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m I ?!/Pleasure2019. 12. 1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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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 요가(Raja Yoga)

 

라자 요가는 몸과 마음을 과학적으로 통제한다. 

보통 요가의 최상의 길이라 부르며,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영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생각의 흐름을 통제한다.


현인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 경전에서 라자 요가의 8단계를 통하여 

몸과 마음의 정화를 단계적으로 발전시켰다. 

 

라자 요가는 궁극적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요가수행 체계의 하나이다.


이러한 8단계는 야마(Yamas), 니야마(Niyamas), 아사나(Asanas), 

프라나야마(Pranayamas), 프라트야하라(Pratyahara), 

다라나(Dharana), 디야나(Dhyana), 사마디(Samadhi)이다. 


야마(Yamas)는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규범이다. 

자연을 파괴하지 말고,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 

진리에 입각한 생각과 행동을 한다.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소유욕을 가지지 말며 검소한 생활을 한다. 

모든 것을 브라마(신)의 입장으로 본다.


니야마(Niyamas) 또한 다섯 가지로써 내적 깨끗함을 지켜주는 규범이다. 

순수성, 만족감, 절제, 경전에 대한 공부와 성스러운 현존(現存)의 자각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아사나(Asanas)는 자세이고, 프라나야마(Pranayamas)는 규칙적인 호흡법이다.


프라트야하라(Pratyahara)는 밖으로 

향한 감각을 내면으로 돌리는 것이다.


다라나(Dharana)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법이다. 


디야나(Dhyana)는 명상의 단계, 사마디(Samadhi)는 초의식의 절정을 말한다.

 

*출처: The New Book of Yoga by 시바난다 요가 베단타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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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CIBOMB
Who am I ?!/Book2019. 11. 2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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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창순 지음

 

그들은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가 상처를 입곤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말은 사실에 가깝다. 상대방이 내 마음 같을 거라고 믿고 행동하는 이상 우린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는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자신만 더 상처받는다고 여기는 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높은 기대치도 한몫한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대방은 나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사람이라는 기대치가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그런 기대치가 채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방은 내가 아니다. 따라서 그가 내 욕구와 기대치를 알아서 헤아리고 그것을 채워주는 일 같은 것은 처음부터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날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만큼 내 욕구를 헤아리고 내 기대치를 채워줄 사람은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그러기엔 인간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상대방의 욕구보다는 내 욕구가 더 먼저고 더 중요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 인간의 뇌 속에 태생적으로 공감 신경세포가 있기에 이 정도라도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진심이었어"라고 말하지 마라
우리가 "나는 진심이었어"라는 말을 쓸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대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다.
물론 자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내 진심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찌보면 "난 진심이었어"란 말을 덜 쓸수록 인간관계를 잘해나가는 거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창조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통로가 바로 관심이다.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는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진심은 그러한 관심이 때때로 다다르는 어느 한 지점인 것이다.

내가 설령 팩트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상대방의 상처를 염려해 말을 줄이고 감정을 여과한 후에 표현해보자. 그것이야말로 진정 섬세한 테크닉이 아니겠는가. 그것의 다른 이름을 우린 '배려'라고 한다.
요컨대, 인간관계에서 꼭 마음에 새겨둬야 할 원칙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꼭 진실이고 팩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매혹'이란 소솔을 쓴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란 작가는 '사람은 현재의 자기 이미지에 맞춰 기억을 재배열할 뿐 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그러진 않는다'고 주장한다. 

거짓을 어디까지 들추어내야 할까?
나의 진실과 상대방의 팩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상대방이 아예 거짓을 주장할 때 그것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나뉜다. 가장 흔한 이유는 회피의 정신기제다.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일어나는 일들이 두려워 일단 피하고 싶은 것이다. 또 죄책감과 그로 인한 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가장 흔한 방어기제가 '억압'이다.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고 상대방도 모르게 땅 속에 묻는 것이다. 
실제로 스스로 그렇게 믿고 아예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리는 사람도 있다. '부인(denial)'의 정신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기억이 안납니다"하고 시치미를 떼는데 놀랍게도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또 다른 정신기제는 '합리화'다. 상대방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경우 상대방이 그것을 감당 못하고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태도가 여기에 속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실망해 떠날까 봐 두려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병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쟁이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 마치 죽을 것 같은 다급함이나 수치심을 느낄 때도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들추어내면 적반하장으로 나오기 십상이다. 죄책감으로 인해 이미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생겼는데 그것을 누군가가 들쑤시면 억지로 몸의 딱지를 뗄 때 느끼는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건 그들이 다 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기욤 뮈소

왜 우리는 남에게 하듯이 자신에게는 조언을 할 수 없는걸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문제는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없다. 자신은 중요하다고도 특별한 존재라는 자의식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다. 지금 이 순간의 나만큼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은 없다. 

'수십, 수천 세기의 시간이 흘러가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뿐이다. 공기 중에, 땅에, 바다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바로 나한테 일어난 일뿐이다' - 호르헤 보르헤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힘든 감정일수록 우리는 더욱 깊숙이 무의식에 묻어둔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종의 보호기능일 수도 있다. 감저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면 누구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억압해도 문제다. 억압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낸다. 오히려 억압이 클수록 그 이상의 폭발력으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통렬한 감정일지라도 어느 저옫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럼 다음에는 여과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믿을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든가, 일기처럼 노트에 적는다든가 해서 감정이 여과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억압만 하는 것은 불씨를 묻어두는 것과 같다. 일종의 심리적 휴화산인 셈이다.

우리가 감정을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과일이 가장 맛있게 잘 익는 때는 짧은 한철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렇게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너무 익어서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오는 시간은 너무 짧다.
행복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 결과는 우리 몫이 아닐 때가 훨씬 많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는 수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우린 어째서 사람들이 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지 않다고 실망하는 것일까? 그것 또한 우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바라는 예외적인 면, 즉 나만은 다를 것이다라는(근거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치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웬만해선 타고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벼락같은 깨달음이 있거나 인생의 온갖 풍파를 겪은 다음이면 몰라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 성격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내가 가진 성격 안에서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고자 노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다음에는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의 내면을 직시하기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맞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나아갈 방향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발이 묶여도 곤란하지만 과거는 미래의 자산이란 것도 잊지마" -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 中

내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많다.
우리의 인간관계 양상은 크게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뉜다. 적극적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신이 우위에 서고자 하는 지배형, 인간관계에 불편함을 느껴 거리를 두려고 하는 회피형, 인간관계에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밀형이 그것이다.
건강한 인간관계란 '시의적절'하게 이 세가지 유형을 고루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호적 지배 성향은 리더십에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애초에 리더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와 같은 결속을 통해 통제지배력을 행사하고 싶어하지 않는 리더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그 두가지는 리더십에서 숙명과도 같은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타입을 움직이는 동력은 경쟁심과 인정욕구이다. 
이 타입의 단점이라면 상ㄷ방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쳐 때로는 상대방이 간섭이라도 여길 정도로 깊이 관여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의 통제력에 도전하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의견은 경청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로서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타입일수록 바낻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불필요하게 자신에게 간섭하거나 명령을 내리는 경우 강하게 저항한다.
만약 자신이 우호적 지배성 타입이라고 여겨진다면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속이나 인정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두 부류다. 솟구치는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담아두는 부류와 모든 걸 겉으로 팍팍 드러내는 부류" - 줄리언 반드의 소설 '내 말 좀 들어봐' 中
첫 번째 부류의 경우에도 물론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그편이 더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느기지 못해서는 아니다.

"결정적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하나의 행성을 공유하고 있고 모두가 그 하나뿐인 행성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고통이 곧 우리의 고통이라는 자각이 기정사실화 될 것이다. ...... 우리는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생명권과 전체 인류에게로 공감의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 우리는 과연 제때에 지구촌의 붕괴를 피하고 생물권 의식과 범세계적인 공감에 이를 수 있을까?" - 리프킨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인류에 힘을 보태는 것은 결국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닐가.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폭넓고 충실하게 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 나에겐 오직 세 가지 자산밖에 없다. 나는 뭔가에 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모든 도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내면에 강력한 열정과 자율성을 갖고 있다." - 엘리너 루스벨트

"자신이 똑똑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허영심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거꾸로 상대가 멍청하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이것을 이용하면 훌륭한 기만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상대가 당신보다 똑똑하다는 생각을 심어주어라. 심지어 약간 바보처럼 굴어라.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의심을 풀어버릴 것이다. ...... 사람들은 일단 당신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믿으면 당신의 다른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 中

나만 옳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끝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때때로 자신이 못나고 부정적인 만큼 한편으로는 올바르고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란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가끔은 적당히 타협할 때도 없진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이래 봬도 내가 근본은 바른 사람이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하고 참을성도 없고 잘 삐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분명 본성을 착한 사람이다. 물론 때때로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떨 때가 없진 않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만큼도 그런 짓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적어도 나 정도면 대단히 정직한 축에 든닫고 봐야 한다.'

유머감각이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이다.

나의 품위는 상대방이 판단한다.

힘을 빼고 공이 어떻게 날아가는지 보기 위해 머리를 들지 않는 것이 골프를 잘 치는 비결이다.

헤밍웨이는 "난 글을 쓰는 내내 어느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썼고 그건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 나는 그 문장론이 분노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분노는 대개 당사자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 외에 별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분노야말로 어느 정도에서 그치려고 애쓰는 편이 좋다. 또한 그것이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유용한 규칙이 되어주다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낭비와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어떤 것인가"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린 보네거트나 프로이트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린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왜?'라고 질문하는 일에 그들처럼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내면에서 약간의 빈틈이라도 보게 되는 날에는, 그리하여 나는 누구인가, 내게 삶과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 느닷없이 맞닥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화들짝 놀라며 격심한 타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질문들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영국 작가 마크 해먼은 말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문하는 태도,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늙기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것이 곧 정신적 방어기제다. 다른 마로 하면 온갖 정신적 갈등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심리적 책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전치, 퇴행, 투사, 동일시..
그 중 '투사(projection)'는 의부증이나 의처증 환자의 경우에도 찾아볼 수 있다. 투사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공격적 계획이나 충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의처증이나 의부증 환자들은 자기의 욕구를 배우자에게 투사하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자기가 바람피우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고통스러우니까 그것을 은폐하고자 자신의 심리를 상대방에게 투사해 "너 바람피우지?" 하면서 의심하는 것이다.
'동일시(identification)'는 부모나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닮아가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을 절대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을 '적대적 동일시(hostile identification)'라고 한다. '병적 동일시(pathological identification)'도 있다. 예로 국회의원 비서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마치 국회의원인 것처럼 걷르먹 거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정신의학자 융은 심리적 요소에서도 '동량의 원리(principle of equivalence)'와 '엔트로피의 원리(principle of entropy)'를 주장했다. 

상담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혹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로. 어쩌면 평범하게 살기도 어렵고 행복하게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우린 더욱 그런 소망을 갖는지도 모른다.

남의 탓, 환경 탓, 그러한 분노 때문에 수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나 과거에 대한 생각은 바꿀 수 있다. '성숙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포함한다. 나아가 자신의 인생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와의 관계나 남과의 관계에서도 신뢰를 준다.

우주여행만큼 힘든 게 인간관계다.
발전하는 배우들은 항상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한다. 현장에서 자기가 연기한 분량의 모니터를 안 보고 그대로 가는 배우는 실력에 발전이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인간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먼저 나 자신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면 반드시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고쓰' 취급을 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까칠함과 무례함을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린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를 무시하거나 모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까칠함은 나 자신에 대한 예의,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품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라는 책에서 '처세육연(處世六然)'이라는 말을 찾았다. 살면서 지켜야 할 여섯가지 처신이라는 뜻으로 명나라 최선(崔銑)이라는 사람이 시인 왕양명(王陽明)에게 주었다는 처세훈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는 세속에 집착하지 않고 / 남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럽게 / 일을 당하면 단호하게 결단성 있게 / 평소에는 맑고 잔잔하게 / 뜻을 이루면 들뜨지 말고 담담하게 / 뜻을 못 이루어도 좌절 없이 태연하게"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삶에서 지녀야 할 건강한 까칠함을 함축하고 있다고 느꼈다. 따라서 저 옛날 왕양명이 아니어도 마음에 담아둘 만한 구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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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Essay2019. 11.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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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mkoin.mk.co.kr/shared/10005180

앞서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그 해 12월 중수부는 "최소 3444억원, 최대 8252억원 낮은 가격에 외환은행을 매각했다"며 변 전 국장과 이 전 행장, 이 전 부행장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2010년 대법원은 이들의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장관과 이 전 부총리는 당시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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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10. 15.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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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by 임이랑

 

나는 지금 내 방에 앉아 있다

오늘은 빗소리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평소의 나는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오늘은 무려 아홉시에 일어났다.

올해초에 매트리스를 몸에 꼭 맞는 제품으로 바꾸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누운 채 꾸물거리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이것은 행복한 변화이기도 하고 한심한 변화이기도 하다.

조금 한심해도 행복하다면 괜찮다.

 

처음 이 집을 구경하러 왔을 때는 작은 테라스에 홀랑 넘어가서

이 이상한 각도들이 내 삶을 얼마나 귀찮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저 테라스에서라면 담배를 마음껏 태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다.

가끔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햇살 아래서 낮잠을 자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야외활동을 즐겨하지 않는 성향인 사람으로서

집 안에서 바로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게 좋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외부가 존재하다니!

이 집에서 살게 된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밖에 나갈 수가 있다!'

 

보통의 아침에는 식물들과 노는 편이다.

아침이면 집 안팎의 식물에 물을 주거나 시든 이파리들을 정리한다.

여러 가지 흙을 배합해서 분가링를 하고 각 흙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의 성장세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밤에 어떤 일이 있었건 아침이 오면 늘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소소한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기를 남몰래 빌기도 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시기의 나에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아니라고, 더 힘들어지면 가겠다고 거절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싫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약물 치료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기가 괴로웠고,

내 상황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도 싫어서 그랬을 뿐이다.

괴로운 정신세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싫었다.

외면하고 싶었다. 도망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치고 싶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힘껏 도망쳐야만 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나면 밤이 오니까,

밤이 오고 나면 또 잠으로 도망치곤 했다.

이상한 굴레를 거듭 반복한 시절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 시기에 식물에 깊이 매료되었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를 소 개할 필요도 없었고, 스스로를 치장하거나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아도 괜찮았다.

식물들은 내가 애정을 쏟은 만큼 정직하게 자라났다.

그 건강한 방식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뜻밖의 변화들

게절은 단순한 것이었다.

나는 봄이 싫었다. 이유 없는 짜증이 밀려오면 봄이었다.

더워서 자꾸 차가운 음식을 찾게 되고 집 밖으로 나가기 싫으면 여름이었고,

찬 바람에 정신없이 휩쓸리며 불안과 괴로움이 몰아쳐오면 가을이었다.

겨울엔 이불 속에서 발바닥을 비비며 누워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계절의 의미가 달라졌다.

싹이 터져 오르는 봄의 마법에 취하고,

여름의 더위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가을의 냄새와 겨울의 질감이 무엇이고 어찌 그리 신비로운지 온전히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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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10. 14.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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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 임경선 에세이

연애에 바라는 것
어떤 분들은 자신의 특정문제에 통용되는 '연애 비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비법이라니. 기술, 그런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굳이 있다면 당신 스스로 매력적이고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말고는 없다. 나는 늘 그대로이면서 상대에게는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오만하지 않을까? 밀도 당기기도 어차피 '덜' 좋아하는 사람만이 행사할 수 있는 행동이다. 마음을 억누르고 머리를 써서 밀고 당기기를 했다고 해도 얼마 각지 않아 본심이 드러난다.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차피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어김없이 상처받게 되어 있다. 연애를 하고 싶다면서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만큼 슬픔과 분노와 목마름도 겪어야 한다. 머리를 짜내서 최적의 전략으로 접근한다 해도 사랑처럼 유동적이고 비합리적인 감정이 없기 때문에 이치대로, 논리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빌미로 상대를 내 입맛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대로 변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정짓는다. 연애 초기의 흥분이 가시면 특히 상대가 변했다고 속생해하지만 연애초기가 특수상황이고 이젠 상대를 믿고 편해지니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뿐이다. 상대는 오로지 내가 먼저 변해야만 변할 수 있다.
역으로 사랑받기 위해 무리하는 것도 곤란하다. 무리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리한 대가를 언젠가는 상대에게 딱 그만큼 받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것고 힘든 연애의 서막을 예고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것은 착한 게 아니라 비굴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갈등이 생기거나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서 미리 자신을 상처입힐 뿐이다.
사랑은 이래야만 해, 라며 자꾸 사랑을 정의하고 범위를 좁히는게 아니라, 이럴 수도 있다며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줘야 한다.
연애는 부모가 나를 사랑한 이래로 나의 존재가 전적으로 타인으로부터 긍정을 받는 유일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나밖에 몰랐던 내가 타인을 향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경험이다.

기꺼이 상처받을 것
사랑에서 취해야 할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나 자신에게는 '진실함', 상대한테는 '관대함'인 것 같다. 사랑하면 상대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가 있다.

나의 사랑만은 특별하니까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심하게, 어쩌면 영원히 착각하는 한가지는 바로 사랑은 '좋고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큰 기쁨을 주는 것들이 그렇듯, 그 뒤엔 보이지 않는 짐들이 딸려 있다. 예민함, 오해와 질투, 구속과 의심, 육체적이고 심리적인 피로, 그리고 아마도 확실한 이별 같은 것.
연애에는 고통과 슬픔이 동반함을 주변에서 많이 목격해서 익히 잘 알고 있다. 단, 이것이 '나의' 문제가 되면 달라진다. '나의' 사랑만은 다를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 '나의' 사랑만은 항상 특별하니까.

같은 불완전한 인간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지혜롭고 관용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어린아이처럼 이기적이 된다. 

네가 내 곁을 떠난다 해도 인생을 계속될지도 몰라
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애정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
평등의 모습이 항상 5대 5일 필요는 없다. 어떨 때는 1대 9일 수도, 3대 7일수도, 6대 4일 수도, 8대 2일 수도 있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했다고 손해봤다며 억울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로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채우게 될 테니까.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해나갈 수 있다. 

인간관계 스트레스 대처법
혼자서 잘 서 있을 수 있어야 타인과 함께 있을 때도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누군가로 공허함을 가짜로 채우기보단 차라리 그 비어있는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만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진정으로 나답고 편안할 수 있을지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화학작용
'당신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안 맞는 것 같다'가 공식적인 이별 메시지였다. 이런 진부한 멘트를 날리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우진에게 미안했다. 자신의 허접한 이별통보를 저토록 객관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그것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받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불공평해 보였다. -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의 단편 '크리스마스이브에 생긴 일' 中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우리가 함께 하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도 진실이지만 동시에 결국 제 삶의 무게는 혼자서 짊어진다는 것도 진실이다.

과거가 현재를 지탱한다
과거의 그 어떤 일에 대한 경험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
'변화'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나를 쉽게 위로하지 않을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무리할 수 밖에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흘러흘러 이렇게 되었다, 는 말은 대개가 거짓이다. 무리하는 것이 되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 내게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내가 무리한 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인생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 현실이다.
노력하면 바라는 모든 것을 이룰 거라고 장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적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그 나름의 보상이 주어진다. 게다가 열심히 노력하는 일은 주저앉아 한숨만 쉬거나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를 놔버리고 자기 혐오에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하는 기분은 내가 생생히 살아서 숨귀고 있다는 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게 조금씩 걸어나가는 일, 건전한 야심을 잃지 않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결국 열심히 한 것들만이 끝까지 남는다.

실패에 대처하는 방식
실망스러운 일을 겪게 되면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어 그것이 장차 힘이 되어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일지만... 기왕이면, 가급적이면 실패까지 가지 않도록 잘해야겠지요. - 미국 방송인 코난 오브리언의 '다트머스 대학교 졸업축사' 中

타인과의 비교
일이나 해. 인생은 짧아. 가만히 앉아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쓰레기 같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에, 진짜 일을 해. 신께서 재능을 주셨지만 살날은 많지 않으니까. - 소설가 스티븐 킹

부탁과 거절
부탁이 부탁다우려면 몇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부탁이라는 것은, 그 사람 아니면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을 때,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부탁한 데에 대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각오와 부담감을 가질 때 하는 것이다. 부탁에 대한 무게와 신중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의 부탁이라면 들어줄 생각이 들겠지만 상대방이 너무 쉽게 내게 부탁하면 '저 사람은 도대체 뭘 믿고'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친했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하찮은 부탁'처럼 표현할 때는 기분도 상한다.
사람들은 '도와주고' 싶지,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운 사이인데 이 정도 부담없는 부탁도 안 들어줘?처럼, 부탁하는 사람이 너무 당당하면 노력은 내가 하면서도 만만한 인간 취급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이 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주겠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부탁했다면 애초에 실수다. 사람들 사이의 상호 의존에 필요한 것은 섬세함과 세심함이다.
역으로 거절을 할 때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 타이밍에 거절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결과를 낳는다.

내 마음이 편안한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
저는 태도라는 게 결국 'How'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 사람이 경찰이라서 좋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경찰이라서 좋다예요. 이 'How'의 문제가 저한테는 무척 중요한 것이고, 그 사람의 매력을 가장 잘 부각시켜주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직업이 같아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게 달라지기도 하고요.

관계는 이름이 아니라 교감이다
저는 늘 관계에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얘기해요. 프레임 짓기를 하지 말잘까. 연애 관계, 결혼 관계, 그거 필요 없거든요.
결혼은 연애의 연장에 불과한 거고요. 결혼의 본질은 혼인신고서가 아니라 서로의 교감이예요. 육체적인 관계조차도 사실은 별거 아니에요. 결국에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다예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제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예요. 그리고 성인으로서 괜찮은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힘들때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인생의 한 부분이고요.

꿈은 없어도 되지만 내가 없으며 안된다
꿈이라는 말 대신에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할 때는 그것의 동기가 중요하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오늘도 무사히'예요. 그렇게 살려고 하다보면 어떤 경우도 나답게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나다움, 그 사람다움을 인정하는 길
공정함이라는 게 결국에는 개인의 그 사람다움을 얼마큼 인정해줄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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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10. 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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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지음 / 김은경 옮김

모든 철학자의 생각은 두 가지 축으로 정리된다.
1. 물음의 종류 'What'과 'How'
 - 'What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시시한 것이 많다.
2. 배움의 종류 '프로세스'와 '아웃풋'
 - 중요한 것은 과정에서 배운다.

르상티망(ressentiment by 프리드리히 니체):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하거나, 르상티망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꾼다.

다른 사람에게 창조성을 발휘시키고자 할 때 성과에 대한 대가, 특히 예고된 대가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나 조직의 창조성을 파괴하고 만다. 다시 말해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해야 한다.

수사학(by 아리스토텔레스): 타인을 설득해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로고스(논리), 에토스(윤리), 파토스(열정)가 필요하다.

예정설(by 장 카랭):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

앙가주망(engagement by 장 폴 사르트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앙가주망engagement 하라. 우리 자신의 행동과 선택, 이 세계에 참여하라.

악의 평범성(by 한나 아렌트): 악의가 없어도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지부조화(by 리언 페스팅어): 인지부조화 이론은 우리는 신념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인과관계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외부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이 일어나고, 나중에 그 행동에 합치되도록 의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합리적인 생물이 아니라 나중에 합리화를 도모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페스팅어가 내놓은 답이다. 
사실과 인지 사이에 발생한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인지를 바꾸는 일은 인간관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이 이것저것 염치 좋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도와주다가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인지부조화가 빚은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지와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조화를 발생시킨다. 자신이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은 변경할 수 없으니 대신에 부조화를 해소하고자 좋아하지 않는 감정을 '조금은 호의가 있을지도'로 바꿔 버린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는 상대에게 이것저것 부탁받아 성가셔 하던 사람이 그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권위에의 복종(by 스탠리 밀그램): 밀그램 교수의 아이히만 실험 결과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어떤 일을 할 때야말로 그 집단이 지닌 양심이나 자제심이 가동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편 이 실험은 우리에게 희망의 빛도 함께 가져다준다. 자신의 양심과 자제심을 자각시키는 아주 조그마한 지지라도 받으면, 사람은 누구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멈추고 양심과 자제심에 근거한 행동을 취한다. 이는 조직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을 때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라고 맨 먼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태 효과(by 로버트 킹 머튼):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진다. 

내시 균형(by 존 내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의 우승 프로그램은 처음에 '협조'를 내고, 그 다음에는 바로 전에 상대가 냈던 것을 똑같이 낸다. 이는 1. 우선 상대에게 '협조'하여 '좋은 녀석' 전략을 구사한다. 2. 상대가 배신하면 그 자리에서 자신도 배신으로 돌아선다. '좋은 녀석'이지만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되받아친다. 3. 상대가 다시 협조로 돌아오면 이쪽도 협조로 돌아서는 '포용성'을 갖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상대측에서 보면 '내가 배신하지 않는 한 이 녀석은 좋은 사람이지만, 내가 배신하면 상대도 바로 배신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서 파악하기 쉽고 예측하기도 수월하다는 특징이 있다.

보이지 않는 손(by 애덤 스미스):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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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8. 2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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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 임경선 에세이

자유란 무엇일까.
내 마음과 영혼이 시키는 일을 내 몸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가장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른 성질을 지녔다. 특정 조건들을 갖추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의 문제이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흔히 듣는 겸손한 말은 맞지 않다.

솔직하다는 것.
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좋은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고 그로 인한 자신의 선한 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깊은 곳에서 연결해준다.
'아, 나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구나.'
상대로부터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드는 안도감과 충족감, 그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가진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대신, 예의 바름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의 바름은 '방어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인간의 선의를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솔직한 감정이란 비틀어진 질투와 욕망, 애증, 꼬인 자의식 등의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뒤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내면의 생각이 악의적이고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다고 여기는 만큼 남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하기보다는 심리적 가면을 쓰고 상처 받지 않을 정도로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고자 한다.
난 원래 이렇다, 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리는 솔직함은 궁극의 자기 합리화이자 정신승리 혹은 변명이 도리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고 객관적이지 못하고 머리가 굳어서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다. 이러한 솔직함은 생각이 유연하지 못한 자기 고집에 불과하다.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시작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엉성하고 밀도가 부족하더라도 일단 어떻게든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고 마침표를 찍어보는 일이 중요했다.

가만 보면, 꿈을 이룬다는 것은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도 안되고 후천적인 노력만으로도 안되고 운만으로도 안되는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 파이 이야기

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황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어쩌면 그 마음의 일부가 여전히 그 사람 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그 사람은 이제 더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몹시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추스리고 다시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세상에는 시간이 어느정도 경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에는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양자택일의 문제.
아무튼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결코 그 적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리를 해야 기회가 열린다. 추진동력을 가지려면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 이상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느껴야 한다. 기회와 타이밍도 제한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해야 겨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꿔볼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다.

비슷한 취향이나 취미를 가지면 말이 잘 통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같은 정치적 지향점을 가졌다면 신뢰감을 느낀다.
좋아하는 대상이 같다면 서로에게 친근함을 느낀다.
미워하는 대상이 같다면 강한 동질 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같은 종류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간의 유대감에 비견할 만한 것은 없다.

"마지막엔 조금 괴롭다 싶을 정도로 운동을 해야 그때 체력이 딱 그만큼 느는 겁니다."
"제대로 운동이 되는 순간은요,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 숨차서 죽을 것 같을 때, 다섯 개만 더, 한 개만 더, 이렇게 쥐어짜낼 때, 그때 진짜 운동이 되는 거예요."
트레이너는 내가 막판에 힘들어할 때마다 늘 이렇게 알려주었다. 괴롭다고 신음하며 겨우 해내는 마지막 대여섯 번의 운동 동작이 실질적으로 내몸을 바꾼다고. 편하게 하던대로만 운동하면 체력이나 근력의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그 이상은 늘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면 인생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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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Essay2019. 7. 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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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다루는 법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인 2010년 펴낸 책 ‘진보집권플랜’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진보개혁 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 검찰을 어떻게 다뤄야 하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검찰 개혁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법무부 장관이 중요합니다.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검찰 개혁을 이루려면 분명한 비전과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적어도 대통령 임기의 절반은 대통령과 같이 가야 합니다.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요. 검찰 조직을 확실히 장악하고 이끌어가면서도 검찰 개혁에 동의하는 검찰총장이 필요할 겁니다.”

참여정부 때처럼 검찰 권력을 활용하지 않는 것에 그쳐선 안 되며,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고 검찰 요직에도 적절히 자기 진영 사람을 심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자신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극적 반전을 빼면, 9년이 지나 그의 구상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여권의 검찰 개혁 방향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경수사권 조정을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권력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혁 성향의 조 수석이 장관으로 옮겨 검찰 개혁 법제화를 지휘하고, 검찰 조직을 잘 아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부 반발을 통제하는 분업 구조로 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ㆍ윤석열 조합이 과연 최선인지에 대해선 여당 내에서도 물음표가 적지 않다. 우선 내로남불 문제가 걸림돌이다. 2011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이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며 반대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과연 지금 와선 권재진은 안 되는데, 조국은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청와대가 어떤 논리로 답을 할지 궁금하다. 

윤석열 총장의 청문회 위증 논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뇌물 혐의로 조사 받던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적 없다더니, 이를 뒤집는 녹취 파일이 공개됐다. 법질서의 최후 보루자가 돼야 할 검찰총장 후보자가 아끼는 검찰 후배를 보호하기 위해 변호사를 소개하지 않고도 자신이 했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청문회 다음 날 해명하자, 관련자들이 일제히 말을 맞추고 여권은 ‘의리의 총대를 멘 상남자’ 프레임으로 미화했다. 

윤 전 서장 건은 관내 정육수입업자로부터 현금 2,000만원을 수수하고, 이 업자가 골프장 요금 3,000만원 선결제, 휴대폰 요금 800여만원 대납, 내연녀 계좌로 6,000만원 송금 사실 등이 확인됐는데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다. 경찰은 물론이고 검찰에서도 언젠가 터질 사건이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재수사를 입에 올리는 이가 없다. 자기 진영과 가까운 인사들만 등용하고 허물을 감싸준다면 검찰에 대한 인사권 행사는 개혁의 방편이 아니라 또 다른 줄 세우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권은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불러온 정치 보복 수사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적폐청산 시기를 거치면서 권력형 비리를 담당하는 특수수사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조국과 윤석열의 동거가 불안해 보이는 건 적폐청산에서 효용을 본 특수수사의 유혹에 빠져 검찰과 타협하는 순간 검찰 개혁의 좌표를 잃을 수 있어서다. 

검찰만큼 개혁하기 어려운 집단도 드물다. 참여정부 때도 개혁 성향의 강금실, 천정배 장관이 기용됐지만 별로 바뀐 건 없다. 명분과 원칙만 앞세운다고 검찰 개혁이 달성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반대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정치권력은 악마적 힘이다. 잘못 사용하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고, 포기하면 반대파가 그 힘으로 나를 억누른다. 하지만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조 수석이 책에서 한 말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성공적으로 검찰 권력을 다루기 위해 되새겨 볼 경구 같기도 하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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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Book2019. 7. 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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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타인의 순수함과 절박함이 나보다 덜할 것이라 새악하지 말고, 절대악과 절대선이 존재하는 세상을 상정하며 어느 한 편에만 서면 명쾌해질 것이라 착각하지 말되,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나는 별일없이 잘 산다.
자신이 받은 알량한 상처의 총량을 빌미로, 타인에게 가하는 상처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마해버리는 비검함.
우리는 모두 상처받으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이 영화나 연속극이라도 되는 양 타인과 자신의 삶을 극화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은 그 상처를 계기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거나, 최소한 보상받으리라 상상한다. 내 상처가 이만큼 크기 때문에 나는 착한 사람이고 오해받고 있고 너희들이 내게 하는 지적은 모두 그르다, 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착각은 결국 응답받지 못한다.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를 과시할 필요도, 자기변명을 위한 핑곗거리로 삼을 이유도 없다. 다만 짊어질  뿐이다. 짊어지고 껴안고 공생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할 뿐이다. 살아가는 내내 말이다.

우리는 모두 별로다.
뉴스를 보다보면 세상의 속살이 드러나 그 추잡함과 헐거움, 촌스러움에 치를 떨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게 근본적으로 서로 앞다투어 멋지고 잘났고 괜찮고 근사하고 옳다고 믿는 사람들 투성이라 초래된 세상이라고 본다. 자신의 흠결을 들여다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부 세계의 그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고쳐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아가 남의 흠결을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다.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는다는 건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그만큼 더 겹쳐졌다는 의미다. 수많은 인과율과 책임관계 안에서 사람은 나약하고 겉과 속이 다른 모순덩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별로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 있다. 무업소다 개인의 선량함이나 역량에 의존하는 방식보다 제대로 굴러 갈 수 있는 체계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더 빨리 가닿을 수 있다. 그건 비관이 아니다. 비전이다.

나는 당신의 후배가 아니다.
나는 좀 빼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에는 깍두기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다.

평범한 어른이 되는 법.
인간은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로잡힐 과거는 늘어난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죽음 따위는 근사한 문장 안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멀찌감치 초과해버린 과거의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이 오십에 누군가는 백 가지를 책임져야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열 가지를 책임지고 있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각자 짊어질 깜냥이 되는 곽의 무게 차이일 뿐 절대량으로 우위를 따질 일은 아니다. 아름답게 나이 먹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다. 피할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짊어지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책임지지도 짊어지지도 않겠다며 뭐랄까 인류, 라는 단어를 내팽겨쳐버리는 사람들이다. 현대사회라는 것이 운명공동체이다보니 평범한 어른이 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나잇값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지" 같은 말을 떠벌리는 걸 지켜보는 일은 곤욕스럽다.
인간은 그러니까 어차피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 것이다. 그 과거의 크기에 두려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좌절하지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짊어질 수 있는 꼭 그만큼씩만을 가지고 살아나가며, 그것이 평범한 어른이다.

고시원으로부터 온 편지.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주변 세계를 향한 애정을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해요, 현주씨.
그러나 그보다 우선은 우리 엄마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다. 우리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 노력했다. 힘든 일이다. 나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새끼들 안 챙겼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우리 형제를 길러냈다. 이것은 흡사 슈퍼히어로가 아닌가. 나는 그녀의 크립톤 운석이었다. 나는 그런 지위를 누리기만 했다. 그만한 책임과 의무는 외면했다.
그녀는 우리가 하늘이 내려준 새끼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녀가 하늘이 내려준 엄마라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한 명의 여자로서 존중하고 아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엄마가 아니라 현주씨라고 불러야겠다 결심했다. 내일 당장 만나야겠다. 그렇게 내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야겠다. 우리 엄마, 아니 현주씨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행복할 것 같다.
나는 가족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새삼 왜 이럴까. 오늘밤 아주 좋은 형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다보니, 어떻게 그리됐네.

엄마, 생일.
엄마에게 새 방을 보여주지 못햇다. 한번은 합정동까지 오셨다.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 내내 왜 또 반지하냐 재킷은 왜 그리 짧냐 아이고 잔소리 잔소리. 기어이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뭘 해줬다고!
불쌍한 엄마는 발길을 돌렸다. 참 못난 입이고 말이다. 가족은 가족에게 폭력적이다. 객관화해야 한다고 입으로 말했는데 정작 내 입은 그러지 못한다. 밉다. 스스로에게 되게 실망했다. 그 길 위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일이 바쁘고 삶이 피곤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한밤중이었다. 엄마였다. "음력 10월 14일 양력 11월 11일은 지웅이 엄마의 생일...... 받고 싶은 생일 선물: 예쁜 숄처럼 생긴 목도리. 가격 4만원."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나는 소리내 엉엉 울었다.
비싼 걸 사주고 싶었다. 백화점에 가야겠따. 회사 후배에게 나 효도 좀 하려는데 뭘 사면 좋겠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에르메스가 비싸고 버버리가 그나마 조금 싼데 몇십만 원 생각해야 한단다. 그것 참 되게 비싸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있으나 마나 한 아버지에게 평생 그런 선물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바보같이.
압구정역에서 엄마를 만났다. 볕이 좋은 날에 엄마는 유난히 예뻤다. 미용실에 가서 장미희 머리로 잘라달라고 했단다. 정말 장미희보다 예뻤다. 백화점에 들어갔다. 그러나 천하의 고집쟁이 엄마는 결코 내가 원하는 숍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엄마는 백화점 1층에서 기어이 4만 9천원짜리 목도리를 골랐다. 나랑 내 동생이 신이 내린 자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엄마와 커피를 마시고 가로수길을 걷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다. 극장을 나서 모계사회 자바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연애하듯 좋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괜찮니, 물었더니 오히려 명확해졌단다. 뼈가 삭도록 일해서 가족 먹여 살리겠단다. 전화를 끊고 한강을 바라보았다. 어둡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밉살맞고 장미희보다 예쁜 엄마가 자꾸 보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자꾸 울게 만든다. 그렇다면 엄마 무릎에서 울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한다.

봄이 오면
봄은 언제나 아름답다. 내가 봄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봄의 따스함은 더위에 약하고 강한 자나 추위에 약하고 강한 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정하다. 사람의 조건과 규칙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불온하게 허물어지는 이 세계 아래서, 공정한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짧고 알아채기 어려운 계절의 가장 눈부신 대목은, 그 공정함이 달이 찰수록 깊게 성숙해 나간다는 점이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는 말미로 치달을수록 무디어진다. 가을은 서늘함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쓸쓸하게 죽음으로 돌진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봄의 따스함이란 사그라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다. 끝으로 갈수록 더욱 따스하게 풍성해지는 것이다. 공정하게 가꾸어지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가장 아름답고 충만해졌을 때, 봄은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흡사 절정에서 멎어버린 위대한 음악처럼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봄은 언제나 가장 늦은 봄이다.
가장 아름다운 봄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자취를 감추기 직전의 가장 늦은 봄을 직감하고 그 한나절을 천천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맞는 건 정말 드물고 어려운 일이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건 순전히 내 몸뚱이로 알아챌 수 밖에 없는 어느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통틀어 과연 몇 번이나 그런 행운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그 하루를 발견하기 위해 한 해를 꼬박 준비하고 기다리는지 모른다.

책 읽는 삶에 관하여
책을 읽지 않으면 내가 아는 것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이퍼링크가 없는 웹상의 DB를 상상해보라.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냉소적인 사람이다
실제 모든 종류의 '진심'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호소다. 진심, 진정성은 주관의 영역에 있는 것이지 남에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세상을 탓할 일도 아니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고 그것의 공존을 중재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 나의 진정성이 타인의 반진정성을 증명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그리고 짜증스럽다.
그런데 요즘 살짝 고민이 생겼다. 나의 진심은 너의 진심과 다르다. 맞다. 그러나 나의 진심과 너의 진심 결국 공히 '진심'인 것이다. 그 개별의 진심들을 모두 싸잡아 무시하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마냥 긍정하면 바보가 된다. 그것을 마냥 부정하면, 역시 바보가 된다.
너무 많은 비관과 냉소는, 때로는 막연하고 뜨거운 주관보다도 되레 진실을 더욱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지 모른다.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은 부디 나보다 나은 미감과 연민을 가지고 세상의 진심들과 겨루어주길 바란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의 내가,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의 내가 천착할 주제란 고민할 것도 없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내가 말하는 좋고 나은 사람과 당신이 생각하는 좋고 나은 사람은 다를 겁니다. 틀린 건 아니고 다를 거예요.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란 계산된 위악을 부리지 않고 돈 위에 더 많은 돈을 쌓으려 하기보다 내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인간관계의 정치를 위해 신뢰를 가장하지 않고 미래의 무더기보다 현실의 한줌을 아끼면서 천박한 것을 천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되 네 편과 내 편을 종횡으로 나누어 다투고 분쟁하는 진영논리의 달콤함에 함몰되지 않길 하루하루 소망하는 자다.

부적응자들의 지옥
한국의 군대조직은 그 자체로 이미 방안의 코끼리고 항체가 만들어질 수 없는 바이러스다. 병적 위계와 폭력적인 의식체계를 배워나가는 남한 남성의 필수 사회교육기관이다. 필요에 의한 살인을 가르치는 곳이다. 젊은이를 애국과 의무의 이름으로 저렴하게 착취하며 병증과 굴종과 비합리로 유지되는 공간이다. 세상은 한국 군대라느 비정상 안에서 정상인으로 잘 버텨내며 그 안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셔 자기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을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옥소리 사태 -1/N의 폭력
이토록 교회가 많은 나라에서 나 같은 냉담자마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의 교훈이 쉽게 간과된다는 건 괴상한 노릇이다.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대목은 이 불행한 여인에게 연민을 가지라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대목에서 방점은 '먼저'에 찍히는 것이다.
백 개의 돌팔매 안에 돌멩이 하나로 숨어 있을 때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1/N이라는 익명의 폭력으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이 타인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깨달으라는 이야기다. 그것을 알고도 책임질 수 있으면 돌을 던지라는 말이다. 그럴 수 있는가?

마이클 잭슨, 괴물과 우상
살아 있는 누군가는 깎아내려짐으로써 상품화된다. 이미 죽은 누군가는 신화화됨으로써 상품화된다. 어제 잭슨을 욕해 배를 채웠던 사람들이 오늘 잭슨을 우러러 다시 배를 채운다. 잭슨에 대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정작 그를 둘러싼 세계의 동기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심과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본질에 대한 어떤 규명이나 확인도 없이 괴물은 우상이 되고 우상은 괴물이 된다. 돈이 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천박하며 공공연한 진실이다.

록키는 어떻게 스탤론을 구원했나
시합을 만류하는 에이드리언에게 발보아는 말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
집안에 작은 코끼리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게 별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 안에서 코끼리는 점점 더 자란다. 그리고 급기야 집에 꼭 끼일 정도로 몸집이 커져버리낟. 이때가 되면 코끼리는 문제가 된다.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러나 코끼리가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이걸 해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 자체를 부수어버리지 않는 이상 코끼리를 빼낼 방법이 없을 것 같잖아. 그냥 같이 사는 게 속 편해요. 못 본 척 지나간다. 모른 척 딴청을 피운다. 코끼리에 대해 말하는 건 암묵적으로 금기시된다. 어차피 다 알고 있거든? 혼자 똑똑한 척 하지 마. 그렇게, 코끼리는 집의 일부가 되고야 만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기르고 있다. 공공연한 폭력의 최전선은 전쟁터가 아니라 가정이다. 남이 하면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 삿대질할 것도 엄마에게 형제에게 자식에게 남김없이 쏟아낸다.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나마 잠깐 후회하고 금세 망각하고 다시 되풀이된다. 나와 나의 행동을 분리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저열함이다. 수십 년을 함께한 가족관계 안에서 나 자신과 부모와 형제자매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객관화할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패담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두세마디로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사람부터, 끝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힌 사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모순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왜 일관되지 않으냐고 타박한다. 상대의 굴곡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은 자연스레 단 두세 마디 인상비평의 소재가 되기를 거듭한다. 나쁜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레 미레자블>은 힐링 영화인가
<레 미레자블>이 제시하는 이슈는 정의의 궁극적 승리 따위가 아니다. 장발장과 자베르가 벌이는 신념의 대결, 장발장과 코제트-마리우스의 마지막 해후는 무엇을 의미하나. 혁명이라는 거대서사의 소용돌이 안에서조차, 서로 다른 가치관과 계급과 세대에 속한 이들을 공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평생에 걸친 자기비판과 성찰,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박애뿐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막 연애를 끝낸 모든 이들에게
세상에 운명 따윈 없다. 약속된 땅도 계획도 다음 생 같은 것도 기대하지 마라. 덜 낭만적으로 들리겠지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기 위해, 결코 도래하지 않을 행복을 빌미로 오늘을 희생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의 정체를 규명해야만 한다. 그것이 연애든, 고용이든, 혈연이든 마찬가지다. 너와 나의 관계가 주는 만족감의 뿌리가 정말 이 관계로부터 오는 것일까. 혹은 단지 세상으로부터 정의 내려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뿐일까. 역할에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정말 관계를 할 것인가. 그 쉽지 않은 답을 찾는 것으로 우리는 정말 나아질 수 있다. 끝이 어떠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데미지>, 망가진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조심하세요. 그들은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모두에게 일생 단 한번의 소중한 사람이 있죠. 그게 나에겐 아들이었고 당신에겐 안나였어요. 그런데 과연 안나에게는 그게 누구였을까요?" 스티븐에게 안나는 평생의 바로 그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나에게 스티븐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의 파국은 자초되고 계획되었으며 예상된 것이었다.
자신이 망가져 있었다는 이유로 상대를 망가뜨리는 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던 탈출구로 유유히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스티븐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았고, 그는 몸을 내던질 수 밖에 없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
<록키>는 지난 세월을 꼰대들과 불화하며 답답하게 보낸 서른 살의 한 남자가 세상의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온전하게 증명해내는 이야기다. 그의 해답은 이기든 지든 끝까지 자기 힘으로 버티어내는 데 있었다.
인생의 좌표라는, 그 단어부터 너무나 거대해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는 세상의 말에 더이상 무심할 수 없는 나이에 닿아가면서, 결국 버티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선택 가능하되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기는 것도, 좀더 많이 거머쥐는 것도 아닌 세상사에 맞서 자신을 지키고 버티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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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習作 note2019. 4. 2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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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야기

by 임호선

어느 회사가

하늘을 홀로 날던 세상이 있었습니다.

 

하늘 푸르러도

'항공'은 이들만의 '권한'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회사가

하늘을 함께 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늘 구름덮여도

'항공'은 더 이상 '권한'이 아닌

'서비스'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금은, 

잠자리떼 마냥

기차값만 가지고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입니다.

.

.

.

.

.

뭐,

따로 드릴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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