방위를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본 사안에서는 오상방위와 과잉방위가 결합된 형태인 오상과잉방위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➁ 오상과잉방위의 취급
오상과잉방위의 취급에 대해서는, 1. 오상방위와 동일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다수설), 2. 과잉성을 인식한 협의의 오상방위는 과잉방위로, 착오로 그 정도를 초과한 광의의 오상과잉방위는 오상방위로 처리하려는 견해, 3. 과잉부분을 고의로 행하였다면 고의범이 성립되고, 과잉부분을 과실로 행하였다면 결과적 가중범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있다.
생각건대, 오상과잉방위의 경우에 행위자의 심리상태는 오상방위자와 동일하고, 오상과잉방위의 본질이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있다고 오인한 데 있으므로 오상방위와 동일하게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➂ 오상방위의 해결
오상방위의 해결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나뉘어져 있다.
(i) 고의설 - 고의설은 위법성인식을 고의의 내용으로 이해하여,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착오로 인하여 위법성의 현실적 인식이 없는 경우에는 고의범의 책임을 지지 않고 과실이 있으면 과실범의 책임을 지게 된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을은 고의가 조각되므로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ii) 소극적 구성요건표지이론 - 이 이론은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의 경우에 위법성조각사유의 부존재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구성요건적 착오로서 불법고의가 조각된다고 본다. 이에 따르면 을은 불법고의가 조각되므로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iii) 엄격책임설 - 이 학설은 행위자는 구성요건적 사실 자체는 인식했으므로 구성요건적 고의는 조각될 수 없고, 다만 착오로 인하여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므로 금지착오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을은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할 수 없다.
(iv) 유추적용설 - 이 학설은 위법성조각사유의 객관적 전제사실과 구성요건의 사실적 요소가 유사하다고 보아, 행위자에게는 구성요건적 착오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불법고의가 조각된다는 견해이다. 이에 따르면 을은 불법 고의가 조각되어 과실치사죄가 적용된다.
(v) 법효과제한적 책임설(多) - 이는 행위자에게 객체를 침해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인용은 있으므로 구성요건적 고의는 조각되지 않지만, 착오로 인하여 행위자의 법적대적 의사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책임고의가 조각되는 것으로 보아 과실범의 문제로 취급하자는 견해이다. 이에 의하면 을은 책임고의가 조각되어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➁ 사견 및 소결
오상방위의 이론 구성에 관해 여러 학설이 나뉘어져 있지만, 실정법 조문에 근거한 것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13조에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충실한다면, 본 사안의 을은 ‘A의 현재의 부당한 법익침해’가 없어서 자신의 상해에 대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고의가 조각되고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한편 다수설인 법효과제한적 책임설에 의해도 을은 책임고의가 조각되고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Ⅳ. 甲의 죄책
1. 상해죄의 성립여부
(1) 구성요건 해당성
갑이 을과 A의 안면을 번갈아 때려 노상에 쓰러뜨린 행위가 폭처법 제2조 2항에 해당하여 공동상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함은 앞서 을의 죄책을 살펴본 바와 같다.
(2) 정당방위의 검토
A는 갑의 멱살을 잡고 칼로 위협하여 갑에게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야기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갑이 A를 노상에 쓰러뜨리는 정도로는 정당방위의 상당성을 충족하여서 갑의 행위가 정당방위의 요건을 충족함은 앞서 검토한 바와 같다.
(3) 소결
갑의 행위는 폭처법 제2조 2항에서 규율하는 공동상해에 대한 구성요건 해당성이 있으나,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무죄다.
2. 과실치사죄의 공범 성립여부
(1) 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 성립여부
➀ 과실범의 공동정범
갑은 을이 쓰러진 A에게 상해를 가하여 A가 사망할 때, 도망치려 했다가 도망치지 않고 을의 행위를 바라보았다. 이에 을의 과실에 대해 갑의 공동정범이 성립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➁ 학설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긍정하는 학설에 대표적으로 행위공동설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공동정범은 특정한 범죄가 아니라 행위를 공동으로 하는 것이고, 공동의 의사도 행위를 공동으로 할 의사이면 족하기에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부정하는 학설 중 다수설인 기능적 행위지배설에 의하면, 공동정범의 본질인 기능적 행위지배는 과실로는 불가능하므로 공동정범의 성립여지가 없다고 본다.
➂ 검토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긍정하는 견해에 의하든, 부정하는 견해에 의하든 공동정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을의 행위에 대해 갑의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어야 한다. 공동정범을 규율하는 형법 제30조에서도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라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정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을의 행위에 갑의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어야 하지만 본 사안에서 갑이 을의 행위에 대해 개입한 정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갑은 을의 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이 될 수 없다.
(2) 과실치사죄의 공범의 성립 여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갑에게는 과실치사죄의 공동정범이 부정되는데, 이에 을의 행위에 대한 방조범이 성립되는지 검토하여야 한다. 하지만 형법 제34조 1항에 의해 과실범에 대한 방조는 간접정범이 성립한다. 하지만 간접정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갑이 을의 의사를 지배하여 과실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갑은 을을 제지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었을 뿐이므로 을에 대한 의사지배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방조범도 성립할 수 없다.
Ⅴ. 결론
을의 공동상해죄는 정당방위로 되어 무죄가 되고, 을의 상해치사죄에 대하여는 오상과잉방위를 검토해본바 상해의 고의가 조각되고 과실치사죄가 성립한다. 한편 갑의 공동상해죄도 정당방위가 되어 무죄가 된다. 갑에게 을의 과실치사죄에 대한 공범 성립 가능성을 검토해본바, 갑에게 기능적 행위지배가 없어 공동정범은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에 종범 성립 가능성을 검토해보았지만, 과실로 처벌되는 자를 이용한 경우에는 간접정범에 의하는데 갑에게 을의 의사지배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도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갑은 무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